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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콩시니모해 Apr 17. 2021

괜찮아, 가족이야

생활과 주거를 공유하는, 가족에 대하여 : 프랑스 2편


현재 프랑스의 가족 제도와 문화가 있기까지 어떤 흐름이 있었는지 앞에서 짧게나마 이야기해보았다. 이제 구체적으로 어떤 법이나 정책들이 있는지 이야기해보자.


1) 동거

사전적으로 동거는 같이 사는 것을 이야기하지만, 여기서의 동거는 연인 사이의 결합 방식을 말한다. 아무 책임도 권리도 의무도 없는 동거는 가장 가벼운 결합 방식이다. 1999년 이후로 민법에 규정되었는데 민법 상 동성 혹은 이성 두 사람이 결합하는 것으로 서로간 의무가 없고 동거 이전과 이후 각자 형성한 재산은 각자에게 속한다. 부채도 마찬가지로 각자의 이름 앞으로 되어있는 부채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다. 건강보험이나 실업수당 등 사회보장급여도 본인에게만 적용이 된다. 오랜 시간 동안 프랑스 민법은 동거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1999년에 들어서야 동거의 개념이 민법에 규정되었다고 한다.


앞에서도 얘기했던 68운동 이전에는 동거나 미혼녀/부를 터부시했다고 한다. 68운동 이후(비록 운동은 미완이었지만) 문화적으로는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1999년에나마 팍스와 함께 동거가 제도 안으로 들어오게 되었던 것 같다. 결혼이나 팍스가 있음에도 해마다 결혼과 팍스를 맺는 커플보다 동거하는 커플이 더 많을 정도로 동거는 보편화되어 있다.


동거는 팍스나 결혼에 비해 두 사람 사이의 법적 구속력이 가장 약하다. 동거를 하게 되어도 재산은 각자에게 속한다. 세금도 각자 낸다. 같이 살지만 연말정산 등에서 공제 혜택이 없다. 사회보장급여(실업수당, 건강보험 혜택 등)도 본인에게만 적용된다. 유언장에 적어둔다면 유산을 물려줄 수 있지만 세금을 공제 한다. 커플간 경제적으로 완전 독립되어 있으므로 동거 관계를 끝내기 위해 공적인 절차를 받을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동거를 선택하고 있다.


2) 결혼

결혼은 가장 전통적인 결합 방식이다. 유럽은 전반적으로 가톨릭 문화권이었기 때문에 프랑스도 그 영향을 받아 결혼을 신성한 의무로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랑스 혁명 이후 1791년 헌법 제7조에서 ‘법률은 혼인을 민사계약으로 간주한다’라고 규정하면서 혼인의 세속화가 이루어졌다.


프랑스 민법 상 결혼은 18세 이상의 남녀가 하는 것이다. 결혼하면 생기는 눈에 보이는 가장 큰 변화는 상대 배우자의 성씨를 쓸 수 있다는 것 같다. 같이 살고 서로의 성씨를 쓸 수 있는 변화 외에도 법적으로 혼인 신고를 한 성인 남녀 당사자 간에는 권리와 의무가 발생한다. 서로 동거, 정조, 부양, 존중, 협조의 의무가 있고 자녀 양육, 자녀 부양, 자녀 교육에 있어 공동 의무가 있다. 재산도 공동에게 귀속되고 유언이 없어도 법정 상속인이 된다. 세금을 낼 때는 부부에게 공동으로 과세되어 세금 공제의 혜택이 있다. 상대 배우자가 실직, 사망할 경우 상대 배우자의 연금이나 실업수당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치러야 하는 비용이 만만치 않다. 한국도 그렇지만 프랑스도 결혼에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 같다. 결혼 6주 전에 필요한 서류(출생증명서, 미혼증명서, 신랑 신부 각 측 증인의 신분증 복사본, 출생증명서 원본)를 시청에 제출한다. 제출하면 결혼 날짜를 잡고 확인서를 발급해준다. 결혼식 당일 시청에 가면 시장이 주례를 서서 결혼식을 한다. 그리고 자리를 옮겨 종교에 따라 의식을 진행한다. 그리고 또 자리를 옮겨 손님들과 식사를 하고 파티를 한다. 파티는 보통 저녁에서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이 모든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1년 전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하고 비용은 5만유로(원화 기준 약 6,700만원) 정도가 든다.


이렇게 긴 절차를 거치고 높은 비용을 치르며 결혼했지만 프랑스의 이혼은 결혼보다 어렵다. 2016년부터 이혼에 소요되는 시간이 적어졌다고 하는데 그 이전에는 합의 이혼이어도 평균적으로 3~6개월 길게는 1년 가까이 소요되었다. 부부 한 명당 평균 1,500유로(원화기준 약 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2016년 이후로는 합의 이혼의 경우 총 1~2개월 내에 이혼이 가능하도록 행정 절차가 개편되어 상황이 좀 나아졌다고 한다. 행정 절차가 복잡하든 간소화되었든 간에 프랑스의 이혼율은 30% 이상이다.


요즘의 프랑스에서는 결혼보다 PACS를 맺고 사는 비율이 증가하고 있다.


3) PACS(시민연대계약)

원래 PACS는 동성 결혼의 제도적 과도기에서 탄생한 제도이다. 카톨릭의 영향으로 동성 결혼이 터부시되었으나 사회적으로 동성 결혼에 대한 요구가 있었고, 1999년 동거법이 규정된 해와 같은 해에 사회적 합의를 통한 중간다리로 PACS가 등장하였다. 2013년 동성 결혼이 합법화 된 이후에도 이 제도는 유지되었다.


2004년 공개된 프랑스 법무부의 보고서는 PACS를 '많은 필요성에 상응하며 지속적인 새로운 혼인 관계'라고 묘사하였다. PACS가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동성 연인뿐만 아니라 이성 연인 사이에서 더 많이 활용하고 있다.


PACS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시민연대계약’이다. 이름을 보면 PACS의 대략적인 내용을 추측할 수 있다. 먼저 PACS는 ‘계약’이다. 동거나 결혼과 달리 실제로 당사자 간 계약서를 작성해 공동거주자의 호적담당 공무원에게 신고해 법적으로 인정 받는다. 그리고 PACS에는 ‘시민의 연대’를 국가가 지지한다는 의미가 있다. 결혼을 하는 데 있어 개인의 자유가 가장 존중되어야 하지만 동시에 결혼은 국가의 중요한 사회제도다. 사회제도로서의 기능과 역할이 있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에 제한이 생기기도 한다. 반면 PACS는 결혼이 요구하는 의무와 별개로 철저히 두 당사자 간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PACS에는 상대를 시민으로서 존중하고 국가는 시스템을 통해 이 시민들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의미가 있다.


때문에 PACS를 체결할 때는 함께 살 때 발생하는 비용, 서로 생활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의 합의부터 계약 해지 후 재산 분할까지 모든 것을 서면으로 적어 계약서의 형태로 남긴다. 그래서 PACS 계약서의 형태는 정해져 있지 않고 당사자 간 원하는 대로 적을 수 있어 다양하다. 이 계약서와 신분증, 출생증명서, 친인척이 아님을 증명하는 서류, 동거 증명서를 제출하면 별도의 증인 없이도 등록이 끝난다.


결혼과 달리 PACS 관계에서는국가가 발행한 증명서에 팍스 관계 여부가 표기될 뿐 당사자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친족관계도 발생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 배우자의 성을 사용할 수 없고 아이가 생길 경우 한 사람의 호적에만 올릴 수 있다. 결혼을 했을 때의 의무도 대부분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PACS는 두 사람이 한 곳에서 같이 살며 생활을 꾸린다는게 중요하기 때문에 동거와 부양, 상호부조의 의무는 있다. 의무가 적은 것과 비례해 결혼에 비해 상대방의 권리도 적다. PACS 계약서에 따로 적어두지 않으면 상속권이나 위자료, PACS 체결 이후 형성된 재산에 대한 분배 등이 없다.


사람들이 PACS를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헤어지는 데에 이혼만큼 절차나 비용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이 파기를 원할 때 즉시 계약을 파기 할 수 있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결혼하면 자동 파기된다. 하지만 의외로 PACS 해지 비율은 이혼보다 훨씬 적다. 등록도 해지도 간편하니 입맛에 따라 금방 PACS를 맺고 해지할 것 같지만 오히려 PACS를 맺을 당시 당사자 쌍방 간의 충분한 합의(계약서로 남길 만큼이나)가 있기 때문인지 유지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런 PACS는 꼭 연인 간에만 체결하는 것은 아니다. 동성 혹은 이성 커플의 결합과 연인이 아닌 친밀한 관계의 결합을 보장하는 역할도 한다. PACS는 성인 당사자 두 사람의 명확하고 자유로운 동의와 동반자로서의 공동 거주만 있다면 체결이 가능하기 때문인데 동성 결혼 이전 과도기로서의 역할로 등장했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더 넓은 의미의 결합이 가능하다.


4) 기타 지원

앞서 소개한 동거, 결혼, PACS는 두 성인의 결합으로 가족이 되는 방식이다. 이 외에도 프랑스에는 다양한 구성원 결합의 더 많은 형태의 가족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3년 노약자 1만 5천여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고령 1인 가구를 위한 대안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연대하는 거주 형태 : 한 지붕 두 세대(Logements Solidaires: un toit, deux générations)’ 정책이 시행되었다. 노인 가구와 젊은 학생을 연계해 홈 쉐어링을 돕는 민간 단체도 등장했다. 파리에 집을 가진 노인과 대학생을 연결해주고 협회에서 제공하는 계약서를 통해 계약을 맺는다. 해당인은 거주지에서 저녁과 밤 시간을 같이 보내는 조건으로 무료로 거주할 수 있다. 계약서에는 여러 옵션이 있는데 다른 옵션 내용을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매일 낮 시간과 주 1회 저녁, 월 2회 주말 그리고 3주의 방학 기간에 자유시간을 가진다’는 옵션을 가장 많이 선택한다고 한다. 공통적인 내용은 독거노인과 젊은 사람을 연결해 독거노인의 생활을 돕고 외로움을 더는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에 집을 구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런 제도가 있지만 프랑스만큼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것 같진 않다.


기존에 있던 가족과 어르신들이 결합해 사는 가족도 있다. 노인과 가정을 연결해주는 협회를 통해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더해 함께 살 수 있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이 요양시설에 가지 않고 파미에를 이용한다. 시설이 아닌 일반 가정집에서 시간을 공유하는 형태이다. 보통 파미에 호스트에게 비용을 지불하고(일부 국가지원) 호스트는 직업적으로 돌보는 의무를 가진다. 일대일 계약일수도 있고 일대 다 계약일수도 있는데 전혀 다른 남남들의 결합이지만 사람들은 가족이라고 인식한다.


결손 아동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주기 위해 노력하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결합이 모두 성인 간의 결합이라면 이 결손 아동을 위한 위탁 가정 정책은 어려운 상황에 있는 아동(미성년자)을 위한 것이다. 아동에게 적절한 거처를 마련해주고 보호하기 위해 기존 가족과 매칭한다. 보호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나라에서 정한 교육을 이수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등 조건이 있고, 매칭된다면 아동을 위탁하는 대신 보조금을 지급한다. 법적인 부모가 되는 건 아니기 때문에 엄마 아빠로 부르도록 한다거나 해선 안 되고 원 부모가 원한다면 아이와 정기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한다.


우리가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할 때 비성애적인 관계에서 가족이 되는 사례도 있었지만 성애적인 관계에서 가족이 되는 사례가 가장 많았다. 이런 결과가 한국에서 한국어로 자료를 찾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결과인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자료를 찾아보면서 ‘가족’이라든가 ‘가족 정책’이라든가 ‘대안 가족’이라든가의 키워드로 밖에 검색을 할 수 없는게 조금 답답했는데 프랑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메세지를 보내 ‘가족’이 뭐라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져보고 싶은 충동이 들 정도였다.


이런 제한적인 상황에도 알 수 있는건, 동거이든 팍스이든 결혼이든 그 외 다양한 가족 형태이든 모두 시민 개개인이 원하는삶, 원하는 가정을 선택하고 살아가는데 국가가 적극적으로 협조한다는 것이다. 또 프랑스 사람들이 동거, 결혼, PACS, 기타 다른 다양한 형태 모두를 구분짓거나 차별하지 않고 그저 가족으로 함께 살아간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시니, 킹콩, 모해 각자 공부해온 내용을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다음주에 이야기해보겠지만 무엇보다 궁금한 건 지금 이 글을 읽은 당신의 감상이랍니다[참고 문헌]

1. 단행본
- 이승연(2018), “팍스, 가장 자유로운 결혼-프랑스에서 부부 대신 파트너로 살기”, 스리체어스

2. 논문
- 이상욱(2019), 프랑스 민법상의 PACs(동거계약), 한국가정법률 상담소 특별기고
- 전영(2017), 프랑스에서의 혼인과 가족생활 보호에 관한 연구 : 팍스제도와 동성혼을 중심으로,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3. 뉴스
- 조선일보 : 결혼않고도.. 프랑스에선 다양한 신개념가족이 태어납니다.
- 대안금융신문 : 1인 노인가구의 대안으로 떠오른 ‘하우스쉐어링
- 사회적경제 미디어 : 노인 소유의 빈집, 청년‧신혼부부에 빌려준다
- 뉴스포스트 : [기획_생활동반자법] 제도 밖 동거인은 절대 안돼?
- 베이비뉴스 : 변화하는 가족 독일과 프랑스는 어떻게 했을까
- 충청남도공익활동지원센터 : 정상가족을 넘어 다양한 관계를 보장하다
- 주간조선 : 프랑스를 통해 가족을 다시 생각한다.
- 스브스뉴스: [SBS스페셜] 밥상이 광장이다④

4. 인터넷 문서
- 위키백과, 프랑스 68운동
- 위키백과, 시민연대계약

5. 다큐멘터리
- EBS 다큐프라임 - Docuprime_결혼의 진화 3부 새로운 가족이 온다


문의 및 의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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