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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신의 한 수'를 두기 위해서는 필요한 게 있다. 관찰과 통찰이 그 무기이다. 적절한 수를 놓기 위해서는 상황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항상 좋은 수를 놓을 수 없지만 적어도 최악의 수는 피할 수 있다. 최악의 수는 대개 감정적인 선택일 때가 많다. 감정을 배제하라는 게 아니다.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감정적인 선택은 자충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충수를 둘수록 궁지에 몰리고 조급함에 둘러싸이고 만다. 말처럼 쉽지 않겠지만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할수록, 그리고 급하다고 여겨질수록 천천히 따져봐야 한다. 궁지로 몰아가고 조급하게 만드는 건 상황보다는 자신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기억해야 할 점은 빠른 결정은 좋지만 급한 결정은 좋지 않은 결과를 야기한다는 사실이다. 빠른 결정은 자신만의 이유와 직관에 의해 작정하고 움직이는 것이라면, 급한 결정은 그렇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급한 결정이 더 급한 결정을 요구하는 상황을 야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급하게 결정해야 할 때는 분명 있다. 그러나 급할지라도 즉석에서 결정해야 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떤 상황일지라도 잠깐의 시간은 확보할 수 있다. 이때, 해야 할 것은 조급하다고 느끼는 이유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왜 궁지에 몰린다고 여기는지 자문해봐야 한다.
단순히 결정을 보류하기 위한 시간확보가 아니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감정적인 결정은 피하는 게 좋다. 당시의 감정은 기억하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감정을 조장하는 상황일수록 더욱 급한 결정을 피해야 한다. 상황을 더욱 살펴봐야 하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상황이 눈에 보이도록 하는 게 큰 도움이 된다. 상황을 명제화하는 것이 대표적인 방법이다. 쉽게 말해, 글로 옮기는 것이다. 이를 관찰이라고 한다. 글로써 상황을 묘사하면 눈으로 상황과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감정을 파악하고 그것에 이름을 붙이면 자신의 상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를 '감정 명명하기' 라고 하는데, 감정적인 상황을 객관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뿐만 아니라 듣기에는 그럴싸했지만 글로 상황을 확인하면, 이상한 지점들이 보일 때가 많다. 절대적으로 보이던 상황을 객관화하고 상대화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최악의 수만큼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수를 피해야 '신의 한 수'라 말할 수 있는 수를 놓을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결정을 하는 데 있어서 상황을 아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그렇기에 '관찰하는 힘'은 강력한 무기라 할 만하다. 관찰을 통해 상황과 감정을 명제화한다는 것은 줄거리를 쓰는 것과 같다. 말 그대로 상황을 읽는다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응을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관찰이다. 무엇보다 관찰의 과정을 거치면 불필요한 반응을 줄일 수 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 그리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로운 선택지를 발견하는 것이다.
살펴봤듯 관찰은 상황에 대한 줄거리를 쓰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통찰은 무엇일까? 흔히 관찰과 통찰을 하나로 묶어서 얘기하곤 한다. 이 둘은 연결되어 있기에 하나로 묶여서 소개될 때가 많다. 관찰할 수 있어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관찰이 명제화하는 과정이라면, 통찰은 서술된 줄거리에서 교훈이나 깨달음을 발견하는 것을 말한다. 사전에서는 "예리한 관찰력으로 사물을 훤히 꿰뚫어 보는 것"을 통찰(通察)이라고 한다. 사전의 정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통찰은 관찰력을 전제로 한다. 관찰하지 않고는 통찰할 수 없는 것이다. 관찰이 상황을 빗대어 비유로 설명하거나 자신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이라면, 통찰은 설명한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만의 언어나 비유로 바꾸어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핵심을 알기 때문에 가능한 변환과정이다.
의사결정에 있어서 관찰과 통찰은 기준을 제공한다. 관찰과 통찰이 바른 결정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 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한컴타자 연습에 있는 '부자와 당나귀' 내용을 통해 살펴보자.
[부자와 당나귀]
어느 날 아버지와 아들이 당나귀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시골길을 따라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처녀들 곁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저것 좀 봐" 하고 처녀들 중 하나가 말했습니다.
"당나귀는 편히 걷도록 두고 먼지 속을 터벅터벅 걷고 있는 저 어리석은 사람들 좀 봐"
아버지는 그들이 한 말을 듣고는 아들을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그들은 채 멀리 가기도 전에 몇 명의 노인들과 마주쳤습니다.
"이것 좀 보란 말이야" 그 중의 한 노인이 다른 노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내가 말한 것이 사실이라는 걸 알 테지. 요즘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조금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 아버지는 곁에서 불쌍하게도 곁에서 걷고 있는데 아들 녀석은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것 좀 보라구."
이 말은 들은 아버지는 아들을 당나귀에서 내리도록 한 다음 자신이 당나귀에 올라탔습니다. 얼마 후 그들은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부인네 셋을 만났습니다.
"아이, 망측해라!" 하고 여자들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어쩌면 저 가엾은 소년이 매우 지친 것 같아 보이는데도 걷도록 하고 혼자서만 왕처럼 당당하게 당나귀를 타고 갈 수 있죠?"
그러자 아버지는 아들을 안장에 태우고는 마을을 향해 계속 타고 갔습니다. 거기에 도착하기 직전에 젊은이 몇이 그들을 불러 세우고는 말했습니다.
"그 당나귀는 당신들 것입니까?"
"그렇소" 하고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당나귀를 타고 가는 것으로 미루어 보면 누구도 그렇다고 생각지 않을 것이오. 당나귀가 당신들을 태우고 가는 것 보다 당신들이 당나귀를 들고 가는 것이 더 어울리는 것 같소" 하고 그들이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은 당나귀에서 내려 당나귀 다리를 밧줄로 단단히 묶은 다음 장대에 붙잡아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자기 장대의 한쪽 끝을 잡고 당나귀를 매고 가는데 만나는 사람마다 큰 소리로 웃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그들은 어떤 다리에 다다랐습니다. 그러자 당나귀는 발길질을 하기 시작해서 밧줄을 끊고 강속으로 떨어져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늙은 아버지는 할 수 없이 아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오며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다가는 결국 누구의 비위도 맞추지 못한다.'
_부자와 당나귀
'부자와 당나귀'를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은 분명하다. '배놔라 감놔라'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과 그들의 주장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고 타당해 보인다는 점이다. 또한 자신들의 생각을 얘기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비웃는다는 점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또 다른 사람들의 비웃음을 자아낸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의 방법이기에 미숙함이 보이는 것이다. 묶는 방법이 미숙했기에 당나귀가 발길질로 밧줄을 끊고 도망치다가 강속으로 떨어져 빠져 죽었을 것이다. 뿐만아니라, 이 부자는 '당나귀'를 팔기 위해 나선 목적보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더 주목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렇게 관찰한 내용에서 통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통찰이 관찰한 내용의 핵심을 파악하는 것이라 했을 때, 우선 늙은 아버지가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 하다가는 결국 누구의 비위도 맞추지 못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기준이 없으면 누군가의 얘기에 휘둘린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결국 누구의 비위를 맞출 수 없다는 사실과 무엇을 하든 욕을 먹기 마련이라는 사실, 그리고 '당나귀'를 팔기 위해 길을 나섰다는 사실과 목적을 잊으면 당나귀도 잃고 얻는 것은 허무함 뿐이라는 점을 목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