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로 향하는 이유
어제, 기적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얼마 전 복지관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왔다.
술에 의존하고 살고 있는 중년의 남성을 걱정하고 있는 어머니로부터 의뢰였다.
집에서만 생활하는 고립생활을 수년간 해오고 있어 건강상태가 급격히 나빠져 영양수액이라도 놔달라는 내용이었다.
첫 만남은 다른 의료진이 방문해서 만나게 되었다.
첫 재택의료에서 시행한 혈액검사는 처참했다.
수년간 술에 의존하여 살아왔다는 것을 잘 표현하는 혈액검사 결과였다.
의료진들은 필사적으로 다른 중재방안을 모색하느라 힘을 쏟았다.
담당 의사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함께 방문해서 상담을 해보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변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고 방문일정을 잡게 되었다.
그때는 나도 함께 방문을 하게 되면서 중년의 당사자를 만나게 되었다.
한 사람을 위해 모인 전문의 2명과 지역사회 간호사는 진심으로 당사자를 위한 치료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마르고 선한 인상과 힘이 없어 보이는 듯한 눈빛은 속상하게도 만들었다.
사연이 없는 집은 없겠지만 당사자의 사연을 들으니 참으로 외롭고 쓸쓸한 인생을 살아왔겠다고 생각했다.
과거의 상처가 가득했지만 그 누구도 진심을 담아 남성을 안아주지 못했겠다고 느꼈다.
간단한 활력징후 측정을 하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첫 만남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원활하고 개인의 비밀 보장을 위해 담당의사와 나는 먼저 의원으로 향하기로 했다.
그리고 2시간 남짓 지난 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에게 전화가 왔다.
당사자와 함께 의원을 방문해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직접 병원에 들러 병원 위치도 소개하고 오랜만에 칩거생활에서 벗어나 외부생활을 함께 해보기로 했다고 했다.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 들러 약을 수령해서 약모양을 보며 설명을 해주면 더 좋겠다고도 했다.
‘이게 가능한 일일까?’
나는 전화를 받고 기적 같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당사자와 나와의 첫 만남은 분명 집 문 밖을 나서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았고,
약물치료를 하는데도 의지를 일으켜 세우는데 까지 힘이 들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끊고 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의원에서 만난 당사자는 사회에서 만나는 다른 사람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집 밖을 나서기까지, 그리고 직접 의원에 오기 전까지 자기 자신과 싸우며 용기를 내었을 당사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오랜 시간 술이라는 것을 통해 자신과 싸우며 좌절을 경험했을 당사자가 의원에 온 것은 기적과도 같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노력과 힘이 가장 강력했겠지만 순수하고 진중한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아주 오랜만에 직접 의원에 들러 진료를 보고 약처방전을 수령해 약국에서 약물을 조제하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스스로 잘할 수 있다며 자긍심을 느끼며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준 당사자에 너무 감사했다.
기적, 생각보다 나의 주변 가까이에서 존재했다.
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과는 다르게 현실에서 실천될 때 나에게 무한한 영감을 가져다주었다.
건강형평성을 수호해 나가는 간호사.
내가 지역사회로 향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