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까지도 생각하게 된 나
‘이 좋은 날, 방문진료 말고 다 같이 소풍 한번 갔으면.’
방문진료에 함께 동행하고 방문의료를 진행한 지 1년쯤 다되어 갔다.
방문진료를 담당하고 있는 의사 선생님은 내가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이 좋은 날 다 같이 소풍 한번 갔으면 하는 소망을 표현하시곤 하였다. 그리고 방문진료를 하시면서 서 와상이나 집안에만 계시는 분들께 언젠가는 꼭 소풍을 가자고 약속을 하곤 하셨다. 간절함이 닿은 것일까 우연하게도 ‘건강 나들이’라는 제목으로 1년 이상 외부활동이 없는 분들을 대상으로 나들이를 기획하게 되었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 상황, 와상으로 누군가의 조력 없이는 외출이 힘든 상황, 소변이 자주 마려워 오랜 시간 외부활동을 기피하는 분 등등 현관문을 나서기 어려운 이유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많았다. 그나마 코로나 상황이 조금씩 완화가 되고 마스크만 쓰면 외출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방문진료를 다니는 사람과 방문진료를 받는 사람도 희망을 조금씩 꿈꾸게 되었다.
여름이 가고 귀뚜라미 소리가 나기 시작하는 가을 어느 날 ‘건강 나들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장소는 너무 나도 잘 알고 있는 인근의 넓은 들판으로 정했다. 방문진료로 만나고 있는 장애인, 노인, 아동 누구라도 나들이를 갈 수만 있다면 함께 가보도록 참여 명단을 종이에 써 보았다. 그 명단 중에는 1년 이상 외출한 경험이 없는 분들로 우선 적게 되었는데 7~8명 정도가 리스트에 올랐다. 그리고 나들이를 갈 수 있는 사람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되었다. 방문진료를 다니는 의료진만으로는 부족하여서 의사와 간호사가 참여하고 있는 건강돌봄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보기로 했다. 마침 위원회에서도 돌봄 활동에 관심이 많은 터라 너와 나 할 것 없이 참여하겠다는 약속을 받고 더 열정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나들이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손길은 생각보다 많았다. 외부 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휠체어가 필수적인데 나들이 당일에 옷을 입히고 음식을 준비하고 휠체어로 옮기고 필요한 장비류를 챙기려면 자원봉사자 한 명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또 외부활동을 하면서 휠체어를 밀고 화장실이 필요할 때 도와주고 요청사항을 도와주는 과정도 필요했다. 너무 쉽게만 생각했던 것일까 생각보다 많은 인원이 필요하고 준비물이 점점 많아져서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아 불안하기만 했었다.
한 분당 세 명의 도움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종이에 써가면서 자원봉사로 참여하시는 분들의 역할을 정하고 나니 3명 정도로 정리가 되었다. 더 많은 분들을 자원봉사자로 모시게 되면 너무 많은 사람 때문에 오히려 나들이를 충분히 즐길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가족이나 가장 친한 친적이나 친지를 직접적으로 지원할 수 있게 했고 자원봉사자 두 분, 이렇게 세 분을 모시게 되었다. 집에서 넓은 들판까지의 이동은 장애인 콜택시와 기관의 차량을 이용하기로 정했다. 이동을 보조해 주시는 두 분, 그렇게 팀이 꾸려지게 되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서 나들이를 가게 될 사람은 다섯 분으로 정해졌다. 더 많이 가고 싶었지만 코로나의 상황과 아직 일교차로 날씨가 쌀쌀한데 현재 건강 상황을 우선으로 아쉽지만 다섯 분이 함께 하기로 했다. 총 다섯 팀의 짝을 지어주고 나들이에서 진행할 것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밥도 먹어야 하고 구경도 해야 하고 놀이도 해야 하는데...
너무 오랜만에 외출로 많이 기대하고 계실 분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이동시 준비할 것, 누구나도 잘 먹을 수 있는 식사준비, 앉을 수 있는 돗자리, 용변을 해결할 수 있는 장애인 화장실, 쓰레기를 해결할 수 물품 등 물품들을 준비하니 큰 쇼핑 가방이 세 개나 되었다. 그리고 누구라도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은 외부기관의 도움을 받아 준비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소풍에 함께 하고 싶다는 따뜻한 배려와 지원이었다. 최종으로 장애인 화장실 확인을 하기 위해 답사를 갔을 때 가슴이 털썩 내려앉고 말았다. 바로 다음 날 건강 나들이를 앞두고 임시폐쇄가 되어있었던 것이었다. 사전 점검 시에 개방되어 있었고 이용 가능하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토우로 인해서 수리로 임시폐쇄가 되었던 것이었다. 장소를 다시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주변을 탐색하다 다행스럽게도 10분 이내에 있는 다른 장애인 화장실을 찾을 수 있었다. 안도의 한숨을 돌리고 혹시 빠진 것은 없을까 마지막 준비를 하게 되었다.
D-day 드디어 3주간의 준비가 넓은 들판에 함께 모이는 날이다.
장애인 콜택시가 빨리 잡혀서 일찍 오신 팀도 있었고 내가 속한 팀은 두 번째로 도착하였다. 도착하자마자 준비해 온 물품을 비치하고 혹여나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를 점검을 했다. 다 같이 모여서 내리쬐는 햇빛과 가을바람 그리고 새소리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동그랗게 둘러앉아 자기소개를 하고 나눴던 이야기들은 어색하기는 했지만 하하 호호하며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사진을 찍고 보물찾기 놀이를 하며 시간이 너무나도 빨리 흘러갔다. 점심시간이 되고 유관기관에서 정성스레 준비해 준 점심을 함께 나누어 먹으며 소풍에서 먹는 도시락이 가장 맛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특히 누워만 계실 때마다 불평과 불만이 많으신 분이 휠체어에 앉아 햇빛을 쐬며 풍경을 감상할 때 고요함, 불안한 듯 눈을 계속 움직이셨던 분도 한 곳을 지긋이 응시하며 가을바람을 맞을 때의 평안함은 멀리에서 보고 있는 나에게도 전달되는 날이었다.
신체와 마음을 함께 진료하는 날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빨리 흘러 어느덧 가을 소풍을 마치고 서로 집으로 향해야만 했다. 오랜만의 햇빛, 가을바람, 새소리, 나무와 흙냄새를 뒤로 하고 모두들 아쉬워하는 눈빛이 가득했다. 시간이 많이 걸리고 준비하는 것이 힘들기도 했지만 불편한 감정을 한 번에 날릴 수 있었던 눈빛이었다. 직접적으로 전해지지는 않았지만 오랜 기간 침대 안에서 생활하다 건강 나들이에 참여에 만족을 느끼고 계셨다. 나중에 방문진료를 갔을 때 소풍 가기 전 날 기대가 되어서 한숨도 못 잤었다, 또 언제 가냐 말씀을 하시면서 한츰 밝아진 표정을 보니 정말 잘했구나 스스로에게도 만족감을 느꼈다. 신체적인 불편감만 중재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마음마저도 어루만질 수 있는 활동은 생각보다 멀리 있지 않았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당연할지라도 누군가에게는 큰 소망이라는 것을 공부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