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같은 고민
얼마 전, 방문의료사업을 진행했던 전 직장에 회의가 있어서 다녀왔다. 사실 회의 겸, 안부 인사 겸 일찍 가서 방문의료와 관련된 근황과 다양한 소식을 접했다. 지금은 방문의료가 종결이 되고 재택의료시범사업으로 이어져 진행되고 있는데 여러 가지 장 단점은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방문의료를 진행했을 때 간호사 직역은 나 혼자였지만 지금은 재택의료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간호사 두 분이 계신다. 그래서 서로가 힘든 부분을 잘 이해하고 도와주며 힘이 되어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여전히 똑같은 고민의 굴레'
방문의료와 관련된 사업은 어쨌든 방문의료를 실천하기 위한 것이라 찾아가는 의료라는 점은 확실하다. 그러기 때문에 서로 공감이 되고 고민하는 지점은 비슷한 것만 같았다. 지금은 방문 횟수가 더 늘어나고 챙겨야 할 지점은 더 확대되었지만 본질적으로 대상자와 소통하고 중재활동을 계획하며 전반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고민들은 이어져 갔다. 특히 여러 집을 정신없이 다니다 보면 시간 약속과 스케줄, 중재활동에 예민해지곤 한다. 머물러야 할 시간 내에 진료와 처치가 끝나면 참 좋지만 변동사항은 자주 생겨서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리고 이동시간도 고려해야 하는데 교통상황이 좋지 않거나 사고가 나면 전체적으로 시간이 지연된다.
이미 기다리고 있을 대상자와 가족들, 진행해야 할 중재목록, 예방접종철이라면 콜드체인을 유지하기 위한 아이스박스 온도 등등 수많은 것들이 지나가면서 그 상황들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는 것이 방문의료코디네이터의 주 핵심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그 상황이 자주 노출되다 보면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져 방문 후에는 녹초가 되곤 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분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니 이러한 것들은 여전히 해소가 되지 않았고 방문 횟수도 동시에 늘어서 비슷한 고민이 연속되는 것을 체감하였다. 제한된 시간과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최고의 중재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고생하고 계시는 모든 방문의료팀과 재택의료센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제발 이것만은 부탁해요'
방문의료의 첫걸음은 대상자와 약속을 잡는 것이다. 일명 방문의료 스케줄이라고도 하는데 전화로 대상자와 직접 혹은 가족, 요양보호사 등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일이 잦다. 전화 통화로 소통하다 보니 의견이 잘 전달이 되지 않거나 약속이 엇갈리는 일도 제법 있다. 그러다 보면 약속을 해서 집으로 갔지만 부재 중일 경우와 다음에 방문을 요청하는 일이 간혹 생기기 시작한다. 인지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대상자를 만나면 미리 약속을 하더라도 쉽게 잊어버리셔서 만날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뒤에 있는 스케줄을 앞으로 당겨 진행해야 하는데 그분도 상황이라는 것이 있어 때때로 매끄럽지 못한 방문이 된다. 특히 앞서 이야기했지만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하고 중재활동을 준비한 코디네이터는 다시 하루를 재구성해야 하고 빠른 의사결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에너지가 두 세배로 필요해진다. 예방접종 백신의 경우 콜드체인과 외부 노출시간이 많아지면 사용하지도 못한 채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는 무조건 1위이다. 그리고 혈액체취를 위한 금식시간 유지,
검체를 보관하는 용기의 상태, 폐렴 등과 같이 각종 감염병에 따른 것들을 고려해서 다시 방문스케줄이 배치된다. 그것도 이동 준비를 하며 차에 같이 동승한 의료진 혹은 다른 전문가들이다.
다른 것들은 몰라도 꼭 이 것만은 지켜졌음 하는 바람이 하나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휴대전화를 챙겨 나가는 것이다. 방문 횟수가 거듭할수록 많은 분들은 방문의료팀을 가족같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근처에 잠깐 나갈 일이 생기면 휴대전화를 가져가지 않는 분들이 많이 계신다. 금방 되돌아온다는 전제 하에 그러실 테지만 전화벨은 들리는데 집 안에는 사람이 없으면 정말 아찔하다. 가끔 혼자 방문할 때가 있었는데 전화벨은 울리는데 대답이 없어서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마음 졸이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리고 주변 가족이나 요양보호사들도 변동사항이 생기면 방문의료팀과 소통하는 것 정말 필요한 소통과정이다.
'대안은 무엇일까'
방문을 하기 전 전화를 통해 방문일정을 꼭 확인하곤 했었다. 방문 전날에도 전화해보기도 하고 집에 걸린 달력에 표시도 해보았다.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해 보았지만 방문일정을 맞추기 힘든 분들은 여전히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었다.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허탕치고 오는 날마다 준비했던 중재활동을 보며 씁쓸하기도 했다.
방문 직전에 전화통화로 지금 집으로 가고 있으니 어디 가지 말고 꼭 계셨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래도 다섯 번 중에 네 번은 집에 계셨던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방문을 한다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는 방법들이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었다.
방법은 생각보다 많았다. 리마인드 콜, 대상자와 함께 방문약속 잡기, 동일한 날과 시간대에 약속 잡기, 가족이나 친지한테 알리기, 요양보호사나 활동지원사에게 도움받기, 자주 소통하기, 달력에 표시하기, 다른 연계기관과 소통하기 등등 방법은 정말 다양하다. 하지만 방문의료코디네이터는 이러한 방법들을 모두 다 시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수가 생긴다는 것이다. 바뀌지 않을 상황을 좀 더 유연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그나마 소진을 예방하기 위한 방법 같다. 이를 테면 같이 동반한 전문가와 함께 차를 마시며 언제 다시 방문을 할지에 대한 논의, 근처에 계시면서 자주 방문했으면 좋았을 대상자를 찾아뵙는다던지 등의 방법이 있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한다는 것, 정말 삶의 질이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절실하기에만 가능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