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과 관련된 이야기
1인가구와 고령인구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여러 가지 사연과 상황으로 어쩔 수 없이 혼자 지내게 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만큼은 건강을 잘 지켜야 했다. 집안 화장실에 가다가 넘어지기라도 정말 곤란한 상황이 생기고 만다. 방문 의료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서 조금은 무게 있는 주제를 다뤄볼까 한다.
와상상태로 지낸 지 오래되어 욕창이 심해져서 방문진료나 방문간호, 더 넓은 폭의 방문의료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다. 와상으로 오랜 시간 보내게 된 이유를 대부분 고령층에서 혼자 화장실 가다가 혹은 길을 가다가 넘어져 고관절 골절과 같은 외상이 주원인이다. 생각보다 빙판길과 같은 곳에서 넘어졌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 극소수였고 제일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집안이었다. 그리고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등 만성질환으로 약을 하나쯤은 복용하고 계시는데 침대에만 계시는 생활을 하다 보면 문제가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한다.
고관절 골절 후 와상은 아니지만 좌식생활을 하고 계신 한 여성 어르신을 만나왔다. 고혈압과 고지혈증을 가지고 계시면서 독거로 지내시며 요양보호사의 도움으로 생활하고 계신 분이다. 오랜 기간 좌식생활을 하시는 바람에 체중은 너무 많이 늘고 운동을 안 하시니 근육이 빠져서 이제는 혼자서는 거동이 힘들어졌다. 휠체어도 성인 두 명의 도움으로 간신히 옳겨갈 수가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발생했다. 병원에 가기 힘든 것이다. 혼자서 이동이 힘들고 많은 사람의 조력이 있어야만 병원으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요양보호사 한 분으로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래도 약은 타서 드셔야 하니 요양보호사가 어르신이 다시는 의원을 방문해서 대리처방을 받아 약을 조제해 복용하셨다. 하나의 대안이긴 하지만 실제 방문의료로 처음 만났을 때 혈압이 조절되지 않고 있었다. 약을 드시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축기혈압이 180대 측정되면서 나름 두통도 있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약을 빠뜨리고 안 드셨겠거니 했지만 지속적으로 만나면서 문제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방문의료로 동참하시는 내과 전문의 선생님께서 혈압을 재서 보여드린 적이 있는지 묻자 혈압을 잴 수 있는 기계도 없을뿐더러 거기까지 생각을 못하고 계셨다. 약만 꾸준히 잘 복용하면 나을 것 같았던 것은 오히려 꾸준한 관리와 모니터링이 필요했다. 그래서 약을 방문의료팀이 처방하기로 하고 경과를 관찰하기로 했다.
원래 드시고 있던 약과 용량을 참고로 기저질환에 대한 약처방으로 약을 복용하니 2-3개월 만에 혈압은 정상범위로 안정화되었다. 그때는 의사와 직접 대면해서 진료하는 것이 이렇게나 중요하구나 느꼈었다. 특히 만성질환의 경우는 여러 가지 여건에 따라서 좋아지기도 나빠지기도 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그렇게 이제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시기를 바랐었지만 몇 달 지나지 않자 다른 문제가 발생했다. 요양보호사가 바뀌어서 며칠 공백이 발생했고 다른 요양보호사는 처방전으로 근처 약국에 조제할 수 없겠다고 한 것이다. 나는 심히 당황스러워 이를 어쩌나 며칠이나 전전긍긍했던 기억이 있다.
사각지대를 없애 보려고 했지만 또 다른 사각지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약을 처방해도 처방전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 처방전을 가지고 약국에서 약을 조제해 줄 수 있는 사람, 약을 복용할 수 있게 도와줄 사람, 만성질환을 함께 관리해 줄 사람 너무 많은 사람이 필요했고 이 중에서 한 단계라도 삐걱거리면 건강하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1인 가구이면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지역사회에 얼마나 많을까. 대부분도 비슷하게 지내실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집에만 있다 보면 이러한 생각들로 가득 차 우울해지고 침대에서 생을 마감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이미 코로나19 감염증으로 비슷한 경험한 바가 있다. 코로나 감염증 초기에는 확진이 되면 자가격리를 했어야만 했고 집 밖을 나서는 것은 불법이었다. 약국에는 약이 없어 열이 펄펄 나도 타이레놀로 버텨야 했고 나중에서야 비대면 진료로 가까운 병원에 전화해서 재택치료를 받을 수 있었지만 약을 전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으면 목 빠지게 약만 기다렸다. 보건소 직원과 퀵서비스, 병원 관계자들이 하루종일 약배송을 했지만 길게는 하루 이상 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1인 가구가 아닌 가족이나 친지들과 생활하는 사람은 그나마 상황이 좀 나았다. 재택치료로 통화를 하며 처방전과 약을 가져다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을 때 왠지 작아지는 목소리는 아직도 선명하기만 하다.
만약 혼자 살아가면서 거동이 불편해진다면 약을 처방받고 조제하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할까? 나를 진심으로 도와줄 사람이 있는지 또 만성질환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멀리 있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고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