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받는 날
어, 왔어? 보고 싶었어.
방문의료팀이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이다. 방문주기는 각자 다르지만 더 자주 가도 한 달에 한번 가도 공통으로 들을 수 있는 말이다. 특성상 어둡거나 어려운 상황을 많이 마주하지만 그 속에서 웃음거리를 찾고 희망을 만날 때면 봄 철 딸기와 같이 싱그럽고도 달콤하게 느껴진다. 이번 사연은 밝고 재미있는 분을 잠깐 소개할까 한다. 내가 만나왔던 분 중에서 신체적 상황이 가장 좋아졌고 많은 지지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함께 노력하여 매일 새로운 숙제가 생기는 분이시다.
첫 만남은 가득 긴장을 안고 만나게 되었다. 와상, 쇄골 하 정맥관을 가지고 있고 소변줄에 기저귀, 두 다리의 욕창과 궤양, 양팔과 양다리에는 근육이 없어서 움직이시질 못했던 상황이었다. 말씀하시기도 힘드신지 질문에 대답을 잘 못하시면서 고개 정도만 끄덕이는 정도였다. 활력징후를 측정을 하고 아프신 곳, 어려운 것들에 대해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뇌경색이 있으시면서 다리의 큰 혈관이 막히는 심부하지정맥색전 (D.V.T)과 폐에 혈관이 막히는 폐색전으로 어려가지 시술과 약물치료를 중환자실에서 한 달 정도 지내신 분이었다. 점차 쾌차하셔서 일반 병동에서 마지막으로 집으로 가고 싶다는 환자 분의 요청으로 편안한 집으로 오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의사가 주기적으로 확인이 필요했고 방문간호와 요양보호사 파견으로 집에 계시지만 의료공백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 보호자들의 주 요청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었다. 먼저 의료기관이 아닌 집에서 의사를 보조하거나 지시에 따라 의료행위를 해야 했었고 의료기구들이나 자원들이 풍부하지 않은 상황에서 질적인 술기를 하려고 하니 조금은 막막하기 시작했다. 다음 방문할 때에는 무엇을 좀 챙겨 와야 할지, 필요한 기구들은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되고 다음 방문을 나갈 때에는 진료 가방이 하나 더 생기는 마법을 이루어내기도 했다. 가방이 늘었지만 정성을 쏟는 만큼 양다리의 욕창과 궤양은 금방 좋아지기도 했다. 감각이 점차 돌아오고 있는지 아프니 살살해달라는 요청과 함께 다리의 움직임이 조금씩 생기는 변화를 볼 때 희망이 자라나기도 했다.
제일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에요? 꾸준히 한 달에 두 번 의사와 함께 방문한 지 6개월 즈음 지났을 때였다. 이제는 쇄골 하 정맥관도 제거하고 두 다리의 욕창과 궤양은 상처가 남긴 했지만 깨끗하게 아물었다. 명료하지는 않지만 의사소통도 가능해지고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대화가 가능해졌다. 아직도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은 연세가 있으신 부부로 살고 계셨는데 환자분은 할머니이셨고 주간병인은 할아버지이셨다. 할머니가 기력을 되찾으시고서는 할아버지에게 뭐라고 하시는 장면이다. 밥을 이렇게 차려주어서 어떡하냐, 맛이 없다, 등이 아파죽겠으니 마사지를 해달라는 요청을 하며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타박을 하셨는데 한평생 할머니께서 할아버지를 보살피고 뒷바라지한 세월이 교차해 지나갔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큭큭 거리며 이제는 입장이 바뀌어 할머니께서 보살핌을 받을 차례이구나 생각하였다. 두 분이 그렇게 옥신각신하는 동안 반찬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온통 김치 밖에 없었다. 아니 환자에게 영양식을 제공해야 되는데 김치 밖에 없다니 나는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니까 밥을 한 숟가락 드시고는 내려놓으셨을까 싶었다.
할머니는 김치를 맛있게 담갔어. 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셨다. 80여 년을 사시면서 할머니께서 담근 김장만 몇 포기이실까? 자녀 분들도 나눠줘야 하고 한 겨울을 나야 할 것도 남겨야 하고 계절에 맞는 김치들을 해오셨을 생각을 하니 지금은 겨우 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지만 대단해 보였다. 이야기를 나누고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직접 담근 김치가 드시고 싶으셨고 장을 보면서 반찬을 사다 보니 양손 무겁게 김치를 사들고 집에 오신 모양이셨다. 두 분의 애정이 아주 끈끈하시다고 생각했다. 그럼 이번에는 할머니께서 드시고 싶은 음식은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나는 바닷가에서 자랐어. 좋아하고 먹고 싶은 것이 없다는 핑계로 누군가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할머니를 이겼다. 조금은 이기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한평생 가족들이 먹고 싶은 반찬을 식탁에 올리셨을 할머니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먹고 싶은 것을 누군가가 준비해서 식탁에 올려주었음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그렇게 또 이야기보따리를 열고 과거에서부터 어떤 삶을 사셨는지 듣게 되었다. 아주 긴긴 시간이었지만 요약정리하자면 시집을 서울로 오게 되었고 그전 까지는 바닷가에서 살면서 해산물은 좋아하지 않지만 생선 말린 것을 좋아하셨다고 말씀하셨다. 바다 수영도 좋아하셔서 지금은 그렇게 수영이 하고 싶다는 의지도 표현하시기도 했다.
바닷가에서 나오는 말린 생선. 그것도 소금이나 다른 가미를 하지 않은 채 자연 바람으로만 말려 찜기에 살포시 쪄서 간장 양념장에 찍어 먹는 생선. 정확하고도 확실한 욕구를 표현하셨다. 그런 반찬이 올라오면 식사를 하실 수 있겠냐는 질문에 다른 사람에게 부담을 주기 싫으셨는지 모른다고만 하셨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식탁에 요청하셨던 음식이 올라왔다. 요양보호사님에게 묻자 아주 잘 드신다고, 생선 한 마리에 밥 한 공기 뚝딱이라고 말씀하셨다. 흡족해하시는 할아버지와 금세 힘이 생기신 할머니를 보니 먹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공부하게 되는 시점이었다. 특히 노년기 단백질 섭취는 노쇠를 지연하는데 필수적인 영양소이다.
1년 정도 꾸준히 만난 시점, 지금은 침대를 벗어나는 숙제를 해나가고 계신다. 와상에서부터 앉기, 휠체어에 앉기, 일어서기까지 꾸준히 레이스를 달려왔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위기는 있었지만 그것 또한 잘 넘기고 지금은 혼자 일어 설 준비를 조금씩 하고 계신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항상 방문했을 때 해주셨던 말은 ‘어, 왔어? 보고 싶었어.’라는 말이었다. 상대방을 맞이한다는 것은 행복할 때에도 아플 때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공부하면서 한 편의 드라마를 경험한 것 같다. 많은 분들이 방문했을 때 맞이해 주시고 ‘반갑다, 또 언제 올 거냐’라고 환대해 주셨을 때 가장 힘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