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블랙 터틀넥
자주 입게 되는 옷들이 있다.
누가 입으라고 강요 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같은옷을 여러벌 사서 입는 사람처럼 그렇게 마냥 편한옷이 늘 있게 마련이다. 스티븐 잡스가 유행시켜놓은 패션은 아직도 살아있다. 그가 만들어놓은게 스마트폰만이 아니다. 스마트폰과 블랙터틀넥의 전성기는 그때부터 시작된듯 하다.
한벌 인듯한 같은 디자인의 옷으로 옷장을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어디까지나 패션은 주관적인 기호 식품이다. 좋아하는 색깔과 옷감의 디자인과 재질 핏 그리고 브랜드 어디서 구매하느냐의 차이 같은 옷을 여러 가게에서 입어보고 핏을 보고 고민을 한다.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내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르는 것보다 더 힘든일이다. 보통의 경우 나란 사람은 큰일 즉 차를 선택한다든가 집을 선택한다든가 직장을 선택한다든가의 선택은 길게 고민하는법이 없다. 아니 길게 고민할수가 없다. 선택의 폭이 많치 않기에 내 능력의 정도만으로 방향을 선택한다. 하지만 옷을 고르는 문제 만큼은 언제 부터인지 현정이의 선택에 의지하게 되었다. 내가 선택한 옷들이 내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현정이가 골라준 옷들이 주는 만족함과 꽤나 거리가 멀었다. 아무리 봐도 같은 옷임에도 사는 사람의 주관적인 눈높이를 만족 하기엔 부족함이 있다. 아주 작은 차이를 찾아낸다. 실로 좋아하지 않고서는 접할수 없는 능력이 자생으로 생겨난다. 매니아가 달리 만들어 지지 않는다. 나에게는 별 품없이 따라다니며 현정이가 골라주는 옷들에 대한 최종 평가만 해주면 된다.
"오빠 이거사라 이거 예뻐"
"응 " "잘 어울리네" 역시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할 무렵 옷장속에 개어둔 스웨터와 두꺼운 옷들을 꺼내 놓는다. 꽤 많은 옷들이 하나 하나 이날을 위해 준비된 모습을 보여주려 펄럭인다.
사람들은 음식만 편식 하는줄 안다. 편식보다 더 편협한건 옷에 대한 선택인듯 하다. 핏이 몸에 맞아야 사는게 옷이라지만 패션과 유행이 돌고 도는지라 다양한 옷들이 선택을 받아야 됨이 사실이다. 하지만 내 옷장의 대부분의 겨울옷은 터틀넥이 주를 이룬다. 그중에서도 십년전에 동대문에서 구매한 검정색 터를넥은 자주 꺼내입는 옷중에 하나다. 십년전 사진 속에 나는 그 옷을 입고 있다. 지금 입어도 핏이며 색상이며 디자인까지 어디하나 빠진게 없을 정도로 만족함을 준다. 다른 터틀넥과 디자인에서 조금 다른점은 어깨선에 두개의 단추가 달려 있다. 어쩌면 그 부분이 마치 훈장처럼 보여서 인지도 모른다.백화점에서 혹은 아울렛에서 비싸게 주고 산 옷들보다 더 자주 입게 된다. 그 옷을 입을때마다 동대문 시장과 매장과 그날의 날씨까지도 소환되어 온다. 까만 비닐봉다리에 아무렇케나 담아 주었던 매장 사장님의 무표정한 표정도 떠오른다. 동대문시장은 고만고만한 시장 건물이 여러채 잇닿아 붙어 있다. 그 많은 건물을 일층에서부터 저인망 식으로 한군데도 빠짐없이 모든 가게들을 두루 섭렵하며 옷들을 본다. 발바닥이 아픈 시늉을 하면 싫어 할까봐 웃으며 따라 다닌다. 현정이의 옷을 고르는 패턴은 장인수준에 가깝다. 그렇게 발품을 들여 고른게 그 터틀넥이다. 까만 터틀넥은 그리 두껍지도 않다. 다른 터틀넥처럼 보풀이 날려 동그랗게 말려 있지도 않았고 늘어나거나 줄어들지도 않았다. 십년전 구매할때의 사이즈를 지긍도 유지하고 있다. 대단한 가공할만한 가성비에 놀라지 않을수 없다.
앞으로도 몇년은 거뜬히 버틸 정도로 옷감은 여전히 살아있고 디자인도 나쁘지 않다. 이러다 내 수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
"오빠 또 그옷 입고 나가게"
"다른것 입고 가 맨날 같은 옷 이야"
일주일중 적게는 한번 많게는 이삼일씩 검은색 터틀넥을 입는다. 다른 종류의 터틀넥도 몇벌 있음에도 유독 그 터틀넥 만큼 선택받지 못한다.
스티브잡스 때문일까! 아닐것이다.
그냥 그옷이 편하고 무난하고 유행을 타지 않아서 일께다. 긴세월에도 행색이 남루해 지지 않는 옷감이 가진 견고함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그런옷을 십년전에 동대문에서 이쁜이가 사주었다.
대단한 안목이다.
오늘도 난 몇벌의 블랙 터틀넥중 동대문표 블랙 터틀넥을 입고 집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