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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가 따로 있나

기저귀 이야기

by 둥이

명의 (名醫)가 따로 있나


지금이야 하얀색 면기저귀를 볼 수 없지만 한때는 온 동네 마당에는 하얀색 면기저귀가 펄럭이던 때가 있었다. 어린 시절 우리 집 앞마당에도 하얀색 면 기저귀가 빨랫줄에 널려 있었다. 머릿결을 풀어놓은 것처럼, 길게 펼쳐진 기저귀는 바람이 부는 데로 펄럭였다. 한들한들 느리게 펄럭이는 면기저귀는 어느 순간 동작을 멈춘 것처럼 보였다. 햇볕과 바람에 빳빳해진 면기저귀에서는 기분 좋은 냄새가 났다. 아기냄새인지, 엄마냄새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비누 냄새인지, 정체 모를 묘한 향기는 그냥 하얀색 기저귀 냄새로 남아 있었다.


면기저귀는 언제나 두부모처럼 반듯하게 차곡차곡 개어져 머리맡 바구니에 담겨 있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기저귀를 요즘 들어 다시 사용하고 있다. 어느 순간 하얀색 면기저귀는 사라졌다. 요즘은 대부분 일회용 팬티기저귀로 옛날의 수고스러움이 없어져 사용하기에 편한 기저귀를 사용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도 일회용 팬티 기저귀를 사용해 키웠다.


그런 기저귀를 다시 사용하게 된 건 장인어른이 아프시고 난 이후였다.

장인어른은 어느 시기가 넘어서자 엉덩이에 욕창이 발생했고, 더 심해지자 변을 지리기 시작했다. 아내는 성인용 기저귀를 사용해 하루에 한두 번씩 기저귀를 갈아주었다. 처남들과 번갈아 가며 장인어른 옆에서 간병을 시작한 건, 장인어른의 병색이 확연히 심해진 한 달 전부터였다. 어젯밤 장인어른은 일곱 번 기저귀를 갈아입었다. 복통이 있어 화장실을 가면 여지없이 기저귀에 변이 묻어 있었다.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어서, 수시로 확인하여 갈아입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사인용 병실이라 조금이라도 늦게 기저귀를 갈아입으면 변냄새가 조금씩 병실을 가득 채웠다.


모 거기까지야 중증 병실이다 보니 다들 이해들은 하다지만, 장인어른 본인이 느끼는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에서도 어쩌면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배설욕구가 통제권 밖으로 벗어났다는 사실은, 삶의 질을 현격하게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기저귀를 갈아입고, 엉덩이를 닦아야 하는 것들을 남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보니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은 너무 자주 변을 지리다 보니 어느 순간 미안한 나머지, 그냥 참고 있었던 것 같았다. 조금 늦게 확인을 해보니, 변이 딱딱하게 굳어 물티슈로 엉덩이를 닦아 내는 게 더 힘이 들었다.


장인어른은 깊은 상실감에 눈물을 흘렸다. 좀처럼 사위 앞에선 보이지 않던 눈물이었다. 밤새 화장실을 드나들며 사위 손을 빌려 기저귀를 갈아야 되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며 뚝뚝 눈물을 보이셨다.


아침밥도 안 먹겠다며 수저를 들지 않았다. 장인어른은 먹으면 또 실수를 할까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참을 그건 아무렇지도 않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의사 선생님 회진 오면 얘기하면 된다고, 처방받고 약 먹으면 금방 낫는 거라고, 그러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고, 우는 아이 달래듯 토닥토닥해드렸다.


한참을 듣고만 있던 장인어른의 표정이 조금씩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얽혔던 감정이, 복받쳤던 슬픔이 조금씩 내려앉고 있었다.


"그래 먹어 보세"


오전 7시 50분


뒷머리를 꽁꽁 묶고 다니던 담당의사는 뒷머리를 찰랑거리며 회진을 돌았다.


"할아버지 변을 지리는 건 변비 때문이에요. 굵은 변이 못 나오니까 자꾸 지리는 거예요. 심각한 것 아니니까 변비약 처방해 드릴게요"


장인어른의 표정은 어느새 밝아졌다.

변도 지리며 살아 뭐 하겠냐던 삶의 의지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 한마디로 씻은 듯이 나은 듯했다.


명의가 따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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