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거리두기 특집
미하엘 하네케는 특유의 차가운 시선으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냉정하게 짚어내는데 아주 탁월한 감독이다. 그는 항상 진리를 추구하며 진실을 자신의 영화에 담으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다큐멘터리는 지양하고 극영화로 철저하게 계획된 틀 안에 담으려 한다. 이로 인해 누군가는 하네케의 영화는 그저 작위적으로 짜인 사회, 윤리적 실험실에 불과할 뿐이라는 혹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게 하네케는 진실에 가까워지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며 고찰을 하는 감독으로 보인다. 하네케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두드러지는 점을 찾자면 바로 거리감이다. 건조한 롱테이크와 더불어 인물에 몰입하지 않고 거리를 유지한 채 관찰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그의 카메라는 냉철한 시선을 관객들에게 충실히 전달한다. 또한 그의 영화 내에 등장하는 비디오와 미디어는 분명 필름과 깊이의 차이를 가지며 관객들에게 거리감을 불러일으킨다.
1997년 발표한 그의 문제작 <퍼니 게임>은 단연 위의 특성이 두드러지는 작품이다. 교외 국경 지역이라는 배경적 설정은 자연스레 거리감을 일으키며 영화에서 등장하는 미디어는 자연스레 관객과의 거리를 늘리는 역할을 한다. 또한 어린아이와 애완견을 포함한 일가족이 싸이코에 의해 학살당한다는 내용은 악인이 처단받기를 원하는 관객의 기대와 예측을 처참히 파괴한다. 그동안 스릴러 영화에서 지켜져 왔던 규칙(혹은 클리셰)까지 뒤엎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보다도 더욱 충격적이었던 점은 그가 미디어를 바라보는 냉혹한 시선이었다. 하네케는 사람들이 미디어에서 자행되는 폭력에 길들어져 폭력성에 무감각하고 이를 즐기기까지 하는 점을 드러낸다. 관객들은 영화가 진행되며 제대로 힘을 써보지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선량한 주인공 가족이 마침내 악인을 향해 반격하기만을 기다린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의 처절한 상황을 롱테이크로 담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지루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피해자를 철저히 유린한 악인의 폭력성은 관객들에게 전달될 때 끔찍하고 충격적이기보다는 느린 호흡의 지루한 장면으로 여겨진다. 관객들은 끊임없이 피해자의 반격, 복수를 원하며 또 다른 폭력을 갈구한다. 마침내 당하기만 하던 주인공이 기지를 발휘하여 악인을 죽음으로 응징한다. 관객들은 환호한다. 하지만 그들의 카타르시스도 오래 가지 못한다.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는 리모컨이 등장하며 악인은 주인공의 반격 씬을 앞으로 돌려버리고 한 치의 반격도 용납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관객들은 철저히 무력한 방관자가 될 뿐이며 애초에 이 영화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관객들이 폭력에 무감각해지고 동조하던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기 위해 하네케는 재밌지만 유쾌하지는 않은 게임을 건 것이다.
이후 하네케는 2005년 작 <히든>을 기점으로 유럽의 환부를 직접 끄집어내며 자신의 영화 세계를 좀 더 확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히든>에서는 알제리인 학살 사건을 묵과하며 위선적으로 살아가는 프랑스인들을 그렸고 <하얀 리본>에서는 아이들의 팔에 매인 하얀 리본이 어떻게 나치 완장으로 변하는지, 파시즘의 태동을 포착하기에 이른다. 더 나아가 가장 최근작인 <해피 엔드>에서는 로랑 가문으로 대표되는 유럽 문명의 붕괴를 선언한다. 그는 위선과 무감각으로 점철된 유럽을 세대별로 그 모습을 보여주며 난민 문제부터 SNS와 같은 미디어의 폐해까지 다뤄낸다. 그런 와중에 영화도 결국 미디어에 불과하다며 자유자재로 관객들을 농락하는 관록을 보여준다. 팔순을 향해가는 나이에도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으며 새로운 미디어를 다루는 그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냉철하게 거리를 유지한 채 세상을 이성적으로 바라보는 미하엘 하네케의 영화는 항상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69기 최동원
- 이 글은 Google Play 스토어에서 무료로 열람하실 수 있는 도서 <Feelm: 1권>(서강영화공동체, 2020)에 수록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