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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M Aug 20. 2021

[9] 논픽션이 영화가 된다는 것

<노매드랜드> 로 보는 논픽션의 '영화화'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영화 <노매드랜드>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노매드랜드 (2020, Nomadland, 미국)


감독/각본 - 클로이 자오
원작 - 제시카 브루더의 <노매드랜드> 
음악 -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출연 - 프란시스 맥도맨드, 데이짓 스트라 외 다수
제작 - 하이웨이먼 필름스 외 다수
배급 - 서치라이트 픽쳐스


장르 - 드라마

시놉시스 - 전 세계가 동행한 가슴 벅찬 여정, 길이 계속되는 한 우리의 삶도 계속된다.
모든 것이 무너진 후에야 비로소 열리는 새로운 길 그리고 희망 경제적 붕괴로 도시 전체가 무너진 후 홀로 남겨진 ‘펀’.(프란시스 맥도맨드)  추억이 깃든 도시를 떠나 작은 밴과 함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낯선 길 위의 세상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펀’은 각자의 사연을 가진 노매드들을 만나게 되고,  광활한 자연과 길 위에서의 삶을 스스로 선택한 그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다시 살아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노매드랜드는 자본주의 시대에 생긴 수많은 삶의 오류와 아픔에 대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 그 뒤편에는 사람들의 실제 고통이 녹아있다. 영화는 이를 단순히 자극이나 흥행의 촉매제로써 사용하지 않는다. 또 고통에 대한 관음이 아닌, 새로운 시대에 대한 귀감으로 이들의 삶을 엿볼 수 있도록 한다. 이 영화화 과정에는 흔히 말하는 ‘악마의 편집’ 이 없다. 영화는 당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로서 증거로 남기도 한다. <대부(1972)>,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와 같은 시대적 가치가 크게 평가되는 원작을 영화화한 작품들은 꽤 많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누군가의 실제가 ‘영화화됨’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철학자 자크 데리다는 "동화에 의해 타자를 전유하는 것에 따르는 위험"라고 말했다. 수잔 손택은 <타인의 고통>에서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우리의 심리 이편에는 관음의 심리가 내포되어있음을 간파했다. 더욱이 역사 이래 가장 무수한 이해관계와 정보의 네트워크로 얽힌 시대에 사는 우리들이다. 그렇기에 원작과 시대의 적나라한 모습을  영화에 담는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노매드랜드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원작을 깔끔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면에서, 나는 이 영화를 바탕으로 논픽션을 영화화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영화의 태도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캐릭터의 재현과 설정


 펀은 원작 <노매드랜드>에는 등장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는 원작의 프로로서, 주인공 ‘펀’의 이야기와 시선을 통해 원작을 재구성했다. 영화는 펀의 여정을 따라가며 약 1년 동안 유목민(nomad)의 삶을 스크린에 담아내는데, 마치 거대한 다큐멘터리와 같다. 이 과정에서 영화가 인물을 재현하는 방법에 있어, 몇 가지의 특징적인 부분이 돋보인다. 



 영화는 이 이야기를 재현하기 위해, 재현 방법에 있어 일반적이지 않은 다른 방법을 택하는데, 바로 실제 노매드를 촬영한 것이다. 밥 웰스, 린다 메이, 스왱키 캐릭터는 모두 실제 노매드다. 영화 초반 펀은 린다의 추천을 받아 국토 관리국 소유 사막에 위치한 애리조나 쿼츠 사이트 캠핑장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여러 노매드의 이야기를 듣는다. 피어오르는 캠프파이어 불꽃을 가운데 두고, 여러 노매드는 자신의 진솔한 이야기를 한다. 고통스러운 이야기 끝에 되려 그들은 빛나는 눈빛으로 희망을 이야기한다. 오히려 답을 이곳에서 찾으라 한다.



“답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교감을 나누며 살다 보면 삶이 달라질 거예요”


“나는 이 삶이 좋아요 자유롭고, 아름답고 지구와 교감하는 삶”



 픽션으로서의 스토리 설정과 논픽션적 캐스팅이 맞물려, 영화는 강력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한 쪽 편에 치우쳐 왈가왈부 않고 오롯이 그들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강한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실제 인물이라는 정보는 영화 개봉 이전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이들의 삶은 과장되지도 축소되지도 않는다.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영화처럼 담아낸다. 특히 영화 초반 린다 메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정말 다큐멘터리인지, 영화인지 헷갈릴 정도로 담백하다. 이렇듯, 영화는 캐릭터를 영화에 끼워 맞추기 위해 이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힘은 영화의 메시지와 시대적 울림은 더욱 깊어지도록 만든다.


   


메시지는 이렇게, 


 영화, 특히 시대의 비판적 흐름을 담는 원작을 가진 영화들은 이를 비판 없이 재현하기 위해 갖가지 노력을 펼친다. 노매드랜드 또한 그 노력이 매우 돋보였다고 생각된다. 영화는 결코 힘들고 고된 모습을 과장되게 재현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노매드’ 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뼈아픈 과거들은 진부하면서도 자극적인 삼류 다큐멘터리처럼 표현될 수도 있었다. 또 고통은 ‘자극’ 이 되기에 오히려 시청자들을 더 끌어들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독은 이 편안한 방법들을 가볍게 무시하고 영화의 메시지를 보다 ‘영화답게’ 전달한다.



 해석하겠다 마음먹으면 끝없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으니, 그중에 노동을 예시로 로 좁혀보려고 한다. 사실 노매드랜드에서 가장 큰 테마이자 중심 소재는 ‘집’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부분을 글에서 다루지 않았다. 독자가 글을 읽은 후 영화가 자본주의와 부동산의 이슈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직접 즐거운 마음으로 분석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가시적이고 명확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소재인 만큼 영화로서의 재현, 영화화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라 감히 기대한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이야기 사이사이에는 일, ‘노동’을 하는 펀과 노매드들의 모습이 들어가 있다. 영화는 고된 현장에서도 삶을 긍정하는 그들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취재 형식 원작의 르포로서, 언론 홍보와 흥행을 위한 자극적인 촉매제로서, 노동의 과장된 모습을 부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로 인해 노매드의 노동이 어떤 시대적 메시지를 지니는지, 삶과 생존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이 진하게 남게 된다. 노동 장면들은 현실과 픽션 그 경계에 명확히 서 있기 때문이다. 



 펀은 아마존 캠퍼포스 프로그램을 통해 일하며 근근이 돈을 번다. 아마존은 크리스마스에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 노매드 노동자를 모집한다. 이게 바로 ‘캠퍼 포스(Camper Force)’ 프로그램이다. 노동자들은 10시간~12시간을 고되게 일한다. 시즌이 지나면 해고되고, 곧 다른 곳으로 떠나게 된다.  여름이 되자 펀은 친구 린다 메이가 일하는 국유림 캠핑장 관리직으로 일한다. 하지만 이 업무는 50대 이상의 중장년층이 하기엔 꽤나 힘들다. 그렇다고 수당이 다른 일에 비해 많은 게 아니다. 초과 수당도 받지 못한다. 이어서 펀은 데이브와 함께 배드랜즈 국립공원에 위치한 월 드럭 스토어 (Wall drug store) 내부 식당에서 일한다. 이후 감자 농장에서도 일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펀을 포함해 다른 캐릭터들이 영화에서 마냥 괴로워하지 않는다. 영화는 그들의 ‘고통’보다는 ‘’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일을 하며 그들은 식당에서 서로의 소개를 주고받는다. 그 모습은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는 우리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린다와 펀은 빨래방에서 소소하게 퍼즐게임을 즐긴다. 월 드러그에서 일하며 데이브와의 인연을 쌓게 되고, 거대한 공룡 동상에 감탄하며 사진을 찍기도 한다. 감자 농장에서는 피자를 나누어 먹는 장면도 등장한다. 


 앞선 장면들은 노매드랜드가 현시대의 미국 노매드 노동자를 영화로서 어떻게 존중하고 재현하는가를 보여준다. 나는 이와 같은 재현은 하나의 영화적 연출이자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영화에서 재현되는 고통에 대해 빠르게 느끼고, 그보다 더 빠르게 소거한다. 노매드랜드의 이러한 기술은 그 속도를 보다 더디게 한다. 우리의 원초의 본능을 자극하기보다, 곧바로 그 삶을 응시하도록 한다. 




펀의 성장 그리고 공동체


영화는 펀이 그 끝에 자신의 상처인 남편과의 과거를 다듬고 정서적으로 성장하는 굵은 스토리로 마무리된다. 그 속을 세세히 들여다보면 펀의 희망과 용기 속에는 끈끈한 연대로 이뤄진 공동체가 있다. 영화는 노매드 사람들의 연대를 담백하게 담아냄으로써, 이 시대를 살아가며 고통받는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 지을 전달 한다. 


 린다의 소개를 받아 도착한 애리조나 쿼츠 사이트의 캠핑장에서 그녀는 노매드 공동체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서로 자신의 것을 공유한다. 이후 영화는 펀의 스토리를 통해 노매드 공동체가 어떻게 엮이는지를 보여준다. 펀이 쿼츠 사이트에 혼자 남아 바퀴가 구멍이 났을 때, 스왱키의 도움을 받는다. 린다 메이가 일하는 그래스랜즈 국립공원 캠핑장에서 함께 일을 한다. 그곳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 데이브와 월 드러그 스토어에서 일을 한다. 모든 여정의 기점마다 그녀에겐 동료가 있었다. 


 이렇게 영화는 길 위의 사람들의 이야기에 대한 하나의 소실점으로서 ‘공동체’를 그려낸다. 그 공동체는 단지 물리적인 노매드의 연합이 아니다. 공동체로 엮어지는 과정에서, 펀의 상처가 점점 해방되는 스토리는 곧 흔들리는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우리가 바라볼 소망이 연대임을 이야기한다. 


영화 속 밥 웰스(Bob Wells)의 모습 / 출처 : Searchlight Pictures


 나는 영화는 특히 공동체의 수장, 밥 웰스와의 대화 장면을 확실한 치유의 전환점으로서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펀이 밥 웰스와 대화하는 첫 장면과, 밥 웰스가 자신의 아들 이야기를 하는 장면은 같은 앵글과 사이즈였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 같은 장면에서 펀은 용기를 내 밥에게 이야기를 했고, 곧 커뮤니티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그 후, 밥과 다시 이야기를 하며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담백하게 수용하고, 곧 그녀는 자신이 살던 마을로 돌아간다. 이후 장면에서는 처음으로 도로 위의 차가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정돈되지 못한 마음을 털어내고자, 그 마무리를 짓고자 가장 아팠던 기억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떠난다. 


 노매드'랜드’ 의 선구자였던 밥 웰스의 대화를 회복의 기점으로 표현해낸 연출은, 노매드 공동체와 연대의 깊이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들었다. 이 장면은, 영화 속 캐릭터들이 굳이 그들의 정신과 비전을 억측해내 언급하지 않아도 강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는 누군가의 진한 삶을 다루고 촬영하는 영화에게 필요한 기술적 자세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결론


 어떤 역사나 사회적 아픔을 영화로 재현하는 일은 단순히 원형을 변형해 카메라에 담아내는 작업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라는 매체는 카메라에 인간의 삶과 진실을 담을 수 있는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심지어 이를 ‘편집’ 하고 ‘재생산’ 해낸다. 영화 제작 과정에서 이뤄지는 연출, 편집, 선별 등의 단계는 무언가를 '강조' 할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물론 모든 영화의 해석의 여지는 제작자뿐 아니라, 관객이 만들기도 한다. 이 또한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하나의 아젠다(Agenda)를 세상에 던지는 시발점이 어디인가를 생각해보자면, 영화가 갖는 힘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곧 이는 영화가 매체로서 누군가의 아픔을 창작을 위한 ‘소재’로만 보지 않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가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게 만들고 있지는 않는가? 시대의 아픔에 대한 공감은 뒤로한 채, 고통을 재단하고 있지 않은가? 


 노매드랜드는 이러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 속에서 그 무거운 책임을, 의무를 완수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우리 시대의 영화는 이 책임의 무게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69기 이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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