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EELM Aug 14. 2021

[8] 숨어보는 명작, <먼 훗날 우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소중히 하는 것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영화 <먼 훗날 우리>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먼 훗날 우리 (2018, 后来的我们, Us and Them, 중국)


감독 - 유약영
출연 - 저우둥위, 정백연 외 다수
제작 - 天津猫眼微影文化传媒有限公司
배급 - 화상필름(중국), 넷플릭스(한국, 미국)


장르 - 드라마, 로맨스

시놉시스 - 2007년 춘절, 귀향하는 기차에서 처음 만나 친구가 된 ‘린젠칭’(정백연)과 ‘팡샤오샤오’(주동우). 베이징에서 함께 꿈을 나누며 연인으로 발전하지만, 현실의 장벽 앞에 결국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된다. 10년이 흐른 후, 두 사람은 북경행 비행기에서 운명처럼 재회하고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추억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는데…




 MBC의 영화 프로그램 ‘출발! 비디오 여행’에는 흥미로운 코너가 하나 있다. 숨어보는 명작, ‘숨.보.명’은 초청된 영화인들이 숨어서 볼 정도로 애정이 있는 자신의 인생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이다.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숨보명은 뭘까? 남몰래 숨어서 보고 싶은 나의 인생 영화는 뭘까?’ 나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을 때 곧바로 떠오른 영화가 한 편 있었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열 번이고 반복해서 본 영화, 바로 <먼 훗날 우리(后来的我们)>이다. 



 과연 ‘사랑’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쉽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해서 그렇지 사실 사랑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측량할 수도 없으며, 정의 내릴 수도 없는 어려운 것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사랑이 존재하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을 한다. <먼 훗날 우리>도 각자 다른 사랑을 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절대 잊어서는 안 될 사랑의 진리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사랑의 진리란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그 순간을 소중히 하는 것’이다. 


 야오징 출신인 샤오샤오는 베이징에 정착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었기에, 처음엔 자신에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삶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 같은 베이징 남자들을 골라서 사귀었다. 샤오샤오는 이들에게서 새집과 최신 휴대폰은 얻을 수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은 얻을 수 없었다. 남자친구도 있는 샤오샤오에게 정작 사랑을 보여주었던 건 언제나 샤오샤오의 곁을 지키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젠칭이었다. “하늘에서 별도 따주고 바다에서 진주라도 캐다 준대? 널 위해서라면 뭐든지 다 해주냐고.” 샤오샤오는 남자친구를 사귈 때마다 자신에게 이런 말을 했던 젠칭을 너무 순진하다고만 생각했지만, 가진 것도 별로 없고 베이징 출신도 아니지만 누구보다도 순수한 사랑을 자신에게 주는 젠칭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한다. 



 그러나 샤오샤오의 마음이 현실적인 사랑에서 순수한 사랑으로 옮겨 갈 때, 젠칭의 마음은 오히려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집은 낡고 좁지만 젠칭과 함께한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샤오샤오와 달리, 젠칭은 성공해서 크고 좋은 집을 갖게 되면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집 얘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이들이 살던 집을 보면 알 수 있다. ) 게임 개발자로 성공하겠다는 꿈을 품고 베이징에 온 지도 벌써 몇 년이 넘었고, 샤오샤오와의 행복한 미래도 꿈꾸고 있는데 일이 잘 풀리지 않자 젠칭은 괜히 옆에 있는 샤오샤오에게 화풀이를 한다. 인내심을 갖고 그의 곁을 지키던 샤오샤오는 결국에는 완전히 망가져 버린 젠칭을 떠나게 된다. 젠칭은 성공한 뒤에 큰 집을 사서 샤오샤오를 다시 찾아가지만, 샤오샤오는 이렇게 말한다. “집이 없어서 널 떠난 게 아니야. 난 보금자리를 원했어.” 젠칭은 그동안 보금자리를 원했던 샤오샤오에게 집을 주려고 애썼던 것이다. 


 그렇다고 젠칭이 샤오샤오를 사랑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성공해서 넓고 좋은 집을 갖게 되면 사랑하는 사람과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과연 사랑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그저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는 방식이 조금 달랐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기서 젠칭이 놓친 한 가지는 바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젠칭은 샤오샤오와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다가 현실의 샤오샤오를 놓쳐 버렸다. 젠칭이 미래에 올인하면서 현재를 돌보지 못하다가 잃은 건 샤오샤오뿐만이 아니다. 고향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홀로 젠칭을 키웠던 아버지도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난다. 아버지는 젠칭이 가끔 고향에 내려와 자신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만 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젠칭은 성공하는 게 곧 효도라고 생각했다. 젠칭이 성공에 눈이 멀었을 때 아버지는 점점 늙어가고 있었고, 젠칭은 그런 아버지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 


 영원한 것은 없다. 지금은 내 곁에 있는 사람도 언젠가는 나를 떠날 것이고, 영원할 거라던 사랑도 언젠가는 변하기 마련이다. 사랑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이다. 사랑을 지키고 싶다면 바로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순간에 몰두해야 할 것이다. 




 영화의 가장 독특한 점은 장면의 색(色)이 시간적 배경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샤오샤오와 젠칭이 몇 년 만에 재회한 2018년 현재 시점의 장면들은 모두 무채색인 반면에 그들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는 장면들은 모두 유채색인데, 이는 영화 속에서 젠칭이 만든 게임의 설정이 영화 전반에도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젠칭이 만든 게임은 ‘이언’이라는 캐릭터가 잃어버린 친구 ‘켈리’를 찾으러 떠나는 내용인데, 게임에서 이언이 켈리를 끝내 못 찾으면 세상은 온통 무채색이 된다. 이 내용 바로 다음에는 시간이 현재로 넘어오면서 장면이 유채색에서 무채색으로 바뀌는데, 이것은 젠칭(=이언)이 샤오샤오(=켈리)를 놓쳤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2018년의 춘절에 비행기에서 우연히 재회한 두 사람은 함께 보냈던 과거의 시간들을 회상하며 서로에게 말하지 못했던 진심을 확인하고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젠칭과 헤어진 후 샤오샤오는 젠칭의 게임 속 이언과 켈리가 서로 만나게 하는 데 성공하여 무채색이었던 게임 속의 색깔을 돌려놓는데, 이때 영화 전반에서 흑백으로 표현되었던 현재의 세상은 다시 아름다운 색깔을 되찾는다. 


‘이언은 영원히 켈리를 사랑해’ 


 좋은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장르라는 점, 중국 영화라는 점, 그리고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분명히 진입 장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진부하게 예쁘기만 한 환상적인 사랑이 아니라 가난한 청춘의 현실적인 사랑과 이별을 보여주면서도, 이야기가 연인 간의 사랑에 그치지 않고 가족 간의 사랑으로까지 확대되면서 깊은 여운을 남긴다는 점에서 중국 영화와 로맨스 장르 영화에 대한 편견을 동시에 깨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73기 윤채원

이전 07화 [7] 악당의 사연“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