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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M Mar 21. 2022

[3] <오만과 편견(Pride&Prejudice)>

영화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에 대하여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영화 <오만과 편견>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 (2005, Pride & Prejudice, 영국)


감독 - 조 라이트
출연 - 키이라 나이틀리, 매튜 맥퍼딘 외 다수
제작 - 팀 베번, 에릭 펠너, 폴 웹스터, 제인 프레이저
배급 - UIP, 유니버설 픽처스, 포커스 피처스, 스튜디오 카날


장르 - 드라마, 로맨스, 시대극

시놉시스 - 아름답고 매력적인 '엘리자베스'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믿는 자존심 강하고 영리한 소녀이다. 조용한 시골에 부유하고 명망있는 가문의 신사 '빙리'와 그의 친구 '다아시'가 여름 동안 대저택에 머물게 되고, 대저택에서 열리는 댄스 파티에서 처음 만난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서로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엘리자베스'와 무뚝뚝한 '다아시'는 만날 때 마다 서로에게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고 사랑의 줄다리기를 하는데, '다아시'는 아름답고 지적인 그녀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고 폭우가 쏟아지는 날, 비바람이 몰아치는 언덕에서 가슴 속 깊은 곳에 담아둔 뜨거운 사랑을 그녀에게 고백한다. 결혼의 조건은 오직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는 '엘리자베스'는, '다아시'가 자신의 친구 '빙리'와 그녀의 언니 '제인'의 결혼을 '제인'이 명망있는 가문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대한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오만하고 편견에 가득 찬 속물로 여기며 외면하는데... 서로에 대한 오해와 편견에 빠져 눈이 멀어있는 '엘리자베스'와 '다아시'는 과연 서로의 진심을 알고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오만과 편견은 인간 그 자체이다. 그리고 단기적이고 장기적인 오만과 편견의 결과에 대해서 잘 표현해주고 있다. 시대를 관통하며 회자되는 명작이라는 것은 과연 그 깊이가 남다른 것 같다. 물론, 오만과 편견에 대해 비판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실제로 그 내용은 다소 구시대적인 부분이 많고, 지나치게 오만한 주인공 때문에 약간의 스트레스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 가시적이고 표현적인 불편함을 무릅쓰고 영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내용 속에는 역시나 진리가 담겨져 있다.



  먼저, 오만과 편견은 인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철학을 심화시켜 표상의 세계와 의지의 세계라는 세계관을 확정한다. 이는 개인에 대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시대의 헤겔이 정신 연구에서 출발했지만 사회에 대한 통찰을 담은 『정신현상학』이라는 철학책을 쓴 것과는 대조적이다. 갑자기 철학 이야기를 하는 것은 오만과 편견이 말하는 것이 곧 의지와 표상이라는 것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확하게 일치한다고까지 말하기는 어려울지 모르나 어느 정도의 유사성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오만이 곧 의지이고 편견이 곧 표상이라고 생각한다.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칸트의 철학은 인간이 보는 외부세계를 모두 표상으로 전환하는 중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시도한 것이다. 즉, 외부세계는 모두 실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감각이라는 매개를 통해 느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모든 것은 왜곡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여기서 핵심을 안으로 돌린다. 즉, 인간의 이성이 곧 그나마 믿을 수 있는 실체 그 자체라고 한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아마도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 듯하다. 그가 말하는 의지란 (물론 이해가 어려워서 나도 정확히 이해한 건지는 의문이지만) 이성과 다른 동물적인 본성에 가깝다. 그리고 의지의 최고봉을 그는 단언컨대 예술이라고 했다. 곧 이는 오만과 매우 흡사한 모습을 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을 실제로 반영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만, 확실한 건 오만과 편견은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를 보여주고 있고 여기서 발생하는 인간들의 오류를 그리고 있다.



  다음으로, 오만과 편견의 결과를 단기, 장기로 나누어 보여주고 있다. 물론, 정확히 장기라고 하기까지는 어려움은 있으나 장기가 단기에서 일부 조건이 변화하여 생산이라는 결과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본다면 적어도 주인공 남녀에게 있어서는 장기가 마지막 노을 장면에서 성취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확실히 여기서 주인공은 오만과 편견의 덩어리이다. 단기적으로 이 결과는 상대를 증오하는 결과로 이어졌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실제로 경제학만이 아닌 사회에서도 이러한 오만과 편견에 의한 단기적 혼란은 자주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장기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경제학은 좋든 싫든 장기로 이어지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관계는 장기로 이어지지 못하고 대부분 중간에 한 쪽이 지쳐서 포기하거나 서로 더욱 앙숙이 되는 파멸로 이어진다. 갈등은 분명히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되기는 하지만, 그거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를 몰고 가지 못하는 상황적 혹은 개성적(개인 성격적)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해서 파국으로 이어진 여러 관계들을 생각하면 인간은 참는 것도 하나의 도리 중에 하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소가 안 되는 상태로 마냥 장기만 바라보고 참는 건 좋지 못한 것이 맞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기다리지도 않고 참기를 포기하는 건 더욱 좋지 못한 게 아닐까? 물론, 모든 관계가 다 필요한 건 아니긴 하니 나름의 합리적인 선택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오만과 편견은 경제학적이고 철학적인 통찰을 담고 있는 영화이다. 나름대로 그 내용은 좋다고 평가하지만, 감정적으로 늘 고구마만 먹다가 사이다 한 모금 정도 주는 내용이라 추천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성적인 통찰을 원한다면 아니면 조금 고전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것을 잘 견딜 수 있는 사람이라면(역사를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이 좋은 예시일 것) 꽤나 재밌게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74기 박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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