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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M Mar 21. 2022

[4] <중경삼림(Chunking Express)>

영화 <중경삼림(Chunking Express)>에 대하여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영화 <중경삼림>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있습니다




중경삼림 (1994, 重慶森林, Chunking Express, 홍콩)


감독 - 왕가위
출연 - 임청하, 양조위, 왕페이, 가네시로 다케시 외 다수
제작 - 유진위
배급 - Block 2 Distribution, 스타맥스, 앤드플러스미디어웍스(재개봉), 디스테이션(재개봉)


장르 - 멜로, 로맨스, 드라마

시놉시스 - 구룡반도의 충킹맨션 주변을 배경으로 한 1부와 홍콩섬의 센트럴지역을 배경으로 한 2부, 실연을 겪는 두 남자 경찰을 주인공으로 한 두 개의 에피소드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된다.




  누구에게나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영화가 있다. 나에게 <중경삼림>은 그런 영화다. 화양연화와 함께 가장 애정하는 왕가위 감독작으로 이유없이 공허해질 때면 가끔 꺼내보는 작품이다. 여담이지만 삽입곡 ‘캘리포니아 드리밍(California Dreamin’)’은 어린 시절 어머니가 참 많이도 들으셨다는 이유로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곡이다. 한편 <중경삼림>은 내게 홍콩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며 지독한 ‘홍콩병’을 걸리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영화를 가만히 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그곳에 있었던 것 마냥 문득 “그때 그 시절 홍콩”이 그리워진다. 동경일까, 아니 그것은 단순한 동경이기보다는 오히려 향수에 가깝다. 어쩌면 우리가 가본 적 없는 낯선 장소와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단 한 편의 영화로 인해.



  만우절 장난과 같은 실연을 당한 후 나사가 하나 빠져 버린 듯한 이 남자, 유통기한이 5월 1일까지인 파인애플 통조림에 집착하는 그의 직업은 경찰이다. 비도 오지 않는데 걸친 레인코트, 금발 가발, 그리고 빨간 선글라스까지.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여자는 사실 마약밀매업자다. 항상 같은 노래를 듣는 여자. 매번 샐러드를 주문하는 남자. 그런 남자에게 여자는 다른 메뉴를 추천하기 시작한다. 절대 정상으로는 보이진 않는 네 남녀는 간혹 이상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텅 빈 속을 어떻게든 채우려는 간절한 몸부림이다. 누군가에게 이해받기를 기대하고 때론 한 대상에게 감정적으로 집착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기이하고도 어딘가 결핍된 모습들이 내 눈에는 이상하리만큼 순수해 보이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여자는 떠나고 남자는 머문다. 떠나버린 전 연인을 잊지 못해 그 자리를 서성이는 남자에게 꿈같이 찾아온 새로운 인연은 그의 곁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기도, 혹은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 왠지 모르게 서로가 신경 쓰이는 네 남녀를 보고 있자니 이상하긴 해도 결코 밉지 않은 그들과 지독하게 엮이고 싶다는 실없는 생각마저 든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 있다면 유통기한이 없기를 바란다. 만일 유통기한을 정해야 한다면 만 년으로 하고 싶다.” 추운 겨울날에 따뜻한 캘리포니아를 꿈꾸는 우리는 모두 자신을 기다려줄 무언가를 원한다. 조급해하는 청춘, 방황하는 이에게 그것만큼 확신과 안정을 주는 것도 없으니까. 쫓고 쫓기는 추격전, 흔들리는 카메라, 번잡한 거리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그들의 모습은 불안과 혼란 속에서 방황하는 홍콩의 청춘을 닮았다. 공허한 빈속. 기다림과 고독. 이별과 만남. 꿈과 위로, 그리고 새로운 시작. 1994년 홍콩, 이 영화에는 유통기한이 없다.



69기 이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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