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과 생각을 담았으며,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에 대한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다.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의 주인공 스즈코는 이 단순하면서도 받아들이기 난감한 명제를 담담히 인정하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을 결심하는 작지만 큰 성장을 보여준다.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 크고 작은 예기치 못한 사건과 행운 사이 나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은 단단한 ‘나’뿐임을 알아간다.
영화는 시작부터 뜻대로 풀리지 않는 평범한 20대 초반의 스즈코를 그려낸다. 스즈코는 예상치 못하게 친구의 남자친구 타케시와 함께 살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스즈코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진행된 일이었지만, 그런대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인 스즈코와 함께 살 타케시는 그다지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다. 스즈코가 방에 데려온 새끼 고양이를 마음대로 버린 타케시에 대한 복수의 일환으로 스즈코는 타케시의 짐을 몽땅 내다 버린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 짐 속엔 예기치 못한 백만 엔이라는 큰돈이 들어있었고, ‘어쩌다’ 벌어진 연속된 사건은 스즈코에게 ‘전과자’라는 꼬리표를 남긴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달라붙은 전과자의 수식어는 스즈코를 끈질기게 괴롭힌다. 끝끝내 그 상황 속에 있었기에 발생했던 일련의 불가피한 사건들에 질려버린 스즈코는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두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스즈코는 어느 바닷가 근처의 가게 일을 돕고, 한 시골의 복숭아 농장 일손을 보태기도 하며 백만 엔을 모은다. 그리고 돈이 모두 모이면 그와 연고 없는 지역을 찾아 떠도는 생활을 계속한다.
스즈코는 어디에 가도 겉돌기만 하여 자신을 아무도 모르는 곳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간다고 한들 피하고자 했던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건 아니다. 낯섦은 영원하지 않다. 낯섦의 종착지는 익숙함이다. 이에 자연스럽게 어디에 가든, 누구를 만나든 그곳에선 그들과 그렇게 함께이기에 발생하는 여러 새로운 문제들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된다. 스즈코 역시 바닷가 가게에선 그곳에서만의, 복숭아 농장에서는 또 그곳에서만의 다종다양한 사건 사고에 크고 작게 휘말리며 떠밀리듯 다음 장소로 몸을 옮긴다.
그러던 중, 도쿄 근교의 도시에 자리한 꽃집에서 일하기 시작한 스즈코는 나카지마라는 이름의 한 대학생을 만난다. 이번 꽃집에서 마주한 사건은 이전에 머물렀던 곳에서 직면했던 상황들과는 조금 다르다. 이곳에서 스즈코는 나카지마와 사랑에 빠진다. 스즈코는 처음으로 백만 엔을 다 모았을 때 이곳을 떠나 다른 장소로 이동하기를 망설인다. 그즈음 나카지마는 스즈코에게 “백만 엔을 다 모으면 여기도 떠날 것이냐”고 묻고, 이에 스즈코는 “자아를 아무리 찾으려 해도, 내가 한 행동에 따라 살 수밖에 없기에 그저 도망치는 것”이라 답한다.
우리는 분명 그 무엇으로부터도 도망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필연적인 우연의 연속에 적응하고 매 순간 주어진 상황 속 솔직한 마음을 말로 내뱉어 오해를 줄이는 것뿐이다. 그렇게 상황을 직면하고 헤쳐나가는 것이 전부다. 스즈코는 나카지마를 만나며, 또 동생 타쿠야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신은 결국 그 무엇에서도 벗어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녀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노라 다짐한다. 하지만 그런 그의 속을 몰랐을 나카지마와의 오해는 끝끝내 풀지 못했다. 그들은 서로 가장 중요한 것을 굳이 내뱉지 않았다. 타이밍은 찾아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놔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비록 나카지마와의 행복에 닿진 못했을지언정, 스즈코는 만나기 위한 헤어짐, 시작을 위한 끝의 의미를 깨닫는다. 기대했던 일은 때때로 뒤통수를 치고, 최악을 예상했던 일은 뜻밖의 행복을 빚어내는 예상치 못한 하루하루 속에서 배경만 다르게 스즈코의 시작과 끝은 묘하게 반복된다. 우리의 일상도 마찬가지다. 모든 게 반복되지만, 그 삶이 의미 있는 까닭은 반복되는 시작과 끝 그 과정에 가장 강한 ‘나’가 있기 때문이다. 스즈코는 그렇게 삶의 허무를 ‘나’로서 이겨낸다.
77기 김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