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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 Architect Feb 16. 2024

[A, B 그리고 C]

내 안의 자아들

#1. 왼쪽과 오른쪽 그리고 A와 B

 웨이트를 하다 보면 오른쪽과 왼쪽의 불균형이 느껴질 때가 많다. 왼쪽 부분은 코어 근육, 왼 어깨, 팔과 왼다리의 정합성이 떨어져 왼쪽 어깨, 팔, 다리에 과부하가 들어간다. 그래서 관절, 근육 부상이 잦다. 반면 오른쪽은 코어와 팔, 다리가 단단하게 연결되어 무게를 치거나 달리기를 할 때 빨리 지치거나 다치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팔, 어깨만 운동하는 경우(이두, 삼두, 덤벨 숄더 프레스 등)에는 왼쪽 근육의 부피와 컬이 훨씬 예쁘게 발달하고 개별 운동 효능감이 높다. 왼쪽이 오른쪽에 비해 질서정연하지 않고, 정합성이 떨어지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순간폭발력, 성취력이 좋다고 느낀다. 똑같이 몸에 붙어 있는 근육들인데 이렇게 색다르게, 혹은 정 반대로 기능한다는 것이 신기하고 놀랍다.

 문득, 왼쪽, 오른쪽 근육이 내 자아(A,B)의 모습과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A는 대외적으로 올바르고, 책임감 강하고, 유능한 놈이다. B는 세상 짐이 모두 다 귀찮고 자유에 미쳐있고 힙한 것 좋아하며, 사람 좋아하고, 여행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놈이다. 10대와 20대 중반까지는 A가 형 노릇을 하며 여러 성취를 가져다주었다. 그러다가 B가 못살겠다며 20대 후반부터 국지적 반란을 일으켰고 30대 초반 쿠데타에 성공하며 30대 초중반까지 단기 집권(?)했다. 30대 중반을 넘어서는 A와 B가 나를 양쪽으로 사이좋게 갈라, 때로는 경쟁을 때로는 동맹을 이어나가며 나를 하루 하루 지탱해가고 있다.

#2. 사소한 행복을 포착하는 C

 A는 피곤한 놈이다. 매번 나에게 무엇을 종용한다. 운동해, 책 읽어, 글 써, 일 해, 일찍 자, 일찍 일어나, 술 먹지마 등등등. 그렇다고 B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면 인생이 더 피곤해진다. B가 주기능 자아가 될 때는 매우 즐겁지만 이후에 수습해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게 지나치면 A와 B의 큰 다툼이 시작되고 나도 매우 곤란해진다. 한편, A와 B의 공통점은 극단적이고, 열정적이라는 점이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고 무조건 한 걸음 떼어 움직이려 한다. 그래서, 순간을 포착하는 능력이 부족하다.

 살다 보면 별 것 아니지만 매우 별 것이라서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그것들을 포착하는 C라는 놈을 새롭게 내 자아로 등장시키기로 결심했다. 이번 주 C가 포착한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을지로 카페 창가로 듬성듬성 쏟아지던 싸리 눈 그리고 딱 맞춰 흘러나오던 에릭 베넷의 노래(The last time), '너무나 많은 여름이'라는 단편 소설집에서 본 빛나는 구절들, 차가운 바람과 쏟아지는 햇살 속 정동길 모닝 런, 13가지의 위스키를 비교 시음하며 맛의 위대함과 오묘함을 느끼던 시간, 조기 퇴근하고 가장 사랑하는 것들 - 그린 와인, 포르투에서 들은 노래, 포르투 여행 에세이 -과 함께 한 찰나.

 이 시간들은 매우 정적이고도 덤덤한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 안도감과 안락감을 주었다. 휘몰아치는 행복은 아니지만 소복소복 쌓이는 편안한 시간들이었다. 그것을 잘 포착하고 행복을 적극적으로 느끼는 C를 내 자아로 편입시키고 싶다. 그러려면 집권(?)까지는 아니더라도 C에게 제주도 같은 특별자치도 정도의 지위는 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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