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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씨, 사랑이 뭔가요.

사랑의 이데아

by 비평교실

사랑에 이데아는 어떤 모습인가?


플라톤의 이데아는 그리스 철학의 진정한 발돋움이다. 이데아는 개별적 특성의 공통적이고 보편적인 요소를 추려내어 이상적이고 원본의 모습으로 존재하는 무언가다.


도화지에 태양을 아무리 많이 그려낸다 한들 그것은 태양은 모방한 것일 뿐, 진짜 태양일리는 만무하다. 원본의 태양은 오직 인간의 손에 닿지 않는 저 하늘에 존재하는 하나의 태양만이 진짜 태양이다.


하지만 도화지에 여러 가지 다른 태양을 그려도, 그 그림이 태양을 본뜬 모습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건 우리가 본래의 태양을 알고 있기에 모방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저마다 다른 모습이지만,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모습일지라도 인간이라 인식하고, 푸들이나 리트리버가 서로 다른 견종이지만 ‘개’라고 인식할 수 있는 건 우리가 본래 이데아의 세계에서 원본의 인간, 원본의 개를 보았기 때문에 알 수 있다. 다시 반복하여 말하자면 도화지에 그린 태양을 태양이라고 알 수 있는 건 원본의 태양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에도 이데아가 있을까?


우리는 원본의 사랑을 알기는커녕, 사랑이 무엇인지조차 정의 내리지 못하였다. 가장 이상적이고 원형적인 사랑의 모습이 어떤 건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 세계관에서 그것은 분명 모든 생명에 앞서 존재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후발주자로서 우주의 시초를 알지 못하는 이상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일지 모른다.


사랑의 원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일방적인가? 상호작용인가?


우리는 흔히 서로를 아껴주고 배려하는 것이 사랑의 진정한 모습이라고 믿는다. 진정한 사랑은 소통을 전제로 한다. 소통 없는 사랑은 집착이자 소유의 화신으로 전락하는 끔찍한 결과를 자아낼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사랑은 상호적 감정 교류가 없다면 상대가 원하지 않더라도 일방적으로 구애하거나 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질지라도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례함으로 전락한다.


현대로 올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반대로 사랑이 상호작용이라면 그것은 반드시 ‘보답’을 요구한다. 긍정적 피드백이 돌아올 때에만 오직 사랑은 유효하다. 이때 사랑은 단순히 계산에 불과하다. 내가 만약 10으로 주었는데 상대가 8밖에 주지 않는다면 사랑에 격차가 발생한다. 사랑은 수치화, 객관화로 변하고 그 동기는 생존적 전략 수단의 한 도구밖에 되지 않는다.


현대 과학은 사랑을 호르몬으로 정의하는 쪽으로 가는 추세이지만, 미심쩍기는 마찬가지다. 어떤 호르몬이 분비되는지는 알 수 있어도, 왜 그런 일이 특정 인물에게 집중되는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애인에게 느끼는 호르몬과 포르노 배우에게 느끼는 호르몬의 성질은 동일하지만, 포르노 배우와 애인을 동일한 사랑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금 원형적 사랑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순간이 온지 모르겠다. 종교적 사랑은 보답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돌고 돌아 이익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익과 무관하게 그것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종교에서 중요한 건 전달력이다. 전달자의 성품과 능력에 따라 사랑의 크기가 좌우된다. 훌륭한 성품을 가진 이일수록 전달하는 사랑 또한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인이 행할 수 있는 보편적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


사랑이 만약 상호작용이라면 그것의 보편은 수학적 계산으로 밖에 귀결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사랑은 속셈에 지나지 않는다.


플라톤의 이데아 역시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세계관과 음악에 큰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사랑에 가장 가까운 언어는 어쩌면 ‘음악’일지도 모른다. 음악이 사랑을 그토록 노래한 건 우연이 아니다. 언어와 가사가 붙지 않은 음악일수록 사랑의 이데아에 점점 더 가까워진다.


음악은 환유적이고, 사랑은 은유적이다.


언어와 비언어 그 사이에 어떤 감정적 울림으로 이루어져 선율에 따라 고통을 주기도 하고 환희를 느끼게끔 한다.


사랑은 나와 그대를 나누어 놓은 외줄 사이에서 용기와 두려움을 동시에 주어 끊임없이 수수께끼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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