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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개 Jun 27. 2022

내 엉덩이에 힘과 용기를

자전거 타고 망원까지

이건 일종의 기행문이다. 자전거를 타고 마포구에서 마포구로 이동한 게 전부지만 원래 글의 성격이란 쓰는 사람이 결정하는 법. 


우울한 날엔 밖에 나가야 한다. 운동이란 것은 조금씩 꾸준히 해야 효과가 있다는데 나는 항상 맘 먹은 김에 이것도 하고 저것도 덧붙이는 비틀어진 황천의 효율충. 나가는 김에 한강도 보고 자전거도 타고 가고 싶던 북카페에도 가야지 생각한 것이다. 목적지는 망원으로 정했다. 나의 멋쟁이 친구가 곧 그 곳으로 이사올 것이고 가는 길을 대충이라도 익혀놔야 나중에 덜 헤멜 것 같았다. 집 앞에서 망원 쪽으로 자전거를 타고 호기롭게 출발했다. 약간 쌀쌀했지만 햇살이 좋았고 달리다보니 적당히 땀이 나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그러다 정확히 15분 만에 완전히 지쳐버렸다. 벤치에 모여앉은 할머니들이 날 불쌍하단 듯 쳐다봤다. 사실 실제로도 불쌍한 몰골이었다.




한강을 왼쪽에 낀 자전거 도로에서는 강물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없다. 사이에 보행자 도로가 있고 반대편으로 지나는 자전거 도로가 한 겹 더 덧대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나선 시간은 한창 헬멧가이들이 쉭쉭 소리를 내며 쌩하니 지나는 시간이었다. 그들 중 몇몇은 가끔 미안합니다~ 지나갈게요~ 류의 말을 하며 거북이 같은 나를 앞질러가는데, 대게 그들은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에 내가 실제로 듣는 단어는 '미안ㅎ..' '지나ㄱ..'가 전부다. 진심인지 묘하게 의심스럽긴 하지만 나의 속도는 정말로 매우 느리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 한다. 너무 빨리 달리면 일단 나는 무릎이 너무 아프다. 엄마딸과 엄마아들과 함께 지옥의 따릉이 라이딩을 펼쳤던 지지난달, 그들은 나에게 무릎이 아닌 엉덩이로 페달을 돌리라 했지만 나는 그 말을 통 알아먹을 수 없었다. 세상에, 종아리와 발목은 무릎에 달려있는데 엉덩이에 힘을 주라니. 엉덩이에 힘을 주는 건 대체 어떤 감각이란 말인가? 변기에 앉아있던 기억을 소환해야하는 건가? 그..것과 그것은 분명 다를 것 같은데 말이지. 그래서 무릎에 데미지가 덜 가는 선에서 천천히 돌린다. 사실 그렇다고 무릎이 덜 아픈 건 아니고 천천히 더 오랜 고통을 주는 것에 가깝지만. 그럴 땐 엄마딸의 호된 꾸지람을 상기하며 엉덩이에 온 집중력을 모아본다. 그럼  뭐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한 감각은 아직도 전혀 모르겠지만.




열심히 달리다보면 한강 뿐 아니라 묘한 풍경들을 만나게 된다. 멀리 송전탑이 보이면 난 그게 엄지 손가락만 해 질때까지 눈여겨보다 손바닥만해지면 좀 더 본격적으로 기웃거려본다. 어릴 때 부터 습관인 것 같은데, 나는 되게 높은 무언가를 보면 그 밑기둥은 어떻게 생겨먹어있는지 궁금해서 그 쪽으로 가보지 않고는 못 견딘다. 어떤 나들목 쪽을 지나다 본 송전탑은 4개 기둥에 각기 다른 페인트가 형형색색으로 칠해져있었다.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벤치가 있었고 우리 엄마랑 비슷한 패딩을 입은 누군가가 핸드폰인지 식빵인지를 들여다보거나 퍼먹고 있었다. 탁한 붉은색의 패딩이었는데 지지지지난 겨울 중국여행에서 그걸 모자까지 뒤집은 엄마를 보고 저 중국인 여성은 누구냐며 놀리곤 했다(저는 언피씨한 딸래미입니다). 같은 브랜드인지 모르겠지만 정수리까지 봉긋하게 차오른 패딩을 보니 그 생각이 났다.


송전탑 밑기둥을 칠하는 건 전체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비중을 차지할까? 그냥 시간 없고 귀찮으면 빼먹을 수 있는 단계일까? 아니면 내가 모르는 규칙과 프로세스가, 또 여러 차례 입혀져 있을까. 만약 전자라면 그 밑기둥에 대한 건 정말 누구도 정해주지 않았을테니, 그 디자인은 온전히 칠하는 자의 몫일 것이다. 오늘 내가 본 건 4개 각각에 완전히 다른 무늬와 색깔이었는데 이것도 막 고민해서 정했을라나. 페인트는 어디서 남는 것을 구해다 칠했을까? 떠올려보면 보통의 알록달록함이 아니었는데. 원래 송전탑 작업을 하면 그 정도의 페인트가 당연히 남는다거나, 아니면 노트에 그려가며 디자인을 해보고 필요한 색들을 근처 철물점 같은 곳에서 얻어왔을까... 까지 생각하다가 건너야 할 건널목을 지나쳤고 나는 막 태어난 아기기린마냥 자전거를 잡아끌며 자전거로 갈 수 있는 샛길을 찾아 헤맸다.




한강 옆을 달리면 좋은 것은 강물에 대한 공포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거다. 완전히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도 아니고 어떤 다리 위를 건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물은 얼추 견딜 수 있는 눈높이고 수면은 잔잔하며 오후의 해가 비쳐 자글거리는 윤슬은 제법 아름답기까지 하다. 나는 합정과 당산 사이를 지날 때마다 조금은 불안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한다. 그런데 저번에 친구랑 얘길하다가, 다른 사람들은 그런 불안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전철이 고꾸라져 풍덩(아악!), 그런 생각을 한-낫-뚜 느끼지 않는다는 거다. 그냥 졸라 예쁜 풍경을 보며 더러운 서울을 잠시나마 사랑하게 된다고 했다. 그렇단말야? 신기하군. 내 상황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면 다른 방식을 시도하는 것에 엄청난 동기부여가 된다. 나도 재난을 상상하기 보다 내재적 아이서울유를 실천해볼까. 


너무 모든 것을 대비하려 하는 걸까. 저것 봐. 아리땁게 너울대는 한강을 봐. 아름답잖아.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한국의 대중교통과 도심 강물을 동시에 진창에 빠트리는 생각을 하다니 너는 참말로 불경하구나... 그래, 나는 여태껏 너무나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살았다. 이제 흘러가는 대로 살고 내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을 의심없이 품어내는 삶을 살아볼까. 잠만, 곧 도착할 북카페 근처에 따릉이 반납소가 있을까. 어련히 있겠지. 당도하지 않은 미래에 휘감겨 반짝이는 현재를 잊어버리지 말자. 그래, 그래.


하지만 북카페 근처엔 반납소가 없었고 나는 비슷한 거리의 반납소 4개 중 하나를 고르며 뱅뱅 도는 데 한강에서만큼의 시간을 썼다.  완전히 지친 상태로 만원의 북카페에 도착했고 자리를 찾기 위해 5층 건물을 계단으로 두 번 정도 왔다갔다 했다. 하지만 괜찮아.. 운동을 하려 했던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


집으로 갈 땐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야지. 


* 지난 2월 개인 블로그에 적은 글을 휘리릭 뿅 편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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