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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선 Oct 20. 2023

잔잔한 우울감을 극복하려고

요 몇 주, 우울감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어떨 때는 우울감이 깊어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가, 어떨 때는 조금 나아져 이상한 흥분감에 자잘한 일들을 벌리다, 그 일들이 잘 안 되어 또 우울감에 빠져 헤매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우울감이 내 뒷목에서 항상 찰랑거리는 느낌. 


우울감이 계속되자 나는 자주 다 정리하고 버리고 싶은 기분에 휩싸였다. 이럴 때 나는 자꾸만 물건들의 유통기한을 확인하고, 옷장의 옷들이나 책장의 책들을 훑어보며 버릴 것이 없나 살핀다. 그런데 버릴 것이 별로 없었다. 결혼 후 어쩌다 보니 미니멀리스트 한 삶을 살아오다 보니, 이제 정말 필요한 것만 남은 느낌이다. 버리는 것만이 미니멀리스트의 능사는 아니라는 것도 알만큼 알았다. 친환경적 삶에서 잘 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고 난 후에는 이전처럼 함부로 물건을 버리지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버리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나는, 괜히 음식물 쓰레기들을 컴포스트 텀블러에 넣지 않고 싱크대의 디스포절로 갈아버리면서 그 죄책감에서 묘한 희열을 느끼며 몇 주를 보냈다. 이전 같으면 재활용하기 위해 몇 번을 씻어서 분리수거했을 마요네즈 통이나 케첩통을 그냥 쓰레기통에 던져 넣으며. 


이전보다 몸에 안 좋은 음식들을 더 많이 먹었다. 술도 마시고, 초콜릿도 먹고, 집에 있던 라면을 거덜 냈다. 핫윙을 만들어 먹고, 마트에서 산 인스턴트 음식들로 저녁을 해결했다. 매일 더부룩한 속 때문에 뒤척거리다 겨우 잠들고, 새벽에 깨서 화장실을 들락거려 잠을 잘 못 잤다. 짐승 같다, 고 생각하며 잠들고 다음날이면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그야말로 절제라고는 없는 생활. 

겨우 습관으로 자리 잡으려던 아침 산책을 멈추었고, 우울감이 심할 때는 둘째 아이를 데리고 가던 교육 프로그램도 그냥 가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구경하고, 브런치에서 의미 없는 남의 이혼 이야기나 읽으며 시간을 때웠다. 글을 더 이상 쓰지 않았다.


그나마 나를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행위는 소설을 읽는 것이었다. 저녁에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남편과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이 잔잔한 우울감은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면, 바로바로 정답이 떠올랐다. 규칙적으로 잘 자자. 건강한 음식을 해 먹자. 핸드폰 사용을 줄이자. 운동을 해야지. SNS를 하지 말자. 역시 정답은 모두 알고 있었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질문을 던지면, 미니멀리스트, 친환경적인 삶,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몰두하는 삶 등, 바로 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속이 시원하지 않다. 내 답도 유행을 따르는 것 같은, 정말 나의 고민에서 탄생한 답이 아닌 것 같은, 어디서 족보를 구해다 달달 외워 시험 문제를 푸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떠나지 않는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선망하는 어떤 것을 머릿속에서 그리고, 목록을 만든 후, 그걸 욕망한다고 착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매일 자잘한, 그렇지만 만성인 불안감과 조급함에 시달리는 게 아닐까. 그게 나의 '잔잔한 불안감'의 근원이 아닐까.


그러니까, 모든 것은 나 자신으로 돌아와야 한다. 문제도, 그걸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들도 모두 내 안에서 찾아야 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래 당연한 것을 깨닫고 실천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굳이 건강한 음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먹을 때 음식의 맛을 즐기며 내 몸이 내게 주는 신호들을 인식하는 것. 내가 준비한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는 것. 하루 중 유일한 데이트인 남편과의 저녁식사를 감사히 여기는 것.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하루에 한 번이라도 밖에 나가 계절을 느끼는 것. 아이들의 얼굴에 내려앉는 햇살과 그림자를 관찰하는 것. 그냥 숨을 깊게 들이쉬는 것.

해야 할 일들을 한꺼번에 떠올리며 숨 막혀하지 않고, 단순하게 천천히 하나씩 차분하게 해 나가는 것. 하나의 일을 할 때에는 그 일에만 집중하는 것.


거창하게 내 삶의 목표나 의미를 찾으려고 비장해지지 않고, 일상의 자잘한 욕구들을 살피고 돌봐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려면 자꾸만 날뛰는 잡생각들을 눌러 내리고, 현재의 나와 내 주변에 '있어야' 한다. 동시에 나는 내가 정말 이루고 싶은 목표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것만을 생각하기로 했다. 전업주부이자 엄마인 나의 일상에서 그 꿈의 자리를 꼭 내어주자고. 그러면 어떤 일상을 보내더라도, 그 꿈의 자리가 내가 버틸 지지대가 되어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를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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