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irls, Emma Cline, 더걸스 원서 리뷰
2025년 첫 책이자 1월의 장편소설로 골라 읽은 책이다. 몇 년 전 어떤 서평에서 읽고 킨들로 구입해 놓았는데, 다른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 많아서 한참 동안 묵혀두었다. 올해는 구입하고 읽지 않은 책들을 최대한 많이 읽자는 다짐으로 고르게 된 책이다.
한국어 번역본이 없는 줄 알았는데, 아르테 출판사에서 번역된 것이 있었다.
1960년대 말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사이비 종교 집단과 젊은 소녀들의 이야기. 찰스 맨슨과 그의 추종자들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워낙 자극적인 사회적 사건을 소재로 했기 때문에 이야기 자체의 긴장감이 높다. 한 번 흐름을 잡으니 책을 손에서 놓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 압도적인 소재를 탄탄하게 받쳐주는 것은 바로 14살 사춘기 소녀 에비의 섬세하고 날카로운 심리묘사다.
어찌나 정교한지, 한동안 잊고 지내던 사춘기 시절의 나를 계속 떠올리게 만들었다. 196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는 소녀의 심리에 내가 이렇게나 공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역시 저자 클라인의 필력이다.
에비의 이야기는 러셀의 집단에 들어가기 전부터 시작된다. 집단 소속 이전의 에비 삶이 꽤 길게 서술되는데, 이는 변화를 보여주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적 대상으로서의 여성 정체성을 일관되게 그려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에비가 단짝 친구 코니와 사이가 틀어진 것은 결정적으로 서로의 욕망을 방해하고 비웃었기 때문이다.
all that time I had spent readying myself, the articles that taught me life was really just a waiting room until someone noticed you - the boys had spent that time becoming themselves.
내가 그동안 자신을 준비하는 데 쏟아부었던 시간들, 인생이란 결국 누군가가 너를 알아봐 주기 전까지의 대기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가르쳐 준 기사들 속에서 보낸 시간들 동안, 소년들은 자신이 되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자기를 사랑해 주고 욕망해 주는 남자가 없다는 것이 마치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 같은 시기. 성적 욕망의 대상이 되어야만 성취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렇기에 나 혼자서는 도저히 이루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여성성. 그렇기에 소녀는 불완전하다.
That was part of being a girl - you were resigned to whatever feedback you'd get. If you got made, you were crazy, and if you didn't react, you were a bitch. The only thing you could do was smile from the corner they'd backed you into.
그것이 여자라는 것의 일부였다 - 어떤 반응을 받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면 미쳤다고 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싹수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결국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이 몰아넣은 구석에서 미소 짓는 것뿐이었다.
문제는 이런 여성성이 1960년대 사춘기 소녀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에비는 엄마에게서도 같은 결핍을 본다. 이혼 전 남편을 위한 파티를 준비하는 어색하고 굳은 엄마, 이혼 후 연애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어설프고 불안정한 엄마.
It was a painful thought, my mother needing anything
나의 엄마가 무엇인가 필요로 한다는 것, 고통스러운 생각이었다.
에비가 중년 여성이 된 현재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같은 갈급함을 가지고 같은 좌절에 무뎌지려 애쓰면서 사랑을 받고자 하는 또 다른 사춘기 소녀 사샤를 통해 알 수 있다. 에비는 무력하게 사샤의 모욕감을 함께 느끼고 견딜 뿐이다. 그녀의 경험은 사샤도, 그녀 자신도 구원하지 못한다.
그래서 에비는 수잔에게 매료된다. 타인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자유분방함. 가늠할 수 없는 깊이와 신비로운 내면을 에비는 동경한다. 이 동경으로 인해 에비는 러셀의 집단에 소속되기를 갈망하게 되고, 이 갈망은 그녀가 러셀과 미치와의 잠자리를 견디게 한다.
수잔이 자유분방한 것은 역설적으로 그녀가 자신을 오로지 러셀에게 종속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을 에비는 직감적으로 안다. 그래서 에비는 "마치 수잔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것이 그녀와 함께 있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듯" 수잔을 따름으로써 그녀에게 종속되고자 한다.
에비도 살인에 가담할 뻔하지만, 그 집으로 향하는 길에 수잔이 에비를 버린다. 만일 그 현장에 있었다면 자신도 살인을 저질렀을까? 수잔이 자신을 버린 것을 애정으로 여겨야 할까? 이런 의문들이 에비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에비는 잠정적으로, 아마도 자신이 살인을 저질렀을 것이라고, 그것을 수잔이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살 가치가 없는 삶을 살아가라고 자신을 버린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에비는 자유로워지지 못한다. 수잔의 또 다른 자아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No one had ever looked at me before Suzanne, not really, so she had become my definition.
수잔 이전에는 아무도 나를 진정으로 바라본 적이 없었기에, 그녀가 나의 정의가 되었다.
결국 에비는 독립적이고 확고한 자아를 만들어내지 못한 채, 하루하루의 모욕을 견디며 무력한 인간으로 살아간다.
이렇게 날것으로 처절하게 사춘기 소녀의 심리를 묘사한 글을 읽은 적이 없다. 이토록 비관적인 '소녀의 결말' 또한 없었다.
글을 읽는 내내 마음 한편에 남아있던 소녀인 나를 다시 보고 살피고 쓰다듬었다. 동시에 소녀가 될 내 딸들의 마음을 두려워하고 걱정했다.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지고 있을까? 에비가 사샤를 만났을 때처럼, 중년이 된 내가 사춘기 소녀가 된 두 딸을 대할 때 나도 무력하면 어떡하지.
그러지 않도록, 지금, 하루하루, 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표지 사진: Unsplash의Abo Ngalonkul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