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에 눈을 뜬다. 악몽 때문인지 고동 소리가 귓가에 들릴 정도로 심장이 뛰어댔다. 악몽을 꾸었구나 하고 생각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주위를 두리번댈 때가 있다. 이곳이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려서 말이다. 방금 전까지도 허둥지둥대며 두리번거렸던 걸 보니 방금 전까지 난 현실과 꿈을 착각했다는 것을 알았다. 심장이 진정되지 않는다. 등골에 날카로운 감각 때문에 분명 피곤한데 잠이 다 날아가 버렸다. 침대 맡에 손을 더듬어 휴대폰을 찾아 시계를 확인한다. 잠든 지 세 시간 정도 지나 있었다. 출근 시간까지는 아직 두 시간 반 정도가 남았다. 잠을 더 자고는 싶기는 하지만 등에 있는 감각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것 같고, 설령 잠을 자게 되면 쉽사리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 꺼림칙한 감각을 이겨내며 이불 속에서 빠져나온다.
눈이 따갑고 몸이 찌뿌둥하다. 어그적어그적 기어다니며 창문이라는 창문을 열어댄다. 집 안에 있는 공기들이 어쩐지 탁하게 느껴져 환기를 시키기 위함이다. 멍하니 푸르스름한 바깥 하늘을 바라본다. 요즘 불쑥불쑥 내 존재의 이유에 대해 의문을 품는 순간이 많아진다. 결론은 어거지로 모든 생명들이 의미를 가지고 살지는 않는다로 끝나지만 감정이라는 게 잘 컨트롤되지 않는다. 영하의 날씨에 잠시 문을 열어 놓아도 집 안이 금세 추워졌다.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텨 보려 한다.
방금 일어나서 그런 것인지 추위에 적응되지 않는다. 창문을 연 지 십 분도 안 되어 다시 닫아버린다. 그리고 커튼이라는 커튼은 다 닫아버리고 집 안에 불을 밝힌다. 밖에서 들어오는 빛들은 어쩐지 거부감이 든다. 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주방으로 다시금 어그적어그적 걸어간다. 좀 전보다는 몸이 이 세상에 적응이 된 것인지 움직이기가 편하다. 주방에 와 서랍을 열어 믹스커피 열 봉지를 꺼낸다. 어제 설거지하고 놓아둔 믹서기 통을 싱크대 위에 올려놓고 방금 꺼낸 믹스커피 봉지를 하나하나 뜯어내 설탕을 빼고 통 안으로 부어 넣는다. 그리고 어제 먹다 만 쓰리샷 아메리카노를 부어 넣고 냉장고 안에서 두유 두 팩을 꺼내어 밀봉 부위를 가위로 잘라내고 믹서기에 부어 넣는다. 그리고 식탁 위에 있는 꿀을 가져와 꾸욱 하고 눌러 믹서기 통 안을 두 바퀴 두른다. 평소라면 조금만 넣었겠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단 것이 몸 안에 들어가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다.
믹서기 통을 닫고 기계를 3분으로 타이머를 맞추고 버튼을 눌러 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동안 대용량 텀블러를 가져와 냉동실에서 각얼음을 한 주먹 쥐어 넣는다. 그리고 또 한 주먹을 쥐어 넣는다. 텀블러 안에 얼음이 3분의 2 정도 차도록 채워 두고 싱크대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잠시 기다린다.
엄청난 소리를 뿜어내는 믹서기를 바라보니 안에서 회오리를 만들어 내며 잘 섞이고 있었다. 띵띵띵 하는 알람 소리가 들린다. 믹서기를 들어 뚜껑을 열고 잘 갈린 커피를 얼음이 채워진 텀블러 안에 채워 넣는다. 찬장에서 제일 긴 빨대를 꺼내어 텀블러 안에 꽂고 휘익휘익 5분 정도 살살 돌린다.
5분 정도 지나면 빨대에 입을 갖다 대고 충분히 냉기를 머금은 아이스 믹스커피를 쪼옥쪼옥 빨아대며 빨아먹는다. 한 번 입을 갖다 댔는데도 3분의 2가 사라져 버린다. 입술을 떼고 방 안 아무 곳이나 바라본다. 냉기 때문인지 카페인 때문인지 아니면 달달함 때문인지 머리가 찡해진다. 기분 좋은 고통이 사라지고 드디어 하루를 버텨낼 수 있는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