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벌레

by J팔

눈을 떴을 때 어쩐지 산뜻한 기분이 몸을 감 샀다. 눈을 떠도 이불속에서 한참을 꿈 지락 하는데 몸이 가벼워 움직이기가 편했다. 가벼워진 몸으로 이불에 벋어나 창문을 여니 차가운 공기가 코끗을 찡하게 했다. 냄새가 좋았다. 어디서 품고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풀내음 같은 것이 은은하게 났다. 초록색깔 냄새 모든 것이 좋은 날이다.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자주 조깅을 했었는데 요즘은 이런저런 핑계로 달리지를 안았다. 평소와는 다르게 달려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다리고 싶었다. 어떻게든 오늘 같은 날은 안 달리면 후회할 것 같았다. 아침공기가 제법 차가웠지만 어느 정도 달리고 나니 몸에 열이 올라 따듯한 기운이 몸을 감싼다. 반복된 움직임, 반복된 호흡, 늘 달리던 코스, 정해진 턴 지점, 종료지점 조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생각을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 만은 것들을 명료하게 만들어준다. 생각도 그러하지만 감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 준다 어떨 땐 평소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나를 엄습했을 때 조깅을 하고 나면 그 불안함이 어쩐지 별거 아닌 것처럼 다가온다. 불안함 뿐 만 아니라 이것저것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범람했을 때 도움이 된다. 넘쳐흘러 자신도 어쩌지 못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댐처럼 방류할 수 있게끔 해준다. 몸이 피곤해야 잘 살 수 있는 것처럼 그리고 이것저것 평소에는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이 불현듯 나게도 해준다. 평소에는 갇혀있던 생각이나 상상들이 자유자재로 꿈틀 되게끔 해준다. 정해져 있는 장면을 재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생물처럼 자유자재로 장면이 바뀐다. 그럴 때면 지루 해 지려는 뜀박질도 제법 오래 달리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달려왔던 길이 순삭 된듯한 기분도 느껴진다. 정해진 코스를 채우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초록색 애벌레 한 마리가 보도블록 위를 기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냥 그런가 보다 지나갈 일인데 이상하리 만큼 눈에 걸려 한참을 기어가는 모습을 봐라 보았다. 둥글 길쭉하고 검지 손가락 길이에 털은 복슬복슬하게 났고 통통 하게 살집은 올라와있다. 벌크 업한 애벌레 같았다. 애벌레는 보도블록을 지나 시멘트 담벼락까지 기어 올라 같다. 저 어떻게 하면 저렇게 쉬지를 않고 기어올라 갈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의외로 빠르기까지 한듯했다. 천천히 꼬물꼬물 기어간다 생각하고 언제 저기까지 도착하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벌레는 예상을 벋어 난 거리를 기어 같다. 너무 열심히 기어가는 벌레를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벌레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우리가 미물이라 부르는 것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치열하게 생존하고, 치열하게 번식하고 그리고 누군가의 먹이가 되거나 생명을 다할 때까지 최선을 다한다. 프로그래밍이 된 로봇처럼 망설임 없이 그들 세상을 들여 본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그런 것들이 아닌 다른 세계가 있을까? 눈에 보이는 그들의 삶은 너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의 삶도 조금은 더 다채롭고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은 뜯어 놓고 보면 그들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어쩐지 가끔은 쓸데없이 복잡하게 사는 듯도 하다. 결국은 마지막쯤에 와서야 ‘덧’ 없다 는 것을 마주하는 듯하다. 결국은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들은 푸릇푸릇했던 낙엽이 메말라 살랑이는 바람에 나무에 떨어져 바스러진다.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저미어 온다. 평생을 푸릇해 있을 것 같은 존재가 시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본다는 건 두렵고, 겁이 난다. 죄여오는 감정이 또 다시금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초록색벌레를 바라보지 말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작디작은 미물이라 헛으로 생각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런 의외의 것들이 나에 머릿속 실타래를 꼬고 꼬아 마구 엉켜버리게 만든다. 엉켜버린 실뭉치를 자르러 뛰었던 길은 다시금 돌아 다시 뛰러 가야 한다. 초록벌레야 너의 목적지는 도대체 어디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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