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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양 Jul 13. 2021

[책] 제7일

#3

제 7일


 읽으면서 또 한번 느꼈다. 위화의 소설은 술술 잘 읽히기도 하지만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스해서 참 좋다. '인생', '형제', '허삼관 매혈기' 등등 위화의 소설은 한국에서 꽤 잘 알려져 있는 편이다. 나도 위화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기대하는 마음으로 '제7일'을 읽었다. 


 '제7일'은 이 책의 주인공 양페이가 죽고 난 후 7일동안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 소설이다. 저승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인지 조금 신선한 면이 있었다. 동양문화를 배경으로 한 저승 이야기는 대게 '어떤 신과 같은 심판자 앞에 가서 자신이 생전에 지었던 죄를 심판받고 무엇으로 태어날지 결정된다.'는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러나 위화가 상상한 저승은 이와 조금 다른 듯 하다. 위화의 상상 속 저승에는 '안식의 땅'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곳에 가려면 타인이 자신의 묘를 사서 장례를 치뤄주어야 한다. 하지만 묘를 사서 제사를 치뤄줄 사람 하나 없이 죽은 사람들은 안식의 땅으로 가지 못하고 계속 저승에 머무르게 된다. 그 곳에 오래 머무를 수록 육신의 피와 살은 점차 사라지고 뼈만 남게 된다. 또한, 무덤이 위치한 곳이나 크기에 따라서 vip와 일반석으로 나뉘어 화장되는데 무덤에 쓴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빨리 화장되어 안식의 땅으로 갈 수 있을 뿐더러 넓고 경치가 좋은 무덤에서 사후의 생을 보낼 수 있다. 

 이렇게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저승을 배경으로 주인공 양페이는 저승에서 7일의 시간동안 이전 생에서 헤어졌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헤어졌던 아내, 아버지, 양어머니, 이웃들을 만나 자신의 삶을 돌아본 양페이는 마침내 무덤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 영원히 남기로 결정한다. 


 위화의 소설 특징이 그렇지만 그는 주인공 인생 전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다른 소설의 경우 어느 시간대에 일어난 어떤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경향이 짙다면 위화는 주인공의 첫 탄생부터 그의 끝까지 다루는 경우가 많다. 아주 긴 인생을 담담히 서술하면서 독자들이 주인공의 인생에 대해서 느껴보도록 하는 것이다. '제7일'의 경우 주인공 양페이는 비교적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그의 첫 탄생부터 시작되어 사고로 죽는 마지막 까지 그의 이야기를 담담히 나열하는 것을 보고 역시 위화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7일'이 이전 소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 '허삼관 매혈기', '형제'에서는 문화대혁명과 개혁개방등 중국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제7일'에서는 비교적 최근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제7일'에서는 배경만 현대일 뿐 중국의 가난한 인민들이 겪는 고통과 소외, 비극에 대해서 그려내는 것은 변함이 없다. 사실만 놓고보면 황당하고 분개할만 한 일인데도 위화는 이 모든 일들을 담담하게 서술해내며 오히려 더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정을 증폭시킨다. 또한, 소설을 통해 중국 사회의 빈부격차를 짐작해보게 하며 국가의 성장 이면에 감추어져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하지만 이 모든 부조리를 그려내는 작가는 분노하거나 절박한 감정을 담아 글을 쓰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그저 당연히 존재할만한 일을 보는 양 담담한 어투로 주인공과 그 주변의 인물을 그려내고, 때로는 주인공들의 일상적인 면을 부각시켜 단지 개인에게 일어난 한 사건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화의 소설이 한 인물의 개인사로만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가 배경으로 삼고 있는 시대의 모습이 어떤지 세세하게 묘사하기 때문이며 그 배경을 무대로 일어나는 사건들이 주인공의 삶 전체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에서 송강과 이광두의 아버지인 송범평이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죽게 되는 장면이나, '허삼관 매혈기'의 허삼관의 부인 허옥란이 과거의 행실로 비판받기 위해 길거리에 하루종일 서 있는 장면이나, '인생'에서 주인공이 가난한 농부로 전락하게 되어 오히려 문화대혁명 시기를 잘 넘어가게 된 장면 같이 평범한 인생이 시대에 휩쓸려 어떻게 부딪히고 부서지게 되는지 독자는 확실히 알게 된다. '제7일'에서 병원이 무너져내려 영유아의 시체가 소실된 일이라던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가 붕괴되어 부모님을 잃고 홀로남은 아이라던가, 묘를 사기 위해 장기매매를 하는 남자친구의 모습 등등을 통해 중국 현대사회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그로 인해 사람들의 삶이 어떤식으로 무너지고 파괴되는지 알 수 있다. 


 전반적으로 재밌게 읽었으나 한가지 마음에 안들었던 점(혹은 거슬리는 점)도 있었다. 바로 저승에서도 자본주의가 침투해 있다는 것이다. 묘를 사서 장례를 치루는 사람이 없다면 영원히 저승을 떠돌아다는다는 것은 그렇다쳐도 묘의 크기와 위치에 따라서 vip와 일반석으로 나뉘게 된다니? 보통은 죽음 앞에 빈자와 부자, 남녀노소 모두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죽고 나서도 금전적으로 불평등한 세상이 여실히 남아있는 모습은 내 예상 밖의 설정이었다. 죽은 뒤에도 돈에 따라서 평등하지 못하다는 사실이 슬프고 안타깝게 다가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현실에서도 위대하고 부유한 사람들의 장례는 화려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가난한 사람들이나 소외된 사람들의 장례는 빈약하고 아무도 관심이 없다는 걸 생각해보면 위화가 왜 그렇게 설정을 했는지 이해 못할 일도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죽음 앞에는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이 부분이 조금 아쉽게 남았다.  


  만족도로 따지자면 '인생' 다음으로 좋았던 소설인 것 같다. 양페이의 양아버지 양진바오와의 관계성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모성애에 관한 소설은 넘쳐나도 부성애를 이야기하는 소설은 잘 찾기 힘들었는데 '제7일'에서 친아버지가 아님에도 친아버지 같은 양진바오의 애틋한 사랑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고 보니 '형제'에서도 송범평과 이광두의 관계,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허삼관과 허일락의 관계를 통해 양아버지로서 두 사람이 부성애를 보여주는 장면이 종종 있었다. 아마 부성애라는 키워드가 위화 소설에 깔린 공통점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여담 

 사실 '인생', '형제', '허삼관 매혈기'도 재밌게 읽었지만 때때로 여성 인물의 묘사에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제7일'은 위화 소설 중에서도 그런 부분에 있어서 불쾌함이 가장 적었다. 가장 최근에 쓴 소설이기 때문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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