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가 아득해졌다. 그 때와 지금, 초등학생이던 내가 고작 40대가 된 길지 않은 기간이라 지금의 연장선이라 생각했는데 그 때에 대해 잘 모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 갑작스러운 깜깜함은 장시간 컴퓨터 사용으로 흥분 상태에 있는 뇌를 좀 진정시키고 싶을때 요즘 틈틈히 읽는 박완서 전집 4권 (문학동네) 때문이다. 뭘 읽어 볼까나. <<움딸>>이라는 제목에 시선이 멈췄다. 모르는 단어다. 뭘까. 자려고 단편 하나 읽는데 사전까지 뒤질 필요까지야... 무시한 채 읽기 시작했다. 제목도 낯설었지만 글에 사용된 단어나 표현에 잠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책에 사용된 어휘 그대로 사용해서 이야기를 설명하면, “집안이 갑자기 기울어진 탓에 서른을 꽉 채운 노처녀가 부인과 사별하고 아이 하나 있는 남자의 구혼을 받고 후취로 들어간 이야기”였다. 움딸은 후취인 여성과 죽은 전취의 친정 어머니와의 관계를 일컫는다고 한다. 외손주와의 고리를 잃지 않기 위해서 ‘전취’와 ‘후취’를 굳이 가족 관계로 엮는 인위스러운 단어 움딸, 서른 넘으면 노처녀? 전취? 후취? 청혼이 아니라 구혼? 요즘에는 잘 보이지 않는 단어와 한국 전쟁 직후에나 있음직한 시대 착오적 생각에 당혹스럽다. 갸우뚱거리며 책을 맨 뒤로 넘겨서 발행된 시기를 찾아 보니, 4권은 1984-86년도에 발표된 글 모음이었다.
친근한 듯하면서 생소한, 가까운 듯하면서 은근히 먼 과거처럼 느껴지는 1980년대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읽기로 했다. <<움딸>> 바로 앞에 있는 <<어느 이야기꾼의 수렁>>
성이 황씨라는 것만 알려진 주인공은 아동 작가다. 황작가는 현재 ‘풍선 타고 세계일주’라는 동화를 아동 잡지에 연재하고 있다. 내용은 또마라는 주인공 아이가 풍선 타고 이리 저리 다니다 새로운 곳에서 친구를 만나 사귀는 내용이다. 황작가는 우연한 자리에서 TBS 방송국 어린이 프로 프로듀서인 김경채를 만나고 그가 또마의 팬이라는 소리에 둘은 빠르게 가까워진다. 어느 날, 김경채는 6.25 특집 어린이 TV극을 기획하고 있으니 그에 맞는 극을 하나 써 달라고 황작가에게 부탁한다. 김경채는 천진난만한 남한의 아이와 북한의 아이가 우연히 민통선 (민간인 출입 통제선)안 농촌 지역에서 만나 우정을 나눈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간곡한 부탁에 수락하지만, 고압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 지뢰밭이 수두룩하게 깔린 휴전선을 뚫고 두 아이를 만나게 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둘은 철원 지역의 군부대로 향한다. 하지만 북한 아이가 휴전선을 넘어올 수 있는 방법은 불가능하다는 김빠지는 소리를 군 관계자로부터 듣는다. 김경채는 리얼리티를 포기하고 상상력 쪽으로 방향을 튼다. 영화에서는 외계인과도 친구가 되고 또마는 동화 속에서 풍선으로 바다 넘어 외국도 자유로이 가는데, 바로 붙어 있는 북한에 못 갈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황작가도 상상력에 의존하기로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황 작가의 마음 속에서 아이들이 입을 열지 않았다. 한 줄도 나가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화가 난 황작가는 “김경채야말로 나의 수렁이었다” 고 외친다.
이 소설은 1980년대 중반 무렵 박완서 작가가 느끼는 분단이란 벽의 두께를 보여준다. 북한 개성이 고향인 박완서의 글에는 분단과 관련된 소재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아동작가와 방송 프로듀서를 통해 분단을 이야기한다. 황작가와 김 프로듀서에게 분단은 현실성(리얼리티)과 상상력의 영역에 놓여 있다. 안타깝게도 두 사람은 양쪽 모두 극복하지 못한다. 현실성 속 분단은 휴전선이라는 실체로 이야기된다. 개연성을 기꺼이 찾을 요량으로 철원까지 찾아갔지만 녹녹치 않았다. 김경채는 홍수가 나서 떠내려올 수도 있지 않냐, 바다로 올 방법은 없냐, 그럼 간첩은 어떻게 오는 거냐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우겨보지만 답은 같다. 사료에 입각해서 일일이 각주가 달려있는 역사 책에 익숙한 나인지라 휴전선을 현실 속에서 깨겠다는 그의 간절함이 안쓰러울 정도다. 하지만 잘못은 김경채다. ‘휴전선을 뭘로 보고...’ 오히려 김경채의 간절함을 싸늘하게 잘라버리는 군부대 관계자의 설명, “근래엔 육로로 간첩이 침투하거나 귀순해 올 수 있는 방법은 전무하다고 봐야죠. 거의 바다를 통해 오는데 바다로도 짐승이나 보따리처럼 무심히 떠내려 오는 건 말도 안됩니다. 치밀한 계획, 강력한 의지, 초인적인 체력, 목숨을 건 증오나 사랑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죠”가 설득력이 있다. 이것이 휴전선으로 표상되는 분단의 리얼리티다.
이 소설에서 정작 서글픈 부분은 상상력 쪽에서도 막혀 버린 분단의 두께다. 한국적 상상력인 삼신 할머니 카드를 꺼내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휴전선을 뚫을만한 영감을 주지 못했다. 북한을 잘 모르기 때문인가 싶어서 황 작가는 김경채에게 부탁해 북한 말과 북한 교과서까지 어찌어찌 구해 공부하지만, 여전히 작가의 상상 속에서 조차 “아이들은 말을 열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지식이 있는 데도 아이들이 말문을 열지 않는 이유를 황작가는 정확히 안다. “나의 또마가 자유롭게 지구의 구석 구석을 돌며 많은 나라 아이들과 사귀고 친해질 수 있었던 건, 내가 그 여러 나라 말들을 다 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여러 나라에 대한 그리움과 이해 때문이었다.” 의미심장하다. 북한에 대한 궁금함, 호감, 그리고 색안경을 끼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 볼 마음이 없는 1980년대 남한 사회는 아직 상상 속에서조차 북한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 이 견고함이 작가 박완서가 관찰한 1980년대 분단이었다.
풍선으로 태평양은 건너도 휴전선은 넘을 수 없었던 1984년의 좌절은 36년만인 2020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으로 극복된다. 풍선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패러글라이딩이 때마침 불어닥친 회오리 바람의 도움으로 휴전선을 넘으며 북한이 상상 속으로나마 들어왔다. 게다가 인물 설정도 과감하다. 소설 속 황작가와 김 프로듀서는 정치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이데올로기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고 사회가 그나마 관대함을 보일 수 있는 아이들의 만남을 기획했다. 하지만 2020년 드라마에서는 양쪽이 가장 혐오하는 존재들, 즉 남한 자본주의의 상징인 재벌가의 여성과 남한이 북한 문제에 있어 가장 민감한 북한군 장교가 만난다.
상상속 공간도 확장되었다. 80년대의 황작가와 김경채는 남한 아이가 북한으로 가는 설정을 하지 못했다. 북한으로 넘어간 이후가 그려지지 않기때문이다. 북한 아이를 남한으로 데려오지만 남한에서도 공간의 제약은 발견된다. 여차저차해서 넘어왔다 하더라도 북한 아이는 민통선 안의 농촌에 머무를 뿐이다. 남한 아이가 북한 아이를 데리고 민통선을 뚫고 나와 자기가 사는 생활 속으로 데려가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 혹 들켰을 경우 아무리 순수한 아이라도 그것이 일으킬 정치적 파장등 뒷 감당이 안되기 때문일 것이다. 만남이 성사되지도 않았지만 성사될 지라도 이들이 생각한 최선의 곳은 1대 1만 가능한 폐쇄된 공간, 정치적 의미가 담길 수 있는 모든 장치가 배제된 공간인 "허름한 헛간" 정도다. 반면, 2020년의 드라마 속 상상은 80년대가 보인 공간적 제약을 훌쩍 넘어선다. 여자 주인공은 몇몇 사람에게 신원이 노출되기도 하고 북한 주민과 섞여 생활하면서 북한의 주택, 주택 내부의 가구, 인민반 생활, 언어, 음식, 병원, 기차등 알찬 경험을 한다. 반대로 북한 사람들이 내려와 남한을 경험하기도 한다. 양측 모두 경계심을 보이고 삐걱거리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고 심지어 축구 한일전을 관람할 때는 대동단결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1984년과 2020년의 두 이야기는 상상력 영역에서 분단의 벽이 어느 정도 허물어졌음을 보여준다. 이 기간에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현실성은 여전히 없지만 설정 속에서라도 휴전선을 넘어 서로가 서로의 사회를 경험한다는 것을 어떻게 꿈꿀 수 있었을까. 또 드라마로 방영되었을 때 그걸 보는 시청자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환호한 이유는 또 무엇일까.
내 엉성한 기억과 짧은 경험치를 들추면, 1980년대는 확실히 적대감이 넘쳤다. 대부분 어린이들이 “똘이 장군”이라는 반공 만화 영화를 보았다. 헐벗은 북한 아동을 향해 뿔 두개 달린 김일성이 채찍을 휘두르는데 똘이라는 소년이 그들을 구한다는 줄거리다. 만화 영화를 만든 이는 어른이었을텐데 얼마나 적대감이 넘쳤으면 김일성을 괴물로 형상화시켜 아이들에게 보여줘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 때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친 이승복 어린이 이야기가 항상 있었고 때때로 삐라를 주우면 상을 주는 행사와 수상한 자를 경찰에 신고하라는 표어가 주위에 있었다. 이같은 적대적 관계를 풀 수 있는 첫 기회가 왔다. 바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면서 유럽의 냉전 질서가 무너진 1990년대 초다. 예기치 못한 국제 사회 변동에 당황, 두 사회는 대화의 기회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그간 쌓아올린 적대감이 너무 높았다. 그리고 두 사회는 다른 선택을 한다. IMF라는 위기가 있긴 했지만 남한은 보다 열린 사회를 지향한 반면, 방향 전환 기회를 놓친 북한은 방어적인 모습을 보였다. 2000년대 초는 두번째 기회였다. 김대중 대통령의 햇빛 정책과 그를 계승한 노무현 대통령의 평양 방문.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등 갈등이 적은 분야부터 교류의 물꼬를 텄지만 핵 문제에 가로막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10년의 침묵 끝에 세번째 기회인 2018년이 왔다. 평창 동계 올림픽을 시작으로 ‘이건 진짜 전환점이다’는 희망을 주었던 해였다. 거의 다왔다 싶었지만 북미 관계에서 막혀 주르르 미끄러져 다시 냉각된 상태다. 결국 1984-2020년 동안 세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가시적이고 체감할 수 있는 변화까지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쳇바퀴같은 남북 관계 속에서 네 번째 기회는 언제가 되어야 오려나. 그래도 남북 관계가 한 발자국도 못나간 것은 아닌가 보다. 리얼리티를 바꿀 세 번의 기회를 날려 버리긴 했지만 상상의 세계에서라도 휴전선을 넘나 들었으니 말이다. 문학적 세계에서라도 진전이 있었음을 보여준 두 작가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