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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순에 대해 생각합니다

Ray & Monica's [en route]_268

by motif Dec 02. 2024

대남방송과 대북방송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ᐧ강민지


#1


안티구아의 숙소 옥상에서 바라보는 화산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아내는 이 옥상의 의자에서 즐기는 풍경을 제일 좋아합니다. 갖가지 식물이 사계절 꽃을 피우고 벌새와 나비 등 온갖 새와 곤충들이 날아와 꽃을 탐합니다. 오레가노와 민트와 라벤더 등 각종 허브식물을 바로 따서 차를 우려 마시는 이 순간을 어찌 평화롭다고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곳에서 4계절을 지내보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스리지 못함을... 해서 이 안티구아를, 혹은 과테말라를 일시적으로 떠나지 않아도 1년을 지낼 수 있는 체류 신분 확보에 대해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과테말라 사람들은 청결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안티구아에서 쓰레기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꽃축제(Festival de las Flores)나 그리스도 왕 행렬(Cristo rey procesión) 등 수천 명에서 수만 명이 운집하는 행사 뒤에도 거의 쓰레기가 남지 않습니다. 축제 기간에는 24시간 청소차가 운영되고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바치고 순종에 대한 표현으로 자갈밭 도로 위에 물을 들인 톱밥을 깔아 화려한 문양의 양탄자를 만드는 알폼브라(alfombras)도 행렬이 지나간 즉시 뒤따르는 청소반에 의해 수거되어 도로는 바로 원상복구됩니다.


안티구아가가 마치 한적한 시골마을 같은 감성을 주는 것은 도드라지지 않은 작은 간판과 엄격히 준수되는 주차질서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평화로운 현실을 좀 더 가까지 들여다보면 두려움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낮 옥상에서 보는 푸에고 화산(Volcán de Fuego)의 검은 분출은 마치 밥을 짓는 평화로운 옛 고향마을 굴뚝의 연기 같고 밤의 붉은 마그마 분출은 아름다운 불꽃놀이 같습니다. 그러나 이 화산이 도시를 폐허로 만들었고 수도를 옮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간판 디자인 규격에 대한 지침이 얼마나 엄격하고 주차위반에 대한 벌칙이 얼마나 강한지 이곳 주민들은 그 범칙금에 대해 공포를 느낄 정도입니다.


"악기를 내리기 위해 잠시 차를 세웠다가 500케찰 티켓을 받았어요. 2시간 제 연주비가 500케찰이에요." 피아니스트 넬슨의 하소연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 중에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단지 청구서가 즉시 발행되기도 하고 후에 발행되기도 하죠. 돈이 아니면 옥살이로 결국 누린 것의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2


어제 모티프원을 책임지고 있는 딸이 결국 게스트분들의 밤의 평화를 위해 귀마개를 준비했다는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북한의 대남방송 소음으로부터 어떻게든 손님들의 숙면을 지켜내야겠다는 결단이라고 했습니다.


귀마개와 함께 프린트해서 공간마다 비치했다는 귀마개를 준비한 이유에 대해 읽으면서 우리 부부가 한국의 지구 반대편 옥상에서 누리는 평화의 모순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서부전선 아랫마을, 헤이리


(귀마개를 준비하며...)


최근 산발적으로 대남방송 소음이 들리고 있습니다.


올해 6월 9일, 우리 정부는 북한의 대남 오물풍선 살포에 대한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 제약 등 접경지 인근 우리 군의 활동을 제약하는 9·19 군사합의(9·19 군사분야 남북합의서)' 전체의 효력을 정지하고 규정을 모두 풀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했습니다. ‘2018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으로 멈출 수 있었던 확성기 방송을 통한 심리전쟁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북한 정권이 제일 두려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정권에 대한 불만을 야기하고 사회적 불안을 유도하는 남한의 현실과 북한 정권의 실상에 대한 정보들이 유포되는 것입니다. 대북방송은 접경지에 밀집 배치된 북한군과 그곳에서 영농활동을 하는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정권이 숨겨왔던 인권 정보를 비롯한 그들의 치명적인 내용을 폭로하는 남한의 대응입니다.


이에 대응하는 대남 방송의 경우, 예전에는 체제 선전 및 선동(propaganda) 방송이었으나 현재는 남한의 접경지 군인과 주민들에게 고통을 유발하는 소음 방송(여성의 흐느낌 소리, 남성의 고함소리, 짐승의 울음, 귀곡성 등)을 하고 있습니다.


대남방송과 대북방송은 양측의 군과 주민들에게 심적 교란을 목적으로 하는 심리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남 및 대북방송의 고출력 확성기는 군시설로서 양쪽 군의 정밀 타격 대상이 될 수 있으므로 고정 설치뿐만 아니라 차량에 장비를 탑재한 기동형 방법으로 운용되는 형편입니다.


현재 대북방송 스피커는 북쪽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남쪽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남방송 확성기가 군사분계선(MDL)으로부터 불과 10km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 헤이리(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해상경계선인 NLL(Northern Limit Line, 북방한계선)까지 466m. 북한의 마을까지는 2km이다. 헤이리에서 오두산까지가 2km에 불과하니 실질적으로 헤이리에서 북한까지는 4km인 셈이다) 쪽을 향하는 방송이 이루어질 때 심한 소음이 야기될 수 있습니다.


최근 남북의 갈등 상황이 높아지면서 남북한의 구시대적인 방송 송출이 언제 멈출지는 알 수 없습니다. 파주의 접경지 주민들은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등, 여러 요로를 통해 대남방송 소음으로 인해 삶의 안정이 위협받고 있는 현실을 전달하고 양측이 방송을 즉각 멈출 수 있는 대책을 세워줄 것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전체의 안위가 걸린 여러 정치, 군사적 상황에서 접경지 주민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언제 반영되어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국가와 개인은 항상 모순적인 상황에 놓여있기 마련입니다. 한국은 방산 수출액 세계 5위 강국으로 도약했으며 그 수익은 한국 경제력의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듯 평화를 원한다는 이유로 우리 나라는 많은 살상 무기를 수출하고 있고 그것을 우리의 우수한 경쟁력이라고 홍보하고 있습니다. 세계 10대 살상 무기 공급국으로 부상한 한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타국의 전쟁이라는 비극으로 얻어지는 수익의 수혜를 받고 있는 셈입니다.


혹시 오늘 밤 대남방송의 소음을 접하시게 된다면 그동안 잊고 있었던 우리와 나의 모순에 대한 점을 성찰해 보는 기회로 삼는 여유를 갖거나 준비된 귀마개를 활용해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보아도 좋겠습니다.


이번 헤이리 방문이 막연히 '전방'이라 불리는 접경지에서 우리나라는 전쟁이 끝난 '종전국'이 아니라 잠시 전쟁을 중단하고 있는 '휴전국'이라는 현실을 상기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티프원은 이렇듯 총구를 맞대고 상호 비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이라는 유연한 예술적 창의성으로 '휴전'이 '종전'으로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모티프원에서의 하룻밤이 입시, 입사, 승진, 성공, 비교라는 일상의 전쟁 같은 경쟁에서도 언제나 평화롭고 충만하실 수 있는 기예를 익히는 나들이가 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_귀마개를 준비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모티프원 올림


●마침내 대남방송이 멎었습니다.

https://blog.naver.com/motif_1/221263312160


●오늘 희망 쪽으로 몇 발자국을 더 나아간 것일까?

https://blog.naver.com/motif_1/221181559078


●서부전선 아랫마을, 헤이리

https://blog.naver.com/motif_1/221108926181


●접경지의 주민으로 사는 법

https://blog.naver.com/motif_1/220461015466


●북조선 사람과의 술자리

https://blog.naver.com/motif_1/221154689584


●최 전방에서(IN FRONT OF THEM ALL)

https://blog.naver.com/motif_1/221173576061


●헤이리365_37 | 공동체(community)

https://blog.naver.com/motif_1/30129422261


●헤이리365_36 | 참호(塹壕, trench)

https://blog.naver.com/motif_1/30129389416


●“유라시아 최고의 한류스타는 김정은”

https://blog.naver.com/motif_1/221412603566


●2006년 7월의 헤이리 모티프원 아침 풍경

https://blog.naver.com/motif_1/30006433823


●헤이리에서의 다른 성취보다 함께 라는 사실이 본질

https://blog.naver.com/motif_1/220224332238


●평화와 생명의 성스러운 영역을 걷다. PLZ트레킹

https://blog.naver.com/motif_1/30037783273


●미운 사람, 노무현

https://blog.naver.com/motif_1/30048581023

#대남방송 #헤이리 #안티구아 #과테말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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