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스페인 총독과 원주민 여성의 로맨스

Ray & Monica's [en route]_290

by motif Jan 27. 2025


황금과 보석, 그리고 원주민 여성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외식을 즐겨 하지 않는 우리지만 안티구아에서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이 있다. ‘도냐 루이사 시코텐카틀(Doña Luisa Xicotencatl)’이라는 곳으로 베이커리를 겸한 레스토랑이다.


처음 안티구아에 도착하고 우리에게 이곳 주민들 삶의 현실과 여러 정서를 알려주어서 우리의 적응을 도와주었던 파블로 콜론(Pablo Colon) 씨가 우리를 데려간 곳이었다.


"과테말라 전통요리부터 퓨전까지 다양한 메뉴가 있어서 취향에 따른 선택 폭이 넓습니다. 무엇보다 오래된 유서 깊은 집이에요. 식민지 때, ‘총독궁(Real Palacio de los Capitanes Generales)’에서 가까운 2층 발코니가 있는 귀족의 집이었죠."


그가 이곳으로 발길 한 것은 식민지 시절 모습이 간직된 사연 있는 집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두 번째 방문은 안티구아의 여러 전통행사들을 내게 귀띔해 준 사진가, 라파엘 마르티네스(Rafael Martinez) 씨와 함께였다.


"오래된 시간의 격조를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발코니 밖으로 푸에고(Fuego) 화산의 분화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1층에는 오래된 베이커리가 있습니다."


라파엘 씨의 말대로 레스토랑에 베이커리가 함께 있다는 것은 빵이 베이스가 되는 서양요리에서 신선하고 좋은 빵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에도 이 집에 계속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파블로의 얘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할머니와 종종 오던 곳이었어요. 할머니는 항상 이 도시와 관련한 다양한 사연들을 제게 얘기해 주시곤 했습니다. 보다시피 이 도시는 2층 집이 드물고 더구나 이 집은 식민지 시절 스페인 총독의 거주지, 총독궁으로부터 한 블록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죠. 할머니에게 들은 얘기로는 그 총독이 사랑에 빠졌던 원주민 처녀의 집이었데요. 이 근처에 이렇게 2층 발코니가 있는 집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원주민 처녀와 총독의 사랑이라는 말은 아즈텍 제국의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와 그의 정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그의 여성, 말린체(La Malinche)를 떠올리게 했다. 이것이 이 집과 이 집의 주인이었다는 원주민 여성에 대한 내 호기심의 발단이었다.


말린체(나우아틀어 이름은 말리날리 테네팔(Malinali Tenepal), 세례명은 도냐 마리나(Doña Marina)는 파이날라(Painala)라는 곳의 아즈텍 원주민 귀족의 딸에서 개가한 그녀의 어머니에 의해 노예로 팔렸다. 정복 과정에서 화평의 선물로 코르테스에게 받쳐진 20명 여자 노예의 한 명이었다. 총명함으로 코르테스에게 통역으로 발탁되어 코르테스의 정복 전략 수립에 중요한 조언자가 되었다. 그의 총애 받는 애첩으로 아들 마르틴Martín Cortés, 1522생으로 추정)를 출산한다. 그러나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돌아가면서 그녀는 코르테스의 부하, 후안 하라미요(Juan Jaramillo)라는 콘키스타도르(Conquistador)와 결혼해 마리아(Maria Jaramillo)라는 딸을 낳는다. 그녀의 아들과 딸은 최초의 메스티소로 기록되었다.


이 레스토랑은 1978년에 ‘Panadería Y Pastelería Doña Luisa Xicotencat’라는 이름으로 문을 연 베이커리를 겸한 카페테리아였다. 평화 봉사단의 자원봉사자로 과테말라에 왔던 Doña Luisa라는 사람이 가족에게 물려받은 미국식 레시피로 바나나빵, 통밀빵, 머핀 등을 비롯해 당근 케이크와 샌드위치 등을 만들어 팔면서 특히 큰 인기를 얻었다고 한다.


며칠 전 이 레스토랑의 재방문에서 '도냐 루이사 시코텐카틀(Doña Luisa Xicotencatl)'이라는 이름이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과테말라 지역의 마야 도시국가들을 정복하기 위해 파견한 페드로 데 알바라도(Pedro de Alvarado)의 원주민 부인 이름을 차용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루이사 시코텐카틀(나우아틀어 이름은 테쿠엘우에친(Tecuelhuetzin))은 코르테스가 아즈텍의 테노치티틀란을 정복할 때 협력한 틀락스칼텍(Tlaxcaltec) 부족 틀락스칼라(Tlaxcala) 추장의 딸이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누구인지 전해지지않지만 아버지, 시코텐카틀Xicotencatl)은 부양할 수 있을 만큼의 여성을 부인으로 둘 수 있는 당시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일부다처 풍습에 따라 200여명이 넘는 부인을 두었고 셀수없을 만큼의 자식을 두었다.


34세의 알바라도와 결혼할 때 그녀의 나이 14살로 전해진다. 그녀는 알바라도와의 사이에서 두 자녀를 얻었다. 그러나 알바라도는 그의 친척인 프란시스카 데 라 쿠에바(Francisca de la Cueva)와 두 번째 결혼을 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죽자 그녀의 자매와 결혼했다.


원주민 여성의 스페인 정복자들과의 결혼은 정략적일 수밖에 없었다. 말린체와 루이사도 정복자들에게 받쳐진 '선물(was presented to)'로, 혹은 부하에게 내려준 '선물'로 기록되고 있다. 즉 원주민 여성이란 정복전쟁에서 패배자가 승리자에게 받친 황금과 보석 그리고 또 다른 선물 품목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선물에 불과했던 원주민 여성들에 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서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선물로 희생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일설에 의하면 루이사 시코텐카틀은 1521년 정복자들이 틀락스칼라에 당도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금과 원주민 전사들과 함께 그녀를 코르테스에게 선물했고 코르테스는 그녀를 알바라도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쩌면 아즈텍에 대한 정보들을 제공함으로써 코르테스가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Tenōchtitlan)을 정복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한 말린체 조차도 여전히 코르테스의 뇌리에 선물로 남아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코르테스가 스페인으로 가면서 그녀를 선물할 대상으로 선택된 부하가 후안 하라미요였을지도... 당시 정복욕으로 충만한 잔혹한 콘키스타도르에게 이것은 죄의식 없이 행해진 관행이었지 싶다.


'도냐 루이사 시코텐카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후에도 나는 오랫동안 건물의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다. 1650년에 지어진 집은 복원된 이후에도 여러 차례 지진으로 크게 손상되었고 특히 1976년의 지진에서는 2층의 일부가 거리로 무너졌지만 1987년에 다시 복원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집에 남은 사진과 설명, 또 다른 식민지 기록물들을 종합하면 이 집이 2층의 식민지 시대 주거용 집의 외관을 가진 몇 안 되는 역사적 건물이지만 실제 총독의 부인이었던 루이사 시코텐카틀의 이름을 차용했을 뿐, 1537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사실이라면 루이사 시코텐카틀이 실제 살았던 집일 수는 없는 일이다.


나의 기대와는 달리 이 집이 총독과 원주민 여성의 로맨스와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식민지 도시, 안티구아의 골목과 건물들에는 이렇듯 가슴 아린 사연이 가득하다.

#말린체 #도냐루이사시코텐카틀 #안티구아 #과테말라 #모티프원


작가의 이전글 삶은 시간을 타는 서핑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