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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키와 옥수수 여성과의 파티

Ray & Monica's [en route]_305

by motif Feb 26. 2025


마야인 마틸다의 모험과 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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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1


여행하면서 가장 마음 흐뭇해지는 것은 '함께하는 분위기'와 '배려 받는 기분'이다. 홀로 고독할 수 있는 시간은 스스로를 고립시키면 되는 일이라 자신의 의지로 가능하지만 함께하는 분위기는 내 의지만으로 될 수 없는 일이라 자연스럽게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참 설레게 된다.


배려 받는 기분 또한 상대의 태도나 행위로부터 비롯된 나의 감정이므로 내가 만들 수 없는 우연한 기쁨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이 계속되다 보면 누구나 조금씩 모난 성격의 모서리가 점점 깎여나가 예상 밖의 누군가와 부딪혀도 상대에게 상처를 남기지 않는 사회성 좋은 사람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 배려 또한 많이 경험할수록 마음이 고양되고 그 일로 그날 하루 전체가 기분 좋은 날이 될 수도 있다. 이 경험의 또 다른 가치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기분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자연스럽게 유발한다는 것이다. 


#2


이 숙소의 주인, 마틸다(Matilda)는 아티틀란호수 주변 여러 마을 중의 하나인 산타 카타리나 팔로포(Santa Catarina Palopó)에서 12명의 자식을 둔 미구엘(Miguel)과 마리아(Maria) 부부의 딸로 태어났다. 호숫가의 산비탈에 집을 짓기도 마땅치 않은 곳에 만들어진 마을에서 산마루의 손바닥만 한 밭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와 베 한 필을 짜는데 여섯 달도 더 걸리는 일에 매달린 어머니의 일로는 12자녀를 굶지 않게 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었기 때문에 네다섯 살이 되면 자연스럽게 모두 자기 밥벌이는 스스로 해야 했다.


9살까지는 부모 곁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다해보았다. 청소, 빨래, 짐 지어올리기... 그러나 그 일로는 결코 자신의 미래가 엄마보다 좋아질 것 같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대처에 나가 있는 삼촌이 있었다. 삼촌이 마을에 왔을 때 제발 자신을 데려가도록 매달렸다. 그렇게 10살이 되던 해에 안티구아로 왔다. 도시에 왔지만 특별한 기술이 없는 시골 소녀가 할 일은 없었다. 삼촌은 중앙공원에서 잡화를 팔고 계셨다. 처음에는 삼촌을 따라다니며 일을 돕다가 두어 해 뒤에 자신의 일을 할 수 있었다. 


하루 종일 옷과 장신구를 이고 들고 공원을 돌면서 행상을 하기를 20년. 억척스럽게 일을 한 덕분으로 스스로 먹고살고도 고향의 부모님을 조금씩 도울 수 있게 되었다. 13년 전 그녀의 부지런함을 알아본 한 사람과 인연이 닿았다. 그는 안티구아에 집을 한 채 가지고 있었다. 스페인 어학원을 하는 사람에게 세를 주었지만 어학원을 접으려고 할 때였다. 주인은 그녀에게 그 집을 저렴한 비용으로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한 번 더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소노우버드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추세를 알고 있던 그녀는 그들을 위한 장기숙박공간으로 용도를 바꾸었다. 그리고 도로에 면한 현관에는 우이필(Huipil)을 비롯한 마야 전통의상과 장신구들을 파는 가게를 열었다. 이 가게로 인해 상품을 이고 하루 종일 공원을 누벼야 하는 육체적 고단함을 덜 수 있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소원이던 충분한 상품으로 손님들의 선택폭을 넓힐 수 있게 되었다.


숙소 운영만으로 월세를 감당할 수 있게 되었고 판매 수익은 모두 자신의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기쁜 것은 우이필이나 기념품을 만드는 고향 사람들의 상품을 팔아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제 고향 사람들은 그녀의 방문을 기다린다. 그녀가 온 것을 알면 몇 개월에 걸쳐 만든 옷들을 가지고 모인다. 마틸다는 고향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43살의 성공한 사업가가 된 것이다.


#3


며칠 전 마틸다가 아내에게 말했다.


"내게는 이 도시에서 만나 25년간 깊은 우정을 나누는 자매가 있습니다. 다음 주에 그 자매를 초대해 음식을 한 번 대접 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 단지 우리만 식사를 하기보다 이 집 사람들과 모두 함께 파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곳의 각 지역에서 오신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자매도 분명 더 기뻐하실 거예요. 민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두들 마틸다의 생각에 신이 났다. 얼마씩 추렴한 돈을 가지고 마틸다가 월터와 함께 장을 보고 크리스티나는 마당을 쓸고 탁자들을 폈다. 솜씨 좋은 루이스와 알렉스는 두 개의 바비큐 그릴을 닦고 숯을 피웠다. 두 자매도 일찍 와서 파티 음식 준비를 도왔다.


공원에서 봇짐장수를 하는 한 시골 여성과 인연을 맺어 외로움을 덜어주고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상담으로 그녀의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해주었던 초대손님은 레지스 쿠마(Regis Cuma) 씨와 그녀의 언니, 익스날(Ixnal)씨였다.


#4


마틸다는 오랫동안 인연을 이어온 다른 두 명의 마야 여성과 조카를 초대하고 미국에서 온 릭(Rick)은 이 도시에 와서 살고 있는 친구들을 초대했다. 루이스도 이 도시에 살고 계신 어머니를 초대했다. 


각자 음식 한 접시씩을 앞에 놓은 맑은 날 오후의 마당 파티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홀로 기약 없는 미국 영주권 인터뷰를 기다리는 말론도 어느 때보다 목소리가 높았다. 두 번째 접시에 열중하고 있는 월터도 '바비큐 할 때 어디 있었냐'는 짓궂은 타박에도 불구하고 함박웃음을 아끼지 않았다.


쿠마 씨는 '전통 심리학'을 전공한 마야의 영적 지도자인 마야 사제, 아흐키(Ajq'ij)이다. 지난해 11월에 처음 만난 그녀로부터 나는 마야의 영성에 대해 배우고 있다. 익스날은 '여성(ix)'과 '옥수수(nal)'를 합한 이름으로 '옥수수 여성'을 의미한다. 마야 문명의 창조 신화가 기록된 '포폴 부(Popol Vuh)'에는 '신들은 동물들이 가져온 옥수수를 사용하여 인간을 만들었고 옥수수 인간은 신을 섬기고, 신의 뜻에 따라 행동하는 완벽한 존재'로 묘사된다. 그녀는 미국 뉴올리언스의 툴란 대학(Tulane University)에서 마야어를 강의하고 있는 교수이다. 나와는 다음번 만남에서 마야어라는 언어의 지층에 함축된 마야의 정신들에 대해 얘기 나누어보기로 약속했다.


오늘의 파티를 있게 한 것은 25년간의 우정이었다. 이 파티에는 '함께하는 분위기', '배려 받는 기분'이 식탁 위 모든 곳에 촘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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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우정 #배려 #마야 #안티구아 #과테말라 #모티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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