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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갈길을 홀로 걷지만 이보다 더 행복한 적은 없었어!

Ray & Monica's [en route]_317

by motif Mar 28. 2025

안티구아의 '올라 맨(Hola Man)', 리처드


 


*은퇴한 부부가 10년 동안 나라 밖을 살아보는 삶을 실험 중이다. 이 순례 길에서 만나는 인연과 문화를 나눈다._이안수·강민지


#1


리처드(Rich Macdonald)를 만나고 싶으면 아침에 옥상으로 올라가면 된다. 그의 하루는 꿀을 곁들인 시나몬 롤(Cinnamon roll with honey) 하나에 커피 한 잔의 간단한 아침식사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가 푸에고 화산 쪽을 향해 상의를 탈의하고 앉는 것으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육신을 지탱할 간단한 식사를 하면서 노후의 면역력을 도울 비타민 D를 합성한다.


그의 식사시간에는 큰 고무나무 품에서 밤을 보낸 그래클(Grackle)들과 산비둘기들도 그가 담 위에 올려둔 먹이와 물을 교대로 먹는다. 그런 면에서 그의 식사는 홀로가 아닌 셈이다.


지난번 그가 외로움 없이 홀로 경쾌한 노년을 보내는 단출한 루틴을 소개한 글에 두어 가지 질문을 한 이가 있었다.


"홀로의 노년이 '정말' 외롭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숨겨진 비법이라도 있지 않을까요?"


누구나 결국에는 홀로의 시간을 살다가 홀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숙명인 상황에서 69살 그의 담담한 태도가 인상 깊었다. 그와 함께 지내는 동안 그런 관점에서 목도한 것만을 기록한 것이므로 그의 구체적인 개인사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의 아침 식사가 끝났겠다 싶은 시간에 위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지를 묻기 위해 옥상으로 갔다. 아침에 개인사를 질문하기에는 적절한 시간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는 기꺼이 양해해 주었다.


그가 안티구아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년 전쯤이었다. 휴가로 오가다가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고 결혼으로 이어졌다. 그의 나이 50대 중반의 초혼이었다. 그는 180여 개 국에 진출해있는 다국적 기업의 직장에서 근무하다 정년을 맞았다. 업무의 성격상 늘 옮겨 다녀야 하는 생활이었다. 유목적인 스타일이 자신의 성격에 잘 맞았지만 그의 유랑 생활을 따라줄 여성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그에게는 신체적 결함이 있었다. 19살 때 트럭에 부딪혀 오른쪽 발목이 부서지고 어깨와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목숨은 건졌지만 많은 인공보형물을 신체에 심는 것으로 기능을 복원해야 했다. 그 결과 어깨의 수평이 불가능해 팔 길이가 달라지고 다리의 기형으로 오르막을 오르기 곤란한 몸이 되었다.


그러나 안티구아에서 만난 여성은 그의 모든 단점들을 수용하는 헌신적 사랑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그런 태도가 그의 늦은 결혼을 결심하게 했다. 하지만 몇 년 동안의 결혼 생활에서 그가 해줄 수 없는 물리적인 문제들이 노정되었다. 자신과 나이 차이가 많은 부인은 등산을 좋아하고 여러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산을 오를 수 없었다. 그는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짧은 결혼생활이 마무리되고 두어 해 뒤에 정년퇴직을 했다.


이제 두루 지역을 옮겨 다녀야 하는 일도 끝난 상황에서 어디에 정착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의 고향인 미국 메인주의 가디너(Gardiner)는 겨울이 너무 길었고 또한 혹독했다. 자신의 아내를 만났던 곳이 생각났다. 그곳은 사계절이 봄인 도시였다. 결혼할 마음을 내게 했던 도시 안티구아는 그에게 기후뿐만 아니라 순하고 선한 사람들도 봄처럼 느껴지는 도시였다.


그는 이 땅에 뼈를 묻을 마음으로 미국을 떠났다. 미국을 떠나는데 일말의 미련도 없었다. 늦은 결혼에서 얻은 자식도 없었고 형제나 자매도 없었다. 생모도 5년 전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는 그의 지인들조차 모르는 출생의 비밀이 있었다.


"어머니는 10대에 나를 낳았어. 나를 낳은 즉시 친권을 포기하는 서류에 서명을 했고 내가 입양된 것은 태어난 지 몇 시간 뒤었다는군. 내 양부모는 정말 훌륭한 분이셨어. 그분들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게 해주셨지. 사냥, 낚시, 그리고 거의 모든 야외활동을 즐기도록 해주셨어. 그분들은 기독교인이었고 나는 하나님에 대해서 듣자마자 바로 그분을 믿게 되었어. 아버지는 한때 나를 '생존자(survivor)'라고 불렀지."


#2


4년 전 여행자로만 오갔던 안티구아에 도착 후 그는 바로 영주권 신청을 했다. 미국을 떠날 때 소박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한 번에 한 사람씩 변화를 일으키도록 하는 것이었어. 방법은 아주 간단해.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이었어. 그 인사만으로도 닫힌 마음을 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지. 마음이 열리면 그들에게 더 행복한 생각을 심어줄 수 있거든. 먼저 'Hola'라고 했을 뿐인데 결과는 정말 놀라웠어. 2년쯤이 지났을 때 사람들은 내가 인사하기 전에 그들이 먼저 인사를 하는 거야. 심지어 어떤 사람은 길거리 한가운데 차를 세우고 손을 흔들며 내게 'Hola'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어. 2년 반이 지났을 때 이런 시를 받았어. 단순한 친절만으로도 변화가 일어난다는 증거인 셈이지.


'안티구아의 중심부, 돌길이 만나는 곳에


리처드라는 사람이 있어요, 그의 친절은 너무나 달콤하죠.


메인 주의 추위에서 과테말라의 따뜻한 품으로,


올라 맨은 기쁨을 전하죠, 그의 발자취에 미소를 남기며.


홀라 맨, 관대한 마음으로 베푸는 이,


안티구아의 품에서 살 만한 가치로운 삶.


광대한 마음, 자유로운 영혼으로


그는 모두에게 안녕이라고 말하죠. 바다 같은 사랑을 퍼뜨리며.'"


이것이 홀로의 노년이 외롭지 않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제 한 레스토랑에서 그를 마주쳤다. 그는 그곳에서 일주일에 한 번쯤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 테이블 아래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개 한 마리가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코모'라는 그 레스토랑의 개였다. 코모는 리처드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인 것 같은 몸짓이었다.


그는 그날 밤처럼 늦은 귀갓길, 텅 빈 길을 걸어 홀로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그때의 느낌을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자갈길을 홀로 걷지만, 이보다 더 행복한 적은 없었어(I walk alone on streets of cobblestone, never been happier)."


어른은 외로움을 충만함으로 승화한 사람이 아닐까 싶다.


그가 여왕으로 섬기는 늙은 길고양이 발렌티나(Valentina)는 늘 홀로이다. 지붕 위에서도 긴 담벼락 위에서도...


●외국에서 홀로의 삶이 외롭지 않은 리처드

https://blog.naver.com/motif_1/223803199945

#외로움 #리처드 #안티구아 #과테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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