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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Jan 07. 2024

30대 워홀이 내게 남긴 것

다시금 시작해도 될까?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하고 일여 년이 지났다. 이런저런 핑계를 남기며 이 브런치 페이지를 열기까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내 30대의 마지막 워홀을 끝내고 나서야 나는 오랜만에 다시 브런치를 열 수 있었다. 내가 워홀을 하기 전 이런 마음으로 한국을 떠나 호주로 향했구나 싶어 기분이 묘해진다. 


사실 올리지 못한 글들이 서랍에 남아있었다. 올리지 못한 글들을 다시금 올리기로 마음먹을 때까지 나에게 꽤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지금에서야 글을 올릴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 나는 참 여전히 느린 사람이다 싶다.(웃음)


***


그래서 일 년간의 내 워홀이 어땠는가? 하면 이만하면 되었다 하는 마음이랄까? 20대 때의 워홀의 경험이 초반에 낯선 곳에서 자리 잡는 방법을 알려준 기반이 되어 주었고, 운이 좋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며 뜻밖의 여러 좋은 기회를 얻어 완벽하진 않지만 차근차근 돌아 지금에 올 수 있었고 나는 그동안 후회가 없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하고 돌아온 그것만으로 나는 운이 참 좋은 사람이었다. 


초기 목적이었던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느냐 하면 그건 아직도 많이 미숙하고 가야 할 길이 멀었다고 하겠지만 더 이상 영어를 내뱉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에 만족이라면 만족한달까?


"나는 외국인이니 너희가 알아들어라"


비록 완벽한 구사보다는 "Sorry?" "Come again please" (다시 한번 말해주겠니?) 이 말을 더 많이 사용하는 외국인 노동자가 되었지만(웃음) 그곳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이들과 부족하지만 소통하고 친구가 되어가는 나 자신의 모습에 이따금 놀랍기도 했다. 사실 다민족 국가인 호주에 살다 보면 영어란게 참 다양한 국가의 영어가 존재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영어에 국가가 있을까 싶지만 당장 옆 나라 일본 친구들이 사용하는 영어에 우리가 가끔 물음표를 던지듯 다양한 국가에서 모인 이들의 영어는 모두 그 나라의 언어를 닮아 있다. 결국은 언어는 서로 소통하기 위해 필요할 뿐 완벽하게 구사하면 좋겠지만 완벽하지 않다고 해서 그들과 소통이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서로의 진심을 전하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먼저 완벽히 구사하려는 내 욕심을 버렸다.


그저 그곳에서 생활하며 일상에서 쓰는 표현들을 익히고 생활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나가 있었고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한국에서 새해를 보내는 이 시점에서 돌이켜 생각해 보니 호주에서의 나의 일상은 참 단조로웠고 한편으로는 지루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그게 더 극명하게 보였다. 그럼에도 호주에서의 내 일상이 좋았던 이유는 그 일상에는 항상 여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할 게 너무 많아 이따금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지루했고 호주는 할 게 없어 오히려 여유로웠다. 마치 우리가 영상을 보기 위해 넷플릭스를 틀었지만 결국 무엇을 봐야 할지 몰라 결국 넷플릭스를 꺼버리는 것과 같이 너무 많은 선택지에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결국 시작이 어려워지는 것처럼, 한국에서의 나의 생활이 그랬던 것 같다. 반면 호주에서의 나의 생활은 늘 선택지가 적었고 그래서 늘 여유로울 수 있었다.


물론 초반에 자리 잡기 위해 여러 정보를 모아야 했고, 일을 시작하기 위해 생존 영어를 구사해야 했으며, 경력 위주의 호주 생활을 위해 이력서의 한 줄을 채워야 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호주의 하늘은 항상 파랬고 쉬는 날 버블티 한잔을 주문해서 도서관에 앉아 평온한 오후를 보내던 그런 일상이 있었다. 


어느 정도 일과 생활이 안정기로 접어들며 어쩔 땐 한국에서보다 더 많은 시간 일을 해야 했지만 일 끝나고 마시는 직장 친구와의 버블티의 달달함이 365일 중 300일이 맑은 호주의 하늘이 그런 나를 위로했다. 더 이상 폴란드에서 봤던 그 하늘은 없었지만 호주의 하늘은 그 나름대로 위안이 되었다. 


그런 위안 덕분에 나는 다시금 사랑하는 이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한국에 있을 때 난 많이 지쳐있었고 변화된 환경에 무엇을 보고 나아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었다. 호주로 떠난 것이 사실 도망이 맞을지도 모른다. 나는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현대사회와 맞지 않는 인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이게 나였다.


예전의 나는 안정적이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일상 속에서도 결국 내가 중심을 잡으면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호주에서의 경험을 통해 알았다. (실제로 의지할 때 없는 해외생활은 늘 불안정함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안정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평온과 행복이 나와 함께 했던 호주가 내게 남긴 선물 같은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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