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이제 지하철 타!”
답장이 없었다. 얼른 친구들과 헤어지고 너와 연락하고 싶었는데…. 전화를 걸었지만 한참의 연결음에도 응답이 없었다. 네가 전화를 받지 않은 건 처음이잖아.
너는 클럽에 갔다. 친구들이 노는 걸 좋아하기에 따라간 거겠지. 거기서 점잖게 앉아만 있었지만 내 전화는 받을 수 없다. 친구가 여자들을 데리고 와 춤을 췄어. 네 옆으로 온 여자와 귓속말로 대화도 했지. 여자는 얼음이 담긴 술잔을 들고 있었는데 네 목소리는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잖아. 물론 네게 반한 거야. 그 자리에서 노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단 걸 알아. 하지만 끝까지 내게 솔직하진 않겠지.
‘왜 전화 안 받아?’
‘너 뭐해?'
‘우리 만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래’
삼켰어, 난. 그 이유로 너랑 싸우거나 헤어질 자신이 없거든.
2.
만나기로 한지 한참이 지났다. 30분은 족히 넘었을 거다. 자정이 넘은 시간, 스마트폰이 꺼진 상태로 나는 3번 출구 앞에서 서성였다. 찬바람이 불었고 술에 취한 사람들이 힐끔거렸다. 일회용 충전기라도 사야 하나 둘러보는데 편의점이 멀다. 갔다가 길이 엇갈릴까봐 무서워 망부석처럼 있었다.
회식 자리를 뿌리치지 못한 거였다. 이해해. 하지만 왜 너는 여자 동료들의 접시에 음식을 계속 썰어서 올려주고, 국물을 덜어주고, 휴지를 챙겨주는 거야? 먹으면 또 채워주고, 숟가락 떨어뜨리면 꺼내서 앞에 놔줬어. 택시도 꼭 다들 타는 걸 봐야 해. 택시 한 대도 잘 안 잡히는 거리에서 모두가 택시를 탈 때까지 넌 발걸음을 떼지 않았지. 그러는 동안 난 추위에 떨고 있었는데….
3.
우린 자기 전이면 통화를 해. 10분은 떠들다 “많이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야 잠에 들지. 하루는 낮까지 쌩쌩하던 너는 밤 11시가 돼서야 집에 들어가더니 갑자기 몸살 기운이 있대. 열이 나니 일찍 자야겠다는 말을 남기곤 그 이후 내 연락에 답하지 않았어. 아픈데 옆에 있어줄 수 없는 상황이라 난 속상했지. 해열제도 선물했어. 그런데 그 날도 넌 날 속였더구나.
처음엔 옆집 사는 친구와 담배를 한 대 태우려 만났지. 얼굴 보니 술 한 잔 하고 싶었을 거고 또 근처에 있던 친구들을 불러 모았구나. 넌 술도 참 못 마시면서 술자리를 좋아해. 그리고 그 자리엔 꼭 여자들이 있고 그들 중 널 좋아하는 사람이 있지. 넌 “나를 좋아했는지 몰랐다”고 하지만 저렇게 티내는데 어떻게 모르니. 그들은 내가 모르는 너를 알아. 족히 5년은 넘은 친구들이니까. 넌 그들에게 또 수없이 질문하지. 오늘 일은 안 힘들었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그때 했던 소개팅은 잘 됐는지, 그 사람 속도 모르고 묻겠지.
종종 나는 내가 너와 사귄다 착각을 하나 싶어. 함께 있을 때의 너는 내가 없으면 못 살 것 같은 사람인데, 떨어지기만 하면 난 널 믿을 수가 없다. 그래서 계속 붙어 있으면 또 피곤해보여. 지겨워 보인다고. 어떻게 해야 하니. 내가 더 큰 상처를 받기 전에 여기서 그만둬야 하는 걸까. (생각이, 아니 망상과 방어기제가 자기들끼리 얽히고설킨다.)
1-1.
넌 내 부재중 이후 10분도 지나지 않아 내게 전화했다.
“미안해. 피곤해서 나도 모르게 잠들었어. 집에 들어가고 있어? 보고싶다.”
2-1.
뒤도 안 돌아보고 동료들과 헤어진 후 출구에서 나를 찾았다. 알고 보니 서로 잘못 이해하고 다른 지하철역에서 기다렸지. 한참을 걱정하며 돌아다니던 너는 나를 발견하고는 안도의 숨만 내쉬었다. “만나서 다행이다. 안 추웠어?” 그 늦은 시각, 너의 집에서 더 가까운 위치에서 굳이 또 우리집까지 데려다주고 너는 집에 갔다.
3-1.
다음날 너는 일어나서 내가 보낸 선물을 보고는 감동받았지. 몸은 낫지 않았어. 앓는 얘기 안 하는 네가 열이 난단 이야길 한 건 너도 내게 기댄다는 의미였더라. 난 한달음에 네게 달려가 끓는 몸을 끌어안았어.
어느덧 불안은 내게 습관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불안을 만들어내고 있다.
난 언제쯤 네게 사랑한다 말할 수 있을까?
이 불안을 혼자 감당할 수 있을 때쯤 널 사랑할 자격이 생길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