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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Aug 16. 2023

술 먹고 말로 사람 죽이는 시댁

저녁 6시만 되면 생기는 일




그렇게 일사천리로 우리는 만난 지 1년이 안 되어 결혼했다. 연애할 때도 싸움이라 할 만한 언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소소하게 티격태격은 했어도 서로 괴성을 지른다거나 며칠 동안 연락을 안 하고 잠수를 탄다거나 했던 적은 없었다. 그야말로 밀고 당기는 기술 하나 사용하지 않고 우리는 안정감 있게 연애했다.


나는 이 남자가 다른 남자와는 다른, 나에게 주는 안정과 무한 신뢰 때문에 결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집은 어떻게 마련할 건지, 가진 돈은 얼마나 있는지 등 민감할 수 있는, 하지만 꼭 알아야 하기도 하는 것들에 대해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선택하는 남자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한 달 만에 유산을 했다. 행복해도 모자랄 시간에 유산을 하여 수개월을 우울하게 보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에게 티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신혼 생활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 시댁은 걸어서 15-20분 거리에 살고 있었다. 남편은 형제 중 맏형으로 집안의 장남이었다. 남편의 둘째 동생은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가 있었고 셋째 동생은 미혼이었다.


남편은 을 좋아했다. 나는 술이라면 진절머리를 칠 정도로 싫어했다. 술은 내가 결혼할 때 미처 심각하게 판단하지 못한 나의 가장 큰 실수였다.


적당히 싫어해도 싫을 텐데 나는 술 마시고 주정 부리는 사람을 아주 싫어했고, 남편은 소주를 한 자리에서 4병은 마실 정도로 좋아했다.


거기다 그 집안의 삼 형제는 모이기만 하면 술이었다. 삼 형제만 그랬다면 차라리 다행이게? 아버님, 어머님을 비롯해 온 집안 식구들이 다 술을 즐겼고 특히 삼 형제와 아버님은 보통날, 소주 4병 마시는 남편보다 더한 애주가였다.


 집안의 모임은 항상 저녁 6시 이후에 이루어졌다. 점심에 만난 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없다. 그 이유는 그날은 술을 마음껏 먹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나도 별생각 없이 따라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과의 사이가 돈독했고 술이 우리 결혼 생활에서 이혼까지 거론될 만큼 장애물이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술을 먹으면 시댁 식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가뜩이나 딸을 키워본 적이 없는 시부모님의 딱딱한 성격에 적응이 안 되던 참인데 술만 먹으면 시아버님은 나에게 잔소리를 퍼붓기 시작했다.


마시면 마실수록, 잔소리로 시작해서 상처가 되는 말까지 강도가 세졌다. 나만 제정신이고 모든 가족이 술에 취해 있었다. 가끔은 어머니께서도 술을 드시지는 않지만, 우리 어머님과 아버님은 잉꼬부부 중의 잉꼬부부인지라 술 드신 아버님이 돌보고 금이라고 해도' 맞는 말이오'라고 맞장구 쳐주시는 분이셨다. 그래서 술을 드시지 않는 날에도 어머님은 그다지 나에게 구원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다.


아버님은 나에게 ‘전화를 자주 안 하는 것이 괘씸하다, 매일 전화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와라, 취미생활은 남편이 하는 것으로 같이 해라, 동서에게도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해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등 쉽게 지킬 수 없는 것들을 당부가 아닌 명령조로 이야기하셨다.


나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처음부터 미움받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순종적인 태도로 예의를 갖춰 최대한 아버님의 말씀을 들어드리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서 벗어나 집에 돌아와 생각해 보면  마음속에서 천불 끓어오르 시작했다.


저 인간은 도대체 저렇게 얘기하는 본인 아버지에게 왜 한 마디도 못하는 거야?.’
‘아닌 건 아닌 거잖아? 본인이 실드 쳐줘야 하는 거 아니야?’


시댁에 다녀온 날이면 점점 분노와 짜증을 감추기가 힘들었고 남편은 나의 눈치를 보며 말을 건네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는 상황에서 이제는 정말 괜찮은 척 연기조차 할 수 없었다. 참을 만큼 참아봤지만 점점 인내심이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아버님이  드시고 나에게 말씀한신 것들에 대해 남편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때마다 우리 아빠가 진짜 그랬냐는 의심 가득한 표정으로 대충 고개를 흔들거리며 알았다고, 다음엔 그러지 말라고 아버님께 전달하겠다고 말했고, 나도 한 편으로는 너무 미안하고 찝찝했지만 그래도 남편의 말을 바보같이 믿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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