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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소 Aug 16. 2023

술에 취해 새벽에 전화하는 시아버지

뛰는 시아버지 위에 나는 시어머니




유산 후 8개월 만에 나는 다시 임신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유산했던 사건이 나보고 이혼하고 탈출하라는 신호였나라고 생각해 본 적도 있었다.


임산부가 되니 나는 더욱 예민해졌다. 시댁에 자주 가야 하는 것이 싫었고 남편에게도 슬슬 티를 내기 시작했다. 배부른 며느리를 왜 자꾸 오라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임신했을 때만 해도 최대한 시댁의 의견에 맞춰 주려고 노력했다.  취한 아버님이 삿대질을 하시며 별의별 소리를 다하셔도 꾹 참고 들어야만 했다. 1절, 2절, 3절... 듣다 보면 아버님은 담배를 태우러 잠시 자리를 비우셨고 그때가 집에 갈 수 있는 절호의 타이밍이었다.


부랴부랴 빽빽 울어대는 갓난아기를 안고 시댁에서 나와 술에 취한 남편을 차 뒷좌석에 던져 버리고 이마에 식은땀을 한 바가지씩 흘리며 운전을 해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 다반사였다. 


나는 시댁의 감정 쓰레기통이자 남편의 대리기사였다.


남편에 대한 안 좋은 감정이 처럼 쌓여갔고 시댁에 가고 싶지 않은 의견을 점점 강하게 어필했으나 남편은 시부모님께 선뜻 오늘은 일이 있어 못 갈 것 같다고 둘러 말하는 것조차 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여러 순간 나는 시아버지가 술에 취해 실수하는 모습들을 계속 보고 들어야 했고 온전히 맨 정신으로 보고 듣고 당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이 너무 괴로웠다. 술 마신 다음 ,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행동하는 시아버지의 모습이 더욱 치가 떨렸다.


아버님께서는 늘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 난 기억이 안 난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


스트레스가 쌓여 남편과 얼굴만 마주쳐도 화딱지가 나는 것이 일상이 됐고 어느 날은 시부모님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남편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 술에 취한 남편을 미친 여자처럼 사정없이 때리며 혼자 늑대처럼 울부짖기도 했다.


와이프가 그렇게 많이 울고불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음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내 마음을 철저히 무시했고 공감해주지 않았다. 시댁에 가서 나를 위한 방패막이가 되어 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느 날은 내가 장염에 걸려 남편 혼자 시댁에 갔다. 갓 태어난 아이도 있었고 아이도 감기로 열이 39도까지 오르락내리락했다. 새벽 12시쯤 아버님에게 전화가 왔다.

 나는 오늘만큼은 ‘아픈데 좀 쉴게요 죄송합니다.’라는 마음으로 전화를 받지 않았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계속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10분 정도 있다가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10통쯤 와있었고 이어 바로 남편에게 전화 왔다.


"방금 아빠가 전화하셨는데 몰랐어?"
"자기야, 나 아파서 잔다고 했잖아~"


옆에서 뭐라 뭐라 하시는 아버님 목소리가 들렸다. 남편의 전화를 뺏으신 아버님은 술에 잔뜩 취한 목소리로 ‘네가 전화를 안 받아 서운하다 어쩐다, 일부러 안 받은 거냐.’며 나를 다그치기 시작했다. 이 소란에 잠이 깬 아픈 아이를 달래 가며 아픈 나의 배까지 부여잡고 아니라고, 아니라고 흐느끼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해야 했다.


다음 날,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일어나 아침밥을 드시는 남편을 보니 순간적으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새벽에 며느리랑 손주가 아픈데 술에 취해서 전화하는 거 어떻게 생각해?"
"안 되는 거지...."

"그럼 새벽에 전화하시지 말라고 지금 전화드릴 수 있지?"

"......."


역시 그의 짧고 성의 없는 대답에 나는 처음으로 강한 용기가 불끈 솟아올랐다.


"그래? 알았어."


나는 곧바로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는 어머니께,


"어제 새벽에 아버님이 전화하셨던데 알고 계셨어요?"
라고 물었다.
"옆에 있었는데? 왜?"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정말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그게 뭐 어때서?.’라는 식으로 대답하는 목소리에 소름이 돋았다.


"어머니, 아버님이 전화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제가 많이 아팠거든요."
"꼭 특별한 이유가 있어야 전화해야 되는 거니? 안부 전화는 할 수 있잖아? 너는 너희 엄마한테도 이렇게 말하니?"


여기서 친정엄마를 걸고 넘어 지다니, 결국 꼭지가 돌고 말았다.


‘어머니, 지금 나한테 큰 실수 하신 것 같네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나는 아주 차분하게, 하지만 평소와는 분명히 다른 강한 어조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어머니, 저희 엄마는 새벽에 전화하지 않으시고요,! 더군다나 딸과 손주가 아프다는데 새벽에 안부 전화를 하실 분은 아니거든요? 안부 전화는 낮에도 할 수 있는 거고, 아무 일 없는데 술에 취해서 새벽에 아픈 사람한테 10통씩 전화하는 건 비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앞으로는 새벽에는 전화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머 얘 좀 봐? 누구보고 비상식이네 마네 해? 너 진짜 웃긴다. 얘,~~너는 위아래도 없니? 너는 참 아량이 없구나? 시부모가 아침에 전화를 하던 새벽에 전화를 하던 언제든지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샬라샬라...."


"뚝"


나는 시어머니가 말하고 계시는 중간에 전화를 끊었다.


심장이 또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쫄보인 나는 통쾌함과 동시에 목이 졸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어머님한테 할 말 다 했는데 저 효자는 분명 이혼하자고 하겠지? 그러든가 말든가.'


나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에 구운 오징어처럼 쪼그라들었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대들어 본 적이 없는 소심한 사람이었기에 안 그래도 자기 가족이라면 끔찍한 저 남자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이 정도 했으면 나랑 이혼하자고 하겠지?’


남편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굳어 있었고 우리는 며칠 동안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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