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강원도에 약간의 땅을 매매하셨다. 자녀들에게 시골체험을 해줌과 동시에 시골에서 자란 아빠의 취미생활을 위해서였다.
아빠는 금요일 퇴근 후 우리 가족을 태우고 강원도로 다시 출근을 한 셈이다. 그리고 일요일 밤에 돌아온다.
강원도에 가면 허름한 옛날 집이 있었다. 집 앞에는 소를 키우던 외양간이 작게 있었는데 거기에 텐트를 치기도 하고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오래된 한옥 방에서 촛불을 켜놓고 잠을 자기도 했다.
지금 내 나이, 40대 초반에 주말농장을 시작하신 젊은 아빠는 지금 칠순이 다 되어가는 연세에도 땅의 절반을 가지고 계시고(반은 매매함) 현재도 작게나마 텃밭을 운영하고 계신다.
거기에 첫 손녀가 태어난 후로 아빠는 더욱 부지런히 텃밭을 운영할 정당한 이유가 생겼다. 사 먹는 것보다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무농약 채소들을 하나밖에 없는 손녀에게 공급해 주기 위해서이다.
아빠는 농사를 짓다가 풀에 베여 팔다리에 자잘한 상처를 입기도 하고 얼굴이 새까맣게 타서 현재 연세보다 더 늙어 보이기도 하시며 가끔은 벌레에 물려 온갖 연고들을 덕지덕지 바르기도 하신다.
"사 먹으면 되니까 힘들게 농사짓지 마~" "괜찮아. 아빠는 너희들 먹는 거 보는 게 낙이야~"
요즘에는 고구마 농사를 짓고 계신데 우리 딸이 할아버지가 농사짓고 할머니가 반찬으로 만들어 주시는 고구마줄기를 너무 잘 먹어서 그 힘든 고구마줄기를 직접 벗겨 손녀딸 반찬으로 갖다 주시느라 정신이 없으시다. 여기서 손녀가 끝이 아니다.
아빠의 형제들, 엄마의 형제들의 고구마줄기까지 전부 벗겨 실어 나르는, 사서 고생을 하고 계신다. 그런데 아빠의 표정은 너무 행복해 보인다. 아빠가 농사지은 것을 가족들이 먹는 것이 행복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생활비까지 아낄 수 있지 않냐며 허허 웃으신다. 그래서 아빠의 손톱은 항상 때가 낀 것처럼 시커멓다.
요즘 여름은 또 얼마나 더운데, 폭염일 때도 밭에 가시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진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지만 아빠에게는 그것이 낙이고 행복임을 알기에 잔소리만 살짝 곁들이며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웬만한 채소는 거의 아빠를 통해 공급받고 있어서 사실 채소와 반찬값이 세이브되고 있긴 하다. 아빠가 농사지으신 채소를 엄마가 양념해서 반찬으로 공급해 주시기 때문이다.
아빠의 즐거운 취미생활로 인해 고물가시대에 채소값을 세이브하고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할 일임이 분명하다.
하루만에 반토막나는 고구마줄기
가끔은 그냥 사 먹지 뭘 힘들게 농사까지 지으시나 이해가 안 되기도 하지만,
"할아버지가 주신 고구마줄기는 최고 맛있어요!"
"할아버지가 주신 호박무침은 너무 맛있어요!"
하며 재잘대는 손녀를 바라보는 '할아버지 아빠'의 행복 미소를 나는 보았기 때문에 코 끝이 찡~하게 매울 뿐이다.
넉넉한 돈은 없어도 소소한 행복으로 살아가는 우리 친정 부모님.
그 작은 농장이 늙으신 우리 아빠에게 언제까지나 행복한 텃밭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전 돌아가신, 나에게는 없는 할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내 딸은 누릴 수 있음에 참 부럽기도 하고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