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나의 숲 05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원회귀 Mar 06. 2023

내가 작품이 된 시간(+4day)

행복은 뜻하지 않았기에 풍성해진다.

미술관인 줄 알고 갔는데 미술관이 아니다!




같은 해안로지만 좀 더 멀리까지 걷기로 하고 지도를 살피는데, 원래 걷던 길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미술관이 있다. 주변에 미술관을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는데 이렇게 미술관을 발견하다니 기쁘다. 어떤 곳인가 검색을 하니 그림을 그리는 미술관이라는 설명이 뜬다. 사람들이 올려둔 사진들을 보니 바다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마음에 쏙 든다. 5회권으로 결재 완료. 매주 한 번씩 미술관을 가로 한다.


어느새 익숙한 길이 된 마을 골목길과 해안로 아는 이 만난 듯 반갑다. 익숙한 길이라 그런지 천천히 같은 보폭으로 걷는 것 같은데도 속도가 붙는 느낌이다. 낯섦으로 여기저기 살피고 구석구석 바닷가까지 내려가 기웃거려 보던 곳들을 스쳐간다. 신선하고 아름다웠던 풍경이 익숙해지니 이제서야 고즈넉한 마을의 정다움이 보인다. '맑게 지저귀는 새소리가 이렇게 경쾌했구나.', '미풍 속 공기가 이렇게 포근했구나.', '잔잔한 바닷소리는 이런 깨끗함이었구나.'가 와닿는다.


한참을 걷다 보니 버스정류장이 보이면서 새로운 소담한 마이 눈에 들어온다. 평일치고는 많은 것 같은 여행객들이 성처럼 보이는 높은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성곽 안에 내가 그토록 찾던 한가득 유채꽃이다. 유채꽃을 안은 성곽이라니 뜻밖의 이색적인 풍경은 계획하고 보게 되는 풍경보다 훨씬 풍만한 감동을 준다.

 

예약 시각에 맞춰 도착한 미술관은 조금 의아스럽다. 미술작품이 하나도 없다. 예상과 다르다. 소규모라도 미술작품도 볼 수 있고 그림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예상했는데 그냥 화실이다. 어쨌든 공간이 주는 느낌은 좋으니 만족하며 그림 그릴 자리를 선택해 본다. 아늑한 밭이 보이는 쪽과 바다가 보이는 쪽이 있다. 연스럽게 바다가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직원의 설명이 끝나고, 이젤 앞에 앉아 밑그림만 그려진 캔버스 한동안 보고만 있다. 이렇게 물감을 주재료로 그림을 그려본 게 언제였는지, 익숙한 재료지만 붓을 든 내 손끝에는 낯섦이 뚝뚝 떨어진다. 얼마 전 이사를 한 친구가 생각나서 해바라기 밑그림을 골랐다. '정말 정성을 다해 그려서 선물해야지.' 거창한 목표를 안고 조심스럽게 붓질을 시작한다.


중간중간 바다를 보며 한숨 돌리기도 하면서 정해진 2시간보다 1시간이 더 걸려 작품 완성. 손님이 나밖에 없어서 개인 화실이 된 공간 속에서 통창 너 바다를 보며 이젤 앞에서 그림을 그리는 모나의 시간과 나의 존재가 그대로 그림이 되어 작품이 된 기분이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내 전신 모습이 들어간 사진을 직원에게 부탁까지 해서 찍는다.


역시 초집중 노력을 해도 대충 한 재능 넘어설 수는 없는 거라며 내 노력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는 내 서재에 걸어두기로 결심한다. 색칠하는 재능은 없는 것으로 인정하고 다음 주에는 백드롭페인팅에 도전해봐야지 싶다.


숙소로 돌아와 오늘 방문한 미술관을 다시 검색한다. 이번에는 자세히 읽고 정보를 조금 더 뒤적여본다. 이름은 미술관인데 드로잉카페란다. 음료 메뉴판도 있었는데 카페에서 그림만 그렸다. 라떼는 이런 곳이 없었는데... ... .




걸을 때는 걷기만, 그릴 때 그기만 하는 투명한 하루사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