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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나의 숲 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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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원회귀 Mar 07. 2023

인생커피(+5day)

어느 날 신기루인 줄 알았던 오아시스가 나타나기도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부터 스피커를 켜는 것도 따뜻한 차 한잔을 위해 전기포트에 물을 올리는 것도 모든 것이 성가시다.

 



숙면하고 심지어 알람보다 먼저 눈이 번쩍, 정신까지 바로 스위치가 켜진다. 그리고 동시에 우울감이 거대한 파도처럼 순식간에 밀려다. 한순간이다. 머릿속이 뒤엉켜 개를 들 수 없다. 그냥 불현듯 찾아오는 감정의 허우적임이다. 온몸이 중력에 무기력하게 끌려들어는 것을 그대로 둔다. 한참을,


'희야'와 마주 앉는다. 너도 나도 그대로 존재하고만 있다. 창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름 괜찮아 보이기까지 하는 해바라기 작품이 환한 햇살을 등지고 존재한다. '저 정도면 볼매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데, 얼마 전 TV에서 봤던 센트 반 고흐 이야기가 친다.


외로웠던 고흐는 고갱을 애타게 기다리며  환영의 선물로 해바라기를 그려 그의 방을 꾸며줬다고 한다. 상대의 마음이야 어찌 되었든 고흐는 행복한 마음으로 해바라기를 그렸겠지?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의 실타래는 고흐가 자살을 선택하는 장면으로 점프한다.


더 이상 동생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자살을 하러 가는 고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총을 쏘는 순간 해방이라 웃었을 것만 같은데 죽지 않았음을 알았을 때는 이런 것조차 실패한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하고 쓸모없다 느꼈을까? 피를 흘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은 얼마나 멀고 길게만 느껴졌을까? 그럼에도 존재해 주기만을 바라던 형이 자살을 선택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테오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고흐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동생 테오의 삶에서 형은 어떤 의미였을까!


동생의 짐이라 생각한 고흐의 존재는 테오에게는 자신이 돌보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형이 있었기에 강한 의지로 버텨진 아니었을까? 버팀의 끈이 끊어진 순간 테오도 삶의 의지가 끊긴 게 아닐까? 생각의 고리는 TV 속 해석과 뒤엉켜 편향된 나의 시각으로 각색되어 애잔하게 서로가 가엽기만 하다.


다시 '희야'와 마주한다. 첫눈에 반했을 때는 분명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마주한 '희야'는 고개를 90도로 꺾은 채 나를 맞이했다. 그냥 '그렇구나!' 하며  햇빛 반대방향으로 두면 다시 세워지지 않을까 싶어 풍성한 꽃뭉치의 방향만 바꿔준 상태다. 오늘도 고개를 90도 꺾고 있다. 오늘은 거슬린다. 보기 싫다.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고개를 바르게 세워준다. 손으로 꽃대를 잡은 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떻게 할까 고민한다. 나름 적당한 막대모양을 찾아서 꽃대에 지지대로 받친다. 만족하며 다시 의자에 앉아 '희야'와 마주 앉는다. 그새를 못 참고 고개를 45도  꺾는다. 꽃대 세우기를 2번 더 반복한다. 결국 '90도가 아닌 게 어디냐?' 하며 45도에서 타협한다.


두 주먹 크기의 풍성한 꽃뭉치와 방안 가득한 향기로 존재감 확실히 각인시키는 '희야'지만 자기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한다. 수십 송이의 꽃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한껏 보여주건만 아름다움 더하기 아름다움은 불균형이다. 쓰러진 꽃대로 인해 싱싱함 가득한 줄기와 잎도 균형을 잃고 휘어졌다. 꽃의 삶에서 향기도 모양도 뭐 하나 빠짐없어 보이는 '희야'는 균형미를 잃고 막대에 의지한 채 그럼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듯 힘이 한가득 들어가 있다. 무슨 일 있었냐는 듯한 뭔가가 "나" 같다.


해가 중천이다. 오늘은 가볍게 동네를 배회하고 찜 해뒀던 로스터리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는 것으로 갈무리해야지 싶다.


잠시 마실 나오는 거라 가볍게 입고 나왔는데도 덥다. 예상보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카페의 문을 여는 순간 '여긴 진짜구나.'라는  느낌이 온 감각으로 전해진다. 빵을 판매하는 카페에서는 웬만해서는 드립커피를 주문하지 않는다. 강한 빵냄새에 커피 향은 묻히고 무슨 맛인지 알 수 없으니 기승전 라떼를 주문한다. 그런데 이곳은 빵이 없다. 커피 중심의 음료만 판매한다. 그리고 '뜨거운 커피는 테이크아웃이 되지 않는다.'는 문구. 한여름에도 커피잔에 담긴 뜨거운 커피를 고집하는 나의 취향에 이보다 더 완벽한 카페를 만난 적 없다.


창가 자리가 있지만 이번엔  폭신한 소파 자리가 끌린다. 살짝 더운 기운에  땀이 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뜨거운 커피를 기다린다. 섬세한 손끝에서 시작된 드립커피는 바리스타의 시음으로 마무리되어 군더더기 없는 세팅으로 내 앞에 놓인다. '그날의 원두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질 수 있는데 천천히 마셔보길 권한다.'는 설명을 듣고 '마지막 한 모금은 충분히 식은 후 마셔봐야겠구나.' 생각하며 한 모금 마신다.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테이블 옆에 놓여있는 책 한 권을 들춰본다. 여행사진을 엮은 책이다. 커피 한 모금에 사진에 담긴 짧지만 사색적인 문구 한 구절이 절묘하다. 그렇게 책 한 권을 천천히 읽고 덮는 순간 커피도 마지막 한 모금이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부드러운 산미로 마무리된 오늘의 커피는 인생커피다.


비워진 커피잔을 보며 바로 일어서는 건 예의 같지 않아 책의 마지막 에필로그를 다시   읽는데 찡하고 울린다. 소파에서 일어나는 순간 나의 우울함은 온데간데없다. 커피만 마시고 돌아올 생각이었는데 간사하기 그지없는 나의 마음은 이리도 쉽게 뒤집어져 의욕이 생긴다. 해안가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시각이면  썰물 시간이라 드넓은 해변을 볼 수 있으니 날씨도 좋은데 맨발로 해안을 거닐어야겠다.




우울함에 허우적거리 하루사리가 한 뼘의 오아시스를 만난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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