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걷는다. 현무암으로 쌓아 올린 낮은 돌담을 따라 붉은 흙길을 걷는다. 울창한 숲 속 오솔길을 걷는다.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사그작사그작 작은 돌들이 내 발 밑에서 존재함을 알린다. 사그작 소리에 아래로 향했던 나의 시선은 풀잎을 따라,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뻗은 나무의 가지를 따라, 모든 생명이 하나 되어 바람에 흔들리는 숨결을 따라 하늘로 향한다. 자연스럽게 멈춰 서서 눈을 감는다. 이 편안함이 너무 포근해서 코끝이 찡해짐을 느끼고 눈을 뜬다. 간간이 보이는 사람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며 사뿐히 사뿐히 내딛는다. 이 공간에 오래 머물고 싶다.
중간중간 돌의자가 보이면 앉아서 모든 식물이 하나 되어 엉퀴고 어우러진 숲 속에 한 번, 울창한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어 더 반짝이는 햇살에 한 번, 코끝 찡한 울림에 한 번 마음을 살피고 걸음을 다시 내디뎌 본다. 문득, 한없이 걸어도 좋을 이 길을 누군가와 함께 걸으면 어떨까 싶다. 맑은 새소리의 지저귐과 살아있는 것들의 바람결을 BGM으로 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서로의 마음에 집중하며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사그작 거리는 발소리로 대화하며 함께 걷고 싶어진다.
평온함에 마음이 어루만져질수록 코끝 찡해지며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순간의 기억에 의지하며 되돌아가고 또 되돌아가며 놓아지지 않았던 마음, 천천히 잘 다독여서 하나씩 하나씩 인사한 후 모두 놓아주는게 이별인 줄 알았는데, '처음부터 모두 놓아진다는 건 가능하지 않았던게 아닐까? 그대로 받아들이고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어도 스스로의 힘으로 굳건히 살아가지게 되는 순간이 이별의 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한산한 듯 했던 나의 길은 조금씩 사람들의 분주한 움직임과 목소리로 채워진다. 시간이 촉박한지 빠르게 걷거나 운동하듯 힘 있게 걷는 이들을 만나면 가장자리에 서서 길을 비켜주고, 어쩌다 보폭이 비슷하고 느리게 걷는 이들을 만나면 오랫동안 걸음을 멈춘 후 거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점점 사람들이 늘어나니 비켜주는 것도 멈춰서는 것도 의미가 없다. 멈춰서 있으면 그 뒤로 또 다른 일행들이 다가오고, 앉아서 기다리면 그 옆에 누군가가 앉아 휴식하며 일행과 담소를 나눈다. 그들의 집안 사정도 다양한 여행경험도 이 공간에 대한 폭넓은 지식도 듣고 싶지는 않다. 나를 위한 다정함이 아니라면 차라리 오롯이 혼자서만 거닐고 싶은 이 길을 인적이 없을 때 다시 와야겠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한숨 돌리며 멈춰졌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한다. 비긴어게인 노래 모음곡 중에서 가사와 무관하게 제목만으로 충분한 노래가 시작된다.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AKM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