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포근하다. 바람도 살랑살랑, 바다도 잔잔,구름과 미세먼지만 아니면 따사로운 봄기운에 마음도 보들보들하련만 아쉽다.월요일, 나름의 경보로 드로잉카페로 향하는 발걸음에 힘이 있다.
날씨 탓인지 요일 탓인지 여행객이 간혹보일 뿐이다. 아름다움을 감춘 해변이지만 함박웃음으로 사진을 찍는 친구들을 보며 무심한 듯 스쳐가는 내 모습은 더 이상 새로운 여행지를 맞이하는 설렘을 품은 여행객이 아닌듯하다. 현지인에게는 딱 봐도 여행객, 여행객들에겐 뭔지 모르게 익숙해 보이는 행인. 현지인과 여행객의 교집합 같기도, 현지인에도 여행객에도 포함되지 않는 그 외 같기도 하다.
생각처럼은 아니지만 마음에 드는 작품을 손에 들고 한껏 흥겹게 돌아오는 길에유채색닮은 카페로 들어선다.세 번째 방문이라 그런지 한결같이 무덤덤하던 사장님의 목소리에 반가움이 슬쩍 묻어있는 건 내 착각일 수 있겠지만 편하다.2층에 자리를 잡은 후 달콤한 쿠키 한 조각을 물고 바다를 보며 멍에 빠진다. 햇살 가득한 맑고 진한 바다가 하늘과의 경계가 똑떨어지는 명쾌함을 보여줬다면,오늘은 물색의 바다와 뿌연 하늘의 경계가 모호하다.
새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간다. 바다 위를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하늘 위를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새는 그냥 날고 있을 뿐인데 나의 시선을 기준으로 바다 위에 새가 보이면 바다 위를 나는 새, 하늘 위에 새가 보이면 하늘 위를 나는 새가 된다. 오늘처럼 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모호한 날, 그 경계 위를 나는 새는 바다 위를 나는 건지 하늘 위를 나는 건지 단정할 수 없다. '바다 위를 난다.'라고 한들, '하늘 위를 난다.'라고 한들 새는 상관도 없을 텐데.바다와 하늘의 경계가 분명한 날이든 모호한 날이든 새는 제 갈길 가고 없는데, 내가 뭔 상관이라고 심각하다.
워라밸을 외치며 집에서 직장 관련 생각을 하면 의도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딱히 개인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아닌데 무턱대고 억울했다. 직장에서 불가피하게 사적인 일을 처리하거나통화를 할 때면 근무태만 같은 불편함에 유난스럽게 스스로에게 눈치를 주곤 했다.하루의 삶에서, 길게는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인으로서의 영역은 내 영역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던듯하다.직장 관련 일이든 개인 일이든 어차피 모두 내가 해야 하는 몫이고, 언제 어디서 그 일을 하든 하게 되어 있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