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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Apr 04. 2024

떠나가네

날마다 상여도 없이


저놈의 꽃들 또 피었네

먼저 핀 꽃들 지기 시작하네

나는 피는 꽃 안 보려고

해뜨기 전에 집 나가고,

해 지기 전엔 안 돌아오는데,

나는 죽는 꼴 보기 싫어

개도 금붕어도 안 키우는데,

나는 활짝 핀 저 꽃들 싫어

저 꽃들 지는 꼴 정말 못 보겠네

날마다 부고도 없이 떠나는 꽃들,

날마다 상여도 없이 떠나가는 꽃들      


이성복 詩  <날마다 상여도 없이>




결국 다시 봄꽃을 마주한다. 작년, 이별을 아쉬워했던 것이 무색하다. 어김없이 고 또 어김없이 진다. 꽃은 그저 피고  뿐인데 시인은 그것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이었던가 보다. 꽃이 죽는 것을 보기 싫다 한다. 그래, 이 세상에 영원한 건 없지만 흐드러져서 더 서러운 것들이 있다.


계절들 중에 유독 봄은 악취미를 가졌다. 꼭 져야만 하는 꽃들을 등불처럼 매달아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또 금방 떠난다. 부고도 상여도 없이 떠나는 꽃들이 누군가에겐 생채기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예고한 이별이 더 오래 아픈 것처럼.


사람은 태어난 계절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봄에 태어난 사람, 겨울에 태어난 사람의 성격은 다르다. 그런데 생을 마감하는 계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나니, 봄에 떠나는 사람은 봄을 닮았다. 겨울에 떠나는 이가 겨울을 닮은 것처럼.


이모가 돌아가셔서 장례식에 다녀왔다. 봄을 닮은 이모다. 봄햇살처럼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또 봄꽃을 시샘하는 바람처럼 생이 매워 울기도 했다. 한 달 전 통화에서도 몸은 아팠지만, 새봄에 하고 싶은 일들을 첫사랑에 빠진 소녀처럼 내게 쏟아냈었다. 그리고 즐겁게 웃었다. 꼭 그럴 수 있을 거라고 메아리 없는 외침처럼 대답하면서도 마음 한편은 무거웠다.


겨울을 닮은 내 엄마가 서슬 퍼런 한겨울에 떠난 것처럼 자기를 똑 닮은 계절인 봄에 이모는 떠났다. 순한 사람은 순하게 떠난다. 봄꽃이 흐드러진 날, 날리는 꽃잎처럼 가볍게 떠났다. 생을 놓고 떠나야 하는 마음이 가벼울리야 없겠지만, 오래 우울한 법이 없는 이모다운 죽음이었다. 그래서 남은 이들은 더 서럽다. 생명의 덧없음이 꽃이라지만, 세상에 생명을 나눈 것들 중에 덧없지 않은 죽음이란 것이 있을까. 부고와 꽃상여가 있어도 서럽기는 매한가지고, 지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는 일, 괜찮아지기 위해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이 있다. 인생이란 그렇게 시간의 틈에 쌓인 것이 조금씩 떠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만남은 마침내 이별에 다다른다. 떠나가는 봄꽃들처럼.


#이성복 # 날마다 상여도 없이 #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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