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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광쌤 Aug 16. 2022

왕비가 되고 싶다!

조선왕조실록 비운의 왕비

광복절 휴일이지만 37도의 무더와 장거리 출퇴근에 시달려서 하루의 고단함이 온몸을 짓누르는 시간이다. 납덩이를 매단 것 같은 몸뚱이를 이끌며 집으로 오면서도 '뭐 먹지, 뭐가 있지?'를 주문처럼 외는 나는야, 대한민국의 워킹맘이다. 게다가 '말복'이 겹쳐진 오늘인지라 한 시간 이상 끓여야 하는 백숙이 먼저 떠올라 버렸다. 버스에 앉은 뒤 축축해져 가는 허벅지 안쪽은 백숙의 열기를 상상하자마자 유전이 터지듯 난리가 났고, 에라 모르겠다 '여기염' 서비스를 이용해버렸다.


저녁밥은 자본주의의 힘을 빌려서 해결했지만, 아들 셋이 하루 종일 머물던 집안 곳곳은 쓰레기가 가득한 운동장 같아서 한 시간 넘도록 플로깅을 해야 했다.


왜 양말 한 짝이 책꽂이에서 나오지?

헨젤과 그레텔도 아니고 사과즙 팩은 가는 곳마다 나오는 거야?

책상 밑은 모래 놀이터인가?

쓰레기통이 있는데 왜 쓰질 못하니?


아우, 진짜!!!!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아들 셋 낳았으니 중전 마마는 몰라도 '빈' 자리에는 올랐을 거야."


갑자기 힘들게 일도 하고, 온갖 잡일에 쉴틈이 없는 내 신세가 한탄스러워 타임머신만 있다면 과거로 도망이라도 치고 싶었다.


조선 시대 왕비의 삶, 상상만으로도 화려하고 근사하지 않은가!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




씻겨주고, 진수성찬을 대령하고, 화려한 옷을 지어주고 입혀주고, 아이도 곁에서 돌봐주겠지? 생각만 해도 부럽고 황홀했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만났던 기구한 운명의 그녀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바람에 달콤한 상상은 금세 끝나버렸다.


소환 1호 : 자신의 막내아들을 세자로 세우는 데는 성공하지만 그 과정에서 심부전으로 사망했고, '왕자의 난'으로 결국 두 아들을 모두 잃은 태조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


소환 2호 : 태종 이방원의 정치적 파트너였으나, 남동생 4명 처형과 화병으로 아버지까지 돌아가셔야 했던 비운의 원경왕후 민 씨


소환 3호 : 16세에 의문사 한 예종 비 장순왕후, 17세에 원인 모를 병으로 사망한 성종 비 공혜왕후 (한명회의 딸들로 자매가 소환된 셈이다.)


소환 4호 : 7일 만에 폐위되고, 50년을 수절한 성종 비 단경왕후


소환 5호 :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살다 간 선조 비 의인왕후와 인조 비 장렬왕후


소환 6호 : 환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았던 인현왕후


소환되지 못한 왕비들 가운데는 아이를 낳다가 어린 나이에 사망한 분들도 많고, 온갖 정쟁에 휘말려 멸문지화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하니, 그녀들의 삶은 생각보다 숨 막히고 스트레스가 심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스펜서>의 다이애나 비 역시 궁에서의 삶이 쉽지 않았다.

엄격한 전통과 까칠하고 무서운 시어머니 그리고 다른 여인에게 대놓고 마음을 주는 남편까지...


뭐, 그에 비하면 내 삶도 썩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범하지만 자유롭고, 화가 나면 꾸엑 소리칠 수도 있고, 원하는 글을 쓸 수 있으니까.


하지만 빨래 정리는 늘 싫다.

닦아도 닦아도 사각 거리는 바닥도 싫고...


친구에게 버릇처럼 말했다.

"아우ㅡ 내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으면 왕비야. 왕자를 셋이나 생산했잖아!"


하지만 이번엔 친구가 일침을 가해 왔다.


"처녀 단자를 제출한 후에 선발되기도 어렵다더라야. 그 후에도 세 번의 면접을 통과해야 해. 집안, 외모, 식사 예절 통과하고 왕족이 면접관 돼서 성품이랑, 현명함 보려고 질문한대. "


"아 됐어 됐어! 끊어!"


그래, 잊고 있었다.

'주제 파악' 잊지 말자!


여하튼 엄마의 삶은 아주 많이 고달프다. 왕비도... 안 왕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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