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눈꽃 Nov 28. 2022

여보! 나 '갑'이다!

남편은 본인이 갑(甲)이라고 했다.


남편과 나는 저녁 식사 후 소소한 동네 산책 데이트를 즐긴다. 별거 아닌 대화에도 우리는 함께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힐링으로 여긴다. 얼마 전 남편과 저녁 먹고 소화시킬 겸 동네 마트를 가려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을 내려오는데 남편이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손가락으로 본인의 티셔츠 로고 가리킨다.



"색시야! 나 갑이다! G.A.P. 갑. 잘해라!"



이 말을 내뱉곤 남편은 내가 이제 무슨 말을 하려나 하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 참고 있는 입을 겨우 앙다문 채 옆으로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고 있다.  'GAP' 상표를 읽으며 '갑'이라고 떠드는 남편 개그에 난 오늘도 빵 터졌다. 남편은 이런 어쭙잖은 말장난 개그로 늘 나를 웃긴다. 지나가다가 옷가게 유리창에 세일(SALE)이라도 붙여있으면 꼭 내 손을 잡아채며 "색시야! 옷 살래 한다! 당신 옷 살래 해야겠어. 마니 살래?"라고 떠드는 이 남자. 내겐 늘 너무 웃긴 개그맨이다.





여보, 당당히 말해!

왜 본인을 '갑(甲)'이라고 하면서도

내 눈치 살피는 표정은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히 '을(乙)'이야.



얼마 전 지인과 옷 구경을 하던 중에 남편과 커플로 입으면 좋겠다 싶어서 얼른 그에게 카톡을 했다.

내게 이런 멘트로 답장 날리는 남편이 늘 고맙고 대인배스러움을 느낀다.



내가 그에게 늘 고마운 이유는

내게 때때로 이벤트 선물을 해서도

분위기 좋은 곳에서 근사한 저녁을 사줘서도 아니다.

별거 아닌 상황에도 나를 웃기려는 소소한 개그와

본인을 나보다 낮추는 듯한 표현으로 나를 더 높이 봐주는 말씨.

나는 그 마음을 또 꿰뚫고 그를 더 높이 산다.

그런 그는 진정한 나의 '갑'이다.



여보!

당신은 늘 내게 나보다

본인을 더 낮춘 듯한 표현을 하지만 난 알아.

당신이 늘 나보다 한 수 위에 있고

'갑'의 경지에 이미 있다는 거.

'을'인 나는 열심히 '갑'인 당신을

닮아가고 쫓아가야 한다는 거.



부부 사이 '갑'이 아닌 상대의 '을'이 되어주자. 기꺼이.


부부 사이에서만큼은 져 주는 게 이기는 거고, 배려하는 게 결국 승리하는 거다.

이전 09화 우리의 노후... 멋질 예정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