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20대 연애시절부터 결혼해서 미래에 딸을 낳으면 남편 성과 내 성을 하나씩 넣어 이름을 만들자는 말을 했고, 실제로 첫째 딸아이 이름을 결혼 전부터 계획한 내 성을 중간에 넣어 독특하지만 예쁜 이름을 지었다. 아이도 독특하고 흔하지 않은 본인의 이름을 정말 좋아한다. 우리는 20대 연애시절부터 소소한 계획,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었다.
결혼 후에는 한참 전부터 노후에 관한 얘기도 참 많이 했다. 남편과 몇 년 전부터 강원도 '속초'를 갈 때마다 종종 하는 얘기가 있다. 남편은 은퇴하면 우리 둘이 속초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내가 가고 싶어 해서 이따금씩 가게 된 속초가 어느 순간 올 때마다 너무 좋다고 했다. 속초는 내가 어릴 적 살던 나의 고향이다. 그래서인지 속초만 가면 내 어린 시절도 생각나면서도 속초 특유의 바닷가 냄새와 분위기가 사실 나도 너무 좋다. 그래서인지 속초를 갈 때마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인 것 같아 다행스럽다.
이런 이유로 나의 아이들이 우리의 손길이 아니면 안 되는 시기를 지나고 나면 지금 살고 있는 집의 평수 조금 줄여 옮겨 앉은 후에 세컨드 하우스를짓던지 임차해 남편과 속초에서 몇 년 살고 싶다. 어릴 적 아침마다 동해바다 일출을 보며 자란 그 시절을 떠올리며 나의 노후는 남편과 그곳 속초에서 일출도 보며 하루를 시작하고 남편이 좋아하는 바다낚시도 실컷 해가며 여유롭게 노후를 보내고 싶다.
그렇게 속초가 아쉽지 않을 만큼 살아보고 나면 남해가서도 몇 년 살아보고, 제주도에도 몇 년 살아보고, 지리산 밑은 내륙이라 조금 심심할지 모르니 몇 개월 살아보고, 노후 자금사정에 따라 외국에서도 여행이 아닌 몇 달씩 여유롭게 체류해보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 나름 남편과 노후에 어느 곳에서 살아볼 건지도 종종 상상하며 얘기도 나눴다. 다가올 미래를 남편과 같은 방향을 꿈꾸며 이야기 나누는 것 자체도 내겐 꽤 신나는 일이다.
"색시야~ 우리 나중에 속초 가서 살면 내가 낚시할 만한 낚싯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꼭 사줘~ 알았지?
내가 한 번도 당신한테 막 머 사달라고 조른 적은 없는데 낚싯배는 양보 못한다?"
그러면서 남편은 장난 어린 말투로 말을 덧붙인다.
"내가 낚시해서 물고기를 잡아올 테니 당신은 식당을 하면 좋을 거 같아. 그걸 파는 거지."
남편은 그전부터 내게 떠보는듯한 이런 말을 툭툭 내뱉으면서 나를 보고 쓰윽 웃는다. 이 여자가 어떤 말로 받아칠까? 궁금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당신은 놀고 난 일하라고? 난 그냥 당신이랑 같이 놀고 싶은데?
내 음식 당신이나 좋아하지. 식당 할 정도도 못되는데"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내뱉는다.
"아니야~ 할 수 있어! 할 수 있어! 속초 가서 장칼국수 할래?
당신 음식 잘하잖아~ 당신 요리에 미원 듬뿍! 듬뿍! 넣으면 돼~
(내 눈치 보며) 그것도 좀 부담스러우면 시판 파는 거 봉지 따서 장사하지 뭐."
남편의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듣고 빵 터져서 서로 깔깔대며 웃는다.
사실 머릿속으로 그와 내가 그리는 같은 방향의 노후생활을 만들기 위해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하며 부단히 현재와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꼭 실행으로 옮기고 말 거다. 고이 키운 내 아이들이 우리 품에서 떠난 후 스멀스멀 올라올 빈 둥지 증후군만 떠올리며 살고 싶진 않다. 황혼의 삶도 남편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그리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