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저녁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남편과 둘이서 안방 침대에 누워 tv 채널을 돌리며 여유시간을 즐겨본다. 채널을 돌리다가 우리 부부가 리모컨을 잠시 멈추게 한 방송이 있었다.
MBN '강석우의 종점 여행'이라는 프로에서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치매 아내를 간병하며 정성을 쏟은 남편의 사연이다. 아내를 떠올리던 어르신은 "대변을 손으로 치우는데 냄새도 안나더라. 그게 사랑이었던 거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두 사람이 만나면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라며 먼저 떠나보낸 아내에 대한 변치 않는 사랑과 그리움을 드러냈다. 감히 어쭙잖은 표현으로 어르신의 정성이 대단하다고도 말을 꺼내지도 못하겠다.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다.
진지하게 TV를 보다 말고 뜬금없이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여보! 당신은 나중에 내가 혹시나 치매라든가... 아파서 드러누워 있으면 똥 수발해줄 수 있어?"
그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혹시나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하고 말고가 어딨겠어. 그냥 하는 거지..."
"진짜?"
그는 언제나 내게 남편 이상의 보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라 사실 남편의 그 반응이 새삼 낯선 것도 아니었지만 애정 어린 대답을 듣고 싶었나 보다. 남편은 덧붙여 말했다.
"당연한 거 아니야? 근데 희한하게 당신이 한참 있다가 나온 화장실 바로 들어가도 냄새 한번 안나더라."
어머나... 이 사람 또 한 번 나를 심쿵하게 만든다. 이 와중에 나는 눈동자가 지진 나기 시작한다. 켕기는 기억이 마구 떠오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난 남편이 한참 쓰고 나온 화장실에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다가 '이건 뭐 화장실 테러냐'며 남편에게 장난 반 진담 반(사실 진담이 훨씬 큼)으로 구시렁구시렁거린 적도 있다. 그럼에도 그는 내게 이런 말로 나를 심쿵하게 만든다. 내 질문과 그의 대답이 오고 가는 짧은 찰나에 장난이라도 남편에게 투덜거린 나 자신에 대한 반성과 남편에 대한 고마움이 뒤섞였다. 그러던 사이, 남편은 갑자기 내 어깨에 손을 얹더니 말한다.
"근데 당신 접때 화장실 나올 때 물 내리는 거 잊었는지 그냥 나왔던데...
나 변기 뚜껑 열었다가 깜짝 놀랐잖아... 당신... 양은... !"
머릿속이 한참 반성과 고마움으로 접어들려다가 그 대답을 듣고 너무 웃겨서 침대에서 데굴데굴 굴렀다.
정말 뜬금없는 얘기지만 내가 종종 생각했던 상상이 있다.
그와 내가 만난 지가 벌써 19년. 이 사람을 만나서 늘 행복한 시간, 고마웠던 시간들이 참 많았다. 그래서인지 세월이 흐르면서 이 사람은 내게 늘 안식처 같다는 생각이 늘 있다. 남편에게항상 고마움 이상의 생각이 늘 있어서인지 언젠가부터 문득 '내가 혹시라도 빨리 세상을 떠난다고 해도 그에게 받았던 사랑과 고마움 때문에 정말 아쉽지 않게 갈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종종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