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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을 Jun 27. 2023

설렘

그렇게 수도 없이 너를 떠올리고 말겠지

쿵, 쿵.

무엇도 달라지지 않았다.


너와 나는 마주 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어슴푸레한 조명 아래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30분 전에도, 한 시간 전에도 그렇게 있었다. 시간 외에는 달라진 것이 없는 이곳에서 갑자기 심장이 울렸다.


쿵, 쿵 하고. 귓가에 들릴 정도로 크게.


나조차 놀랄 만큼 커다란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점점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쁜 호흡이 입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다. 애써 숨을 삼켜봤지만 소용없다. 점점 더 제멋대로 날뛴다.


두근두근두근-


심장이 빠르게 뛸수록 다른 모든 것이 느려진다. 마치 잘못 맞춰진 메트로놈에 맞춰 건반을 누르는 것과 같다. 컵으로 뻗는 손의 속도도, 물을 삼키려 오물거리는 입술도, 깜빡이는 눈꺼풀도, 들숨과 날숨의 간격과 안면 근육까지- 의식 없이 했던 모든 것들이 제 속도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여태껏 어떻게 네 앞에서 자연스러울 수 있었을까?

이렇게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가 없는데.


내달리는 심장은 명백한 경고음이다.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신호. 바보 같은 머리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라는 알림을 두고 이유를 찾는다.


왜? 무엇 때문에?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는데, 심장이 아프도록 뛰는 걸까?

왜 목소리가 달게 들리는 걸까?

왜 네가 전혀 다르게 보이는 걸까?


궁금하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너를 즐겁게 하는 것과 슬프게 하는 것을 듣고 싶다. 조금 더 다가서고 싶다. 할 수 있다면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곁에 가 닿고 싶다.


찰나에 불과했다. 어떻게 마음이 네게 빼앗겨 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 채 그저 그 순간을 느끼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감각이 내 것이 아닌 것만 같다. 네 눈짓과 웃음에 나도 모르게 반응해 버린다. 원래 그랬던 사람인 것처럼. 그러기 위해 살아왔던 사람인 것처럼. 제어할 수 없는 상황에 공포가 퍼진다. 이유를 알 수 없기에 빠져나올 방법도 찾을 수 없다.


너는 어떨까? 네 심장도 이렇게 뛰고 있지 않을까?

솔직하게 묻고 싶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듣고 싶다.

하지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다. 제어할 수 없는 감각보다 무서운 건, 이 모든 걸 너는 느끼지 못했을 거란 상상.


오랜만에 느낀 설렘은 아주 복잡했다. 기다린 만큼 달콤하지 않았다. 차라리 언젠가 다가올 설렘을 상상하던 순간이 훨씬 행복했다고 느낄 만큼.


아마도 하루에 수십, 수천 번 넘도록 이 순간을 곱씹겠지. 멈추는 방법도 잊은 채 홀로 설레며 무서워하다 슬퍼하고 또 웃겠지. 감정이 닳고 닳아 사라진 뒤에도 아주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겠지. 그렇게 수도 없이 너를 떠올리고 말겠지.






하트시그널을 보다 문득 떠오른 상상.

사람이 사람에게 빠지는 순간은 찰나와 같을지 모른다. 자신도 모르게 스쳐 지나가 버린 찰나. 누군가에게 설렘을 느끼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설렘은 순수하게 좋기만 할까? 두렵고 무서워서 되돌아가고 싶어지진 않을까?


쓰는 내내 들었던 음악을 덧붙여 본다.


https://youtu.be/H0NFTIhxOp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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