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과 함께 호텔방 문을 박차고 들어가 현장을 급습, 결정적인 사진을 찍어내고, 시원하게 이혼!
언젠가 TV에서 한 번쯤 보셨을 법한 장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뉴욕에서 이루어지는 이혼의 대부분은, 앞서 소개드린 No-Fault (무책) 이혼, 즉 어느 한쪽의 잘못을 따지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한때 미국의 이혼 제도는 철저히 유책(Fault-Based) 방식이었습니다. 배우자의 ‘잘못’이 명백히 입증되어야만 이혼이 가능했지요.
법에서 인정하는 유책 사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간통 (Adultery)
학대 (Cruelty)
유기 (Abandonment)
중범죄로 인한 수감 (Imprisonment) 등
문제는 이 제도가 오히려 불행한 결혼을 억지로 지속하게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경제적, 법적으로 더 취약했던 여성에게는 사실상 탈출구가 없는 제도였죠.
또한 유책 이혼은 ‘잘잘못’을 따지며 개인의 사생활을 공론의 장에 끌어내야만 했습니다. 간통 증거를 모으기 위해 탐정을 고용하거나, 이혼 사유를 연출하기 위해 허위 증언을 요구받는 일이 비일비재했죠. 그 과정은 너무나도 굴욕적이었습니다.
1960~70년대 미국 사회는 여성 인권의 큰 변화를 겪습니다. 여성들은 억압적이거나 폭력적인 결혼에서 법적으로 ‘탈출할 권리’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은 ‘신성한 의무’가 아니라, 서로 동등한 관계 위에서 유지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퍼지면서, 결국 '잘못'이 없어도 이혼할 수 있는 제도, No-Fault 이혼이 도입되게 됩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책 이혼은 점차 과거의 유물로 여겨졌고, 무책 이혼은 더 평등하고 실용적인 제도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유책 이혼은 여전히 법적으로 가능합니다. 뉴욕주는 2010년에 No-Fault 이혼을 도입했지만, 유책 이혼 제도를 폐지한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유책 이혼을 택하는 경우가 매우 드문 이유는 실리적인 이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설령 내가 큰 잘못을 했더라도, 이혼 판결문에 “내가 큰 죄를 지어 이혼당했습니다”라고 남기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유책 이혼은 상대방의 명예와 책임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만큼, 거의 모든 경우 재판까지 가게 됩니다.
1. 입증이 어렵습니다.
유책 이혼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잘못이 법적으로 명확하게 증명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법적으로 유효한 증거를 확보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2. 시간, 비용, 감정 소모가 엄청납니다
유책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증거 수집, 증인 출석, 반박과 재반박의 과정이 뒤따릅니다. 당연히 소송은 길어지며, 변호사 비용은 증가하고, 무엇보다 감정적인 피로가 커집니다. 사적인 문제들이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과거의 상처를 법정에서 반복해서 설명해야 하는 일은 당사자 모두에게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됩니다.
3.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많은 분들이 “상대방이 잘못했으니 내가 재산이나 위자료를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시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쪽 배우자가 '매우 심각하고 해로운 행위'를 저지른 것이 아닌 이상, 유책 여부는 재산 분할이나 위자료 책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특히 간통의 경우, 뉴욕 법원은 간통을 그 자체만으로 ‘매우 심각하고 해로운 행위’로 간주하지 않습니다.
억울한 감정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잘못을 제대로 밝히고 싶다’는 마음,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진짜 나를 위한 선택은, **최대한 빠르게, 최소한의 상처로, 나다운 삶으로 돌아오는 것**, 그것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