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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정원 Oct 11. 2023

쉬운 일은 없어

 수년 전 지인이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땅 옆에 조그만 텃밭을 내어 주며 상추를 키워 보라고 했다. 게다가 씨까지 뿌려 놓았으니 가꾸기만 하라니 더 없는 기회였다. 그렇지 않아도 주말 농장을 해 보고 싶었던 터라 망설임 없이 좋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처럼 수확해서 이 집, 저 집 나눠 먹을 생각만 해도 즐거웠다.

 이상과 현실이 다르다더니 쉬엄쉬엄 재미로 해도 되는 줄 알았는데 주말마다 없던 스트레스가 생겼다.  밭에 언제 오는지, 풀이 자랐는데 왜 뽑으러 오지를 않는지 지인에게 수시로 전화가 왔다.     


 

 여름 장마가 끝나고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 풀이 무성하게 자랐으니 모자와 생수를 준비해서 오라고 한다.

 소풍 가듯이 남편과 간단하게 간식거리를 챙겨서 농장을 갔다.   맙소사! 우리는 밭을 보고 깜짝 놀랐다. 상추는 보이지 않고 풀만 무성했다. 지인이 왜 핀잔주듯이  호들갑스럽게 전화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장마가 끝나고 일이 생겨서 겨우 삼 주일 가지 못했는데 그 사이 자라도 너무 자랐다. 장마가 끝나면 풀이 쑥쑥 올라와 무성하게 자라는지 몰랐다. 허리가 아파 좀 쉬었다 하고 싶어도 지인에게 미안하고 창피해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풀만 뽑았다. 풀은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는 것 같았다.  뽑힌 풀은 수북하게 쌓여 갔다.

 어느 정도 풀 뽑기가 끝나 가니까 상추를 뽑아서 가라고 했다. 힘들어서 그냥 오고 싶었지만 빨리 뽑아서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뽑아 가라고 해서 상추를 뽑거나 줄기를 뚝뚝 잘랐다. 언제 허리가 아팠는지, 진짜 허리가 아팠는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상추 수확에 마음을 빼앗겼다. 먹을 사람도 없으면서 바구니 위에 수북하게 쌓여가는 상추가 뿌듯하기만 했다. 누구에게 얼마만큼씩 나눠 줄 것인지만 생각하고 있는데 어떻게 봤는지 갑자기 지인의 아내가 그만 하라며 뛰어 왔다.

 “도대체 뭐 하는 거예요? 줄기를 그렇게 싹둑싹둑 잘라 버리면 어떻게 해요?”

 상추 잎은 뒤로 꺾어서 잎만 떼어 내는 것이라고 한다.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는 지인 아내의 눈빛에 놀라서 사과를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몰랐어요, 죄송해요만 반복했다. 어차피 다 못 먹을 양의 상추 밭인데 뽑으면 왜 안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인이 빌려 준 텃 밭도 텃밭에 자라는 상추도 내 것이 아니고 지인 것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이듬해 또 하겠냐고 묻는 지인에게 정중히 사양을 했다. 다시는 주말 농장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책을 보고 조언도 구하면서 소나무 묘목을 키우는 지인 부부는 일찍 일어나 거의 매일 농장에 가서 묘목을 보살피고 벌레를 잡고 풀도 뽑아 준다고 한다. 그만큼 농작물에 대해서 아는 것도 많고 관심과 애착이 크다.

 거기에 비해서 농작물에 대한 지식도 경험도 없으면서 배우려고 하지도 않았고 부지런히 가꾸지 않았다.

 그냥 씨를 뿌리고 적당히 물만 주면 잘 자라서 수확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남들이 하는 것은 쉬워 보여도 막상 내가 하려면 힘들고 어려운 것이 농사를 짓는 것이다. 섣부른 환상을 가지고 재미로 짓는 것이 아니다. 전문적 지식을 갖추고 잘 키우기 위한 공부도 해야 한다. 지금은 상추 한 잎도 키운 사람의 노고를 생각하며 고마운 마음으로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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