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잉그뤠잇 Oct 10. 2024

라디오 그리고 올드팝

가을맞이 추억 소환하기

“아들, 오늘 하루도 힘내!”


어느덧 가을이다. 서늘한 아침 공기를 맞으며 아이의 등굣길을 배웅하고, 집에 혼자 남은 시간. 나는 가장 먼저 음악을 튼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올드팝이다. 올드팝을 틀어놓고, 음악과 함께 머금을 커피 한잔을 내린다. 부드러운 선율 사이로 커피머신의 소음이 들려올 때, 나는 가만히 눈을 감아본다. ‘카페가 따로 없네, 우리 집이 카페였어.’라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난다. 텅 빈 거실을 바라보며 식탁 의자에 앉아 잠시 멍을 때린다. 잠잠히 앉아있는 자체로 피로가 해소되는 느낌이다. 내 귓가에 들려오는 음악과 향기로운 커피가 있어 가만히 있어도 참 행복하다.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이 모여 내 하루를 더 풍요롭게 채워주는 듯하다. 어느덧 올드팝은 내 삶에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가 됐다.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내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치료제 그 자체다.


올드팝을 좋아하게 된 건 내가 중학생일 때, 오빠가 고등학교에서 밴드 동아리를 결성하면서부터였다. 한동안 오빠가 부모님과 크게 싸우기도 하고, 애걸복걸하며 무릎으로 집안 걸레질을 대신하더니 오빠 방에 처음 보는 악기가 생겼다. 부모님이 사준 오빠의 첫 악기, 일렉트릭 기타였다. 내가 아는 악기라고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배웠던 피아노가 전부였는데, 갑자기 기타라니…. 그것도 앰프와 각종 스피커, 마이크까지. 방 한가득 록밴드 스피릿이 흘러넘쳤다. 나는 넉넉하지 않은 집안 살림에 느닷없이 악기 타령을 해댄 오빠가 참 미웠다. 그래서 속으로 ‘저거 얼마나 오래 하나 보자’ 단단히 벼르며 오빠를 눈여겨봤다. 오빠는 어디선가 구해온 기타 교재와 악보를 펼쳐놓고, 밤낮없이 기타 독학에 매진했다. ‘대댕댕댕-’ 앰프를 연결하지 않은 채 기타 줄을 튕기니 생전 처음 듣는 소리가 났다. 그러기를 몇 주가 지났을까. 오빠는 내게 영화 <금지된 장난>의 주제곡 <Romance de Amor>를 들려줬다. 애절한 멜로디가 매력적인 이 곡은 지금까지도 기타를 입문하는 사람들에게 첫 기타 연주곡으로 불문율과 같은 곡이다. 몇 년 전, 나를 밤마다 눈물짓게 했던 드라마 <가을동화>의 OST이기도 했던 터라, 나는 머릿속으로 송혜교 언니의 닭똥 같은 눈물을 떠올리며, 오빠의 연주가 내심 감동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는 애정표현 따위 절대 하지 않는 무뚝뚝한 남매 사이기에, 난 시끄럽다고 오빠에게 괜히 윽박질렀던 기억이 있다. 


나는 <Romance de Amor>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대중가요가 아닌 음악에 처음으로 관심이 생겼다. 어느새 광고에 잠깐잠깐 들려오는 노래들, 영화에 잔잔히 깔리던 음악들이 서서히 선명하게 들리고, 더 듣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핑계로 팝송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당시 가장 유행하던 팝송은 어셔의 <Yeah!>였다.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남성출연자들이 파워풀한 춤을 출 때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노래였다. 대충 흥얼거리다 우리말 가사를 찾아본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여중생이 받아들이기엔 다소 음란하고 직설적인 표현들이 많았던 것이다. ‘내가 원한 건 이런 게 아니었는데…. 멜로디가 흥겹다고 전부가 아니구나.’ 가사의 중요성을 여실히 깨달은 나는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까지 내 마음에 쏙 드는 팝송을 찾으려 노력했다. 라디오를 듣다가 마음에 드는 곡이 나오면 그 노래의 가사 한 구절을 메모해 두었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검색을 거쳐 팝송을 알아갔다. 또 그 시절 음반가게를 비롯해 신촌역이나 영등포역 주변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었던 카세트테이프 판매 리어카를 찾아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카세트테이프를 찾아볼 수 없지만 당시 카세트테이프 명곡모음집은 다양한 가수들의 노래를 한데 모은 마성의 보물 상자였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를 듣게 됐다. 라디오는 카세트테이프를 뛰어넘어 더 넓은 음악의 세계로 나를 인도했다. 



가수 이소라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FM음악도시> 클로징 멘트다. 나는 매일 밤 이소라 씨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내일의 나에게 행운을 빌어주는 마법 같은 주문을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그때 당시만 해도 이소라 씨가 방송에 출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이소라 씨가 TV에 나오지 않는 음악 전문 라디오 DJ인 줄로만 알았다. 이소라 씨의 얼굴은 모르지만 소라언니는 매일 밤 10시에서 12시까지 만나는 친구였다. 매일 다양한 코너로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고, 대중가요뿐 아니라 팝송, 인디음악까지 다양한 음악의 장을 열어준 것이 바로 라디오였다. 라디오 덕분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서 다시 책상 앞에 앉아있는 그 시간이 외롭고 힘들지 않았다. 어떤 날은 나와 비슷한 처지의 학생들 사연을 들으며 위로를 얻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우여곡절 끝에 취업에 성공하기도 하고, 엇갈림 끝에 사랑을 시작한 이들의 사연을 들으며 대리행복을 경험하기도 했다. 소라언니가 들려주는 엽서 속의 이야기에 공감하다 보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졌다. 거기에 음악까지 더해지니 행복이 마구 솟아나는 느낌을 받았다. 라디오는 그 시절의 낭만이었다.


어른이 된 나는 고등학생만큼이나 치열한 대학생활을 마치고, 더 전쟁 같은 방송작가로서의 시절을 보냈다. 여유롭고 평화로운 미래를 꿈꾸면서 오늘을 참아내자는 마음으로 매일을 버텼지만 점점 더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결혼을 하고, 이어서 임신과 출산까지…. 학창 시절 내 삶의 위안이 되어주던 라디오를 떠올리지 못할 만큼 나의 삶에 여유란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다시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것은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면서부터였다. 여느 때처럼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나는 불현듯 자동차 매뉴얼에서 라디오를 틀었다. SBS 파워 FM 채널에서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가 흘러나왔다. 유독 드라마에서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냉혈한 악역을 자주 맡는 탓에 성질머리 고약한 아저씨 이미지로 각인됐던 김창완 아저씨였다. 하지만 라디오를 통해 들려오는 정감 있는 목소리와 특유의 너털웃음, 간단명료한 듯 연륜이 묻어나는 해학은 나를 매료시켰다. 그렇게 매일 오전 9시에서 11시까지 김창완 아저씨의 라디오는 내게 여유를 허락하는 시간이 됐다. <아(름다운 이 아)침(김)창(완입니다)>, 줄여서 <아.침.창>을 통해 콘서트에 따로 가지 않아도 저명한 악기연주자, 떠오르는 신예 작곡가, 다양한 장르별 대가들의 라이브를 들을 수 있었다. 또 김창완 아저씨가 추천하는 주옥같은 팝송들을 접하는 기회가 됐다.


라디오를 통해 내 인생 최고의 팝 가수를 알게 됐다. 바로 1970년대 미국의 팝 음악계를 점령한 그룹 “카펜터스”다. 1969년에 결성된 그룹 카펜터스는 카렌 카펜터와 리처드 카펜터 남매 그룹으로 카렌은 보컬과 드럼을, 리처드는 피아노를 담당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남매 듀오 ‘악동뮤지션’이 떠오른다. 카펜터스는 10여 년 동안 활동하며 <Close to You>, <Yesterday once more>, 〈Top of the world〉 등의 대표곡을 남겼다. 카펜터스의 곡은 달콤한 사랑 고백의 노래들이 많다. 기교를 많이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차분하게 노래 부르는 여성 보컬의 음색이 매력적이다. 들으면 들을수록 어느덧 분위기가 따뜻해지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영혼까지 영롱해지는 느낌이랄까. 이렇게 글로써 이 명곡들을 설명하려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의 부족한 필력으로는 스펜터스 곡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전할 수가 없어 아쉽다. 나의 절절함이 느껴지신다면 한 번쯤 꼭 찾아서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특히 이 글을 써 내려가며 라디오를 추억하다 보니 유독 떠오르는 스펜터스의 곡이 하나 있다. 1973년에 발매된 <Yesterday once more>다. 


어렸을 적 라디오를 즐겨 들었어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리며 말이죠.

그 노래가 나오면 나는 따라 부르며 미소를 지었죠.

그땐 정말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는데 말이죠.

그 행복했던 시절은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그런데 그 노래들이 다시 떠올라요.

마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친구처럼 내가 아주 사랑했던 모든 노래들이요.

모든 게 샤랄랄라- 모든 게 워우워우- 여전히 빛났어요.

모든 게 싱어링어링- 그들이 노래하기 시작했다는 게 참 좋네요.

- 카펜터스 <Yesterday once more> 번역 가사


https://youtu.be/wawbhXQX2TQ?si=NgcAdvHxPWP-WpQe


“When I was young~” 첫 구절만 들어도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명곡이다.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들었던, 자신이 좋아하던 그 시절 그 노래를 추억하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어쩐지 지금의 내 마음과 똑 닮은 노래가사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살면서 이렇게 나를 대변해 주는 노래를 만난다는 것, 그리고 나를 그 시절로 데려다주는 노래를 기억한다는 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행운일까. 내 삶에 여유를 되찾아주고, 소소하게나마 웃음과 감동을 주는 라디오와 올드팝이다. 지금 이 글을 써 내려가는 중에도 내 노트북에서는 올드팝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다. 덕분에 내 마음의 파동을 잔잔하게 진정시켜 주고, 내 마음의 온도가 따뜻하게 잘 유지되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경우는 어떠할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누구와’ 이런 제약 없이 당신의 마음을 따스하게 덥혀줄 무언가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하다. 오늘 하루, 당신을 행복으로 채워줄 무언가가 있다면 참 좋겠다. 



* 사진 : mcblingx_schnee

* 영상 : Yesterday Once More · Carpenters / Gold - Greatest Hits ℗ 1973 A&M Records


이전 09화 엄마에게 안부 묻는 날이란 따로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