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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정말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엄마 지난주에 발가락 부러졌어.”
어쩐지…. 요 며칠 엄마로부터 자주 걸려오던 전화가 통 잠잠하다 했다. 엄마는 퇴근길에 집으로 걸어오던 중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려 넘어졌다고 한다. 30여 년 간 매일 지나다니는 거리에서 넘어졌다는 소식에 매우 의아했다. 언덕길도 아니고, 돌출된 도보 블록도 없었는데, 갑자기 앞으로 넘어졌다니 쉽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혹시 저혈당이 있나? 뇌졸중 전조 증상은 아닐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골반이나 척추, 머리 쪽 중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골절되고, 무릎이 진한 보랏빛으로 멍들었다. 그나마 다른 뼈를 다치지 않은 게 어디냐 싶으면서도 발가락 골절로 깁스를 한 엄마를 보자면 속상한 마음이 가실 리 없다. 그리고 엄마는 도대체 이 소식을 언제까지 나에게 숨길 생각이었을까. 엄마는 곧 만날 명절을 앞두고 만나자마자 놀랄까 봐 미리 알려준다며 의연하게 골절 소식을 들려줬다. 자주 전화하던 우리 사이에 오래 전화하다 보면 의도치 않게 골절 사고를 말하게 될까 봐 한동안 나에게 전화도 일절 하지 않은 엄마다. 엄마는 이제야 속 시원하다는 듯 깁스해서 불편한 점을 하소연한다. 일주일에 두 번 가는 정형외과에서는 어떤 물리치료를 하는지, 치료비는 얼마가 드는지 속사포로 설명하기 바쁘다. 이렇게 말할 거리가 많은 걸 그동안 어떻게 참았나 싶다. 다치고 나서 바로 연락했으면 엄마 스스로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텐데, 내가 걱정할까 봐 연락을 안 하고 꾹 참았단다. 딸 입장으로서는 사고 직후에 소식을 듣든, 며칠 뒤에 듣든 마음이 쿵 내려앉는 건 마찬가지인데, 엄마는 아직 내 마음을 모르나 보다.
하기야, 며칠 전 아이가 갑작스레 감기에 걸려 나는 아이를 보살피느라 정신이 없기도 했고, 와중에 글 쓰는 일을 미룰 수 없어 틈 날 때마다 노트북을 들여다봤었다. ‘엄마가 요즘은 전화를 안 하네?’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내가 먼저 전화를 걸진 못했다. 부모님만큼은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닌데, 내 무관심이 사고로 이어진 것 같아 마음이 무너져 내린다. 전적으로 내 관심이 부족했다. 엄마가 이렇게 사고 소식을 숨기는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근데 있잖아. 나 다리가 이상하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일이었다.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하고 있을 시절, 엄마는 동네 병원에서 코비드 19 예방 백신을 맞았다. 그리고 그날 밤, 엄마는 오른쪽 다리가 불타오르는 듯 강한 작열감과 엄청난 팽창감으로 잠을 청하지 못했다. 이튿날 엄마는 퉁퉁 부어오른 다리를 이끌고 겨우겨우 출근을 했다. 점심시간이 돼서야 내게 전화를 건 엄마는 오른쪽 다리가 좀 불편하긴 한데, 별일 아니라는 듯 가볍게 증상을 설명했다.
“엄마, 괜찮아? 그걸 왜 이제야 말해? 어제 주사 맞고 왔을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며!”
분명히 주사 맞은 날 오후에 엄마와 통화할 때는 몸에 이상도 없고, 미열도 없지만 혹시 몰라서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취침하겠다고 날 안심시켜 주던 엄마였다. 하지만 나와 통화를 마친 후, 엄마는 점점 다리가 붓고 아픈 상태였던 거다. 백신이 도입되기 전부터 각종 언론을 통해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들어왔던 터라, 나는 엄마의 증상을 듣자마자 백신 부작용임을 확신했다. 해당 백신을 맞고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 사람이 있는지, 해외 사례는 어떤지 몇 시간 동안 자리에 앉아 인터넷을 검색했다. 검색 결과를 종합해 보니, 엄마는 심부정맥혈전증 중 하지혈전증에 해당되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혈전이 어느 순간 심장이나 뇌로 가는 혈관을 막는다면 상상하기 싫은 끔찍한 결과가 초래될 위험한 상태였다. 나는 곧바로 친정집 주변에서 하지혈전증 관련 검사를 진행할 수 있는 병원과 교수님을 찾아봤다. 엄마는 ‘내 다리는 그 정도가 아니다, 이러다가 금방 괜찮아질 수 있다’며 한사코 손 사레를 쳤다. 하지만 어느 누가 제대로 검사하지 않은 이상 엄마의 상태를 확실히 알 수 있을까. 엄마의 상태를 지켜보면서 내내 초조해하고 걱정하느니, 빨리 큰 병원에 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다음날, 엄마는 백신을 접종한 병원에서 의사 소견서와 추천서를 받아 들고, 내가 알아본 한 대학병원 순환기내과를 찾았다. 엄마는 어떤 검사를 하게 될지 모르니 전날 저녁부터 물 한 모금 먹지 않은 공복 상태를 유지한 채로 진료를 봤다. 오전 내내 대기한 끝에 혈액 검사와 CT 촬영을 진행했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내가 의심한 정맥혈전증은 아니고, 일시적인 증상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백신 부작용이라고 자신이 진단을 내릴 수는 없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을 내놨다. ‘주사 여파로 생긴 일시적인 증상인데, 백신 부작용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의사의 진단에 의구심이 솟구쳤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엄마는 일단 병원 처방약을 복용하며 증상을 지켜보기로 했다. 일주일 정도 지났을까. 다행스럽게도 돌팔이 같았던 의사의 말처럼 부어올랐던 다리도 원래대로 돌아왔고, 다리 내부에서 느껴지던 작열감도 사라졌다. 나는 엄마와 비슷한 증상을 겪었던 이들이 드물게 안타까운 결과가 나온 사례를 보고 최악의 수까지 염려했던 마음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했다. 겉으로 티 나지 않게 혼자 걱정에 휩싸였던 엄마도 그제야 “거봐라, 내가 금방 괜찮아진다고 했지?”라며 되려 내게 큰 소리를 친다. 나 혼자 호들갑을 떨었대도 최악의 상황보다는 이런 핀잔 아닌 핀잔을 듣는 게 훨씬 나았다.
어느새 60대 후반의 나이가 된 엄마. 젊은 시절부터 몸 여기저기 크고 작은 수술을 겪어온 엄마는 지금도 몸 곳곳이 성한 데가 없다. 나는 엄마와 일주일에 1~2번 전화통화를 하곤 하는데, 엄마는 전화할 때마다 내게 어디가 아프다, 여기가 불편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런데도 엄마 스스로 생각할 때 큰 사고, 심하게 아픈 것은 정작 말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딸의 걱정을 사지 않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여기나 보다. 엄마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요즘 내가 친정 방문이 뜸해진 것도 한몫을 할지 모르겠다.
나는 서울 친정집에서 20분 거리에 위치한 신혼집에서 거주하다가 아이 첫 돌이 지나고, 경기도에 있는 신도시 아파트로 이사를 왔다. 이곳에 아무 연고도 없었지만 아이를 깨끗한 동네 조금 더 넓은 아파트에서 키우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이사를 결정했다. 이사를 잘 갔다며 우리를 응원해 준 부모님이지만 그래도 아쉬워할 것 같아서 우리는 한 달에 1~2번씩 꾸준하게 친정을 방문했다. 거의 격주 방문인 데다가 명절, 부모님 생신, 어버이날, 연휴 등 합치면 꽤 잦은 방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아이가 어릴 때나 가능했던 일정이었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아이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친구들과 만나 축구나 야구를 하고,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또 주말에 참여해야 하는 각종 학원 대회와 교회 행사 등 외부 일정도 많아지기 시작했다. 친정에 꼭 가야 하는 일이 아니고선 아들의 사회생활을 막을 도리가 없다. 그렇게 우리는 친정 방문이 차츰 줄어들게 됐다.
예전에는 엄마와의 전화를 끊을 때쯤이면, 엄마는 내게 이번 주 주말에는 몇 시에 오는지, 집에서 뭐 먹고 싶은지 자연스럽게 물어보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친정에 언제쯤 갈 수 있다고 일정을 예고하지 않는 이상 엄마는 내게 언제 올 건지 물어보지 않는다. 궁금할지언정 우리에게 행여 부담이 될까 입 밖으로 선뜻 질문하지 않는 엄마다. 어느 정도 우리의 사정을 알고 계시기에 ‘그래. 이제 친구들이랑 노는 게 더 재미있지. 우리 손주, 많이 컸네.’라고 말씀하시지만 내심 서운하실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그 마음을 알면서도 나는 어쩔 수가 없다. 아이가 크면서 이제는 또래 친구와의 관계 중심으로 사고하고,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제일 좋아할 시기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고 있기에 엄마도 나도 그저 이 변화를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우리가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자식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로부터 독립해야 합니다. 그것이 순리입니다. 지나친 집착으로 자녀의 독립을 막는다면, 진정한 독립을 위해서 부모와 거리를 둘 수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성인이 되면, 부모도 자식과 거리를 좀 두는 것이 좋아요. 남남처럼 지내라는 것이 아닙니다. 과한 통제와 간섭은 그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식과 부모 간 좋은 사이로 지낼 수 있어요. 신체적, 물리적으로 거리를 둬야 합니다. 자주 만나지 말고, 정서적 거리도 유지해야 합니다.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하고, 좋은 일 있을 때 가끔 만나는 정도가 좋습니다. 관계를 끊거나 원수처럼 지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자신의 마음이 불편해지면서까지 부모에게 잘하려고 애쓰지 말라는 겁니다. 마음이 편안한 선에서만 해도 돼요.”
- 오은영 <화해>
오은영 박사님은 육아의 최종 목적이 자립이라고 말한다. 때가 되면 부모와 물리적, 정서적으로 어느 정도 거리를 두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고 설명한다. 지나치게 자식을 의존하는 것도, 자식의 독립을 방해하는 것도 부모로서 결코 좋은 행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저학년인 내 아이가 가정으로부터 또래 관계로 관심을 옮겨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엄마도 딸인 내 가정이 이런 과정 중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할머니로서 손주의 자립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인 거다.
부모가 자식의 자립을 지켜보는 마음을 처음 느껴보는 나로서는 요즘 마음이 꽤 쓸쓸하기도 하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우리나라 속담대로 내 품 안에 있을 때에는 평생 내 품 안에서 내 뜻대로 살 것 같은 자식이지만 때가 되면 자신의 뜻대로 살아나가는 것이 자식 아닌가. 나조차 이런 마음인데, 나의 엄마는 오죽할까. 젊은 시절, 자식의 자립을 한 차례 겪었고, 이제는 손주의 자립도 감내하는 중이라니…. 우리 가족과의 만남이 뜸해졌다고 해서 크게 속상하기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생긴 것으로 받아들이시면 좋겠는데, 나의 이 바람은 순전히 내 욕심일까. 하지만 이 과정이 더는 외롭지 않게, 슬프지 않게 내가 자식으로서의 도리로 엄마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간단하게라도 엄마의 안부를 자주 물으면서 행여 내게 큰 걱정을 끼칠까 하는 염려 때문에 생기는 마음의 장벽을 깨부수고, 허물어야겠다. 당장 오늘부터 시작이다. 지금 엄마는 뭐 하고 있을까 연락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