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잉그뤠잇 Oct 24. 2024

여전히 볶음밥은 싫지만 용서할게요(2)

상처의 흔적이 머문 자리

한 번은 엄마가 외출한 저녁, 집에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나만 남았다. 나는 어린 마음에 과연 할머니가 나를 식사하라고 부를까, 언제 부를까 시험을 해보기도 했다. ‘할머니가 밥 먹으라고 할 때까지 내 방에서 기다려야지!’ 하지만 그날 저녁 할머니는 날 부르지 않았다. 할머니, 할아버지 식사하시는 소리만 들려왔다. ‘할머니 안중에는 내가 없구나. 오빠가 없어도 날 챙겨주지 않는구나.’ 가슴에 대못이 박힌 느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이런 시험 아닌 시험을 한 나도 참 옹졸했구나 싶다. 그냥 그러려니 살 걸, 뭘 기대했던 걸까. 굳이 이런 결과를 스스로 자초한 것 같아 한심스러웠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매일의 삶에서 이런 편애를 몸소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난 불만이 더 쌓여갔다. 손자만 예뻐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해 할머니, 할아버지를 등에 업고 항상 의기양양한 오빠도 꼴 보기 싫었다. 자연스레 내 마음에는 피해의식이 쌓여갔고, 난 점차 할머니와 어떠한 감정도 나누지 않았다. 언제나 의사소통은 간단하게, 서로 딱 필요한 말만 하며 살았다. 


그렇게 어른이 된 나는 어느덧 아기를 낳아 아기와 함께 친정에 방문했다. 할머니는 내 아이를 너무나도 반겨주었다. 하지만 난 내 아이를 향한 할머니의 관심이 부담 그 자체였다. 내가 할머니에게 그런 관심을 못 받아봐서 그런가, 할머니의 반짝이는 눈과 섬세한 터치가 참 낯설었다.     


어느새 노환으로 요양원에 간 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복잡하다. 할머니에게 받은 상처가 이제는 오래된 상흔으로 남았는데, 이제 그 위를 무엇으로 덮어야 할까. 희미하게 남아있는 할머니에 대한 좋은 기억을 끄집어낸다면 그것이 내 미움을 희석할 수 있을까. 나와 엄마를 무시하던 그 언행을 언젠가 아무렇지 않은 듯 추억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다만 내가 지금의 상태에서 할머니에 대한 미움을 하루빨리 털어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다. 적어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내 마음속에서 할머니에게 느끼는 불편함, 아름답지 않은 감정을 훌훌 털어내고 싶다.    

  

‘나와 엄마를 대하던 그 냉랭함이 고의는 아니겠지, 살가운 애정표현을 못하는 성격 탓에 마음과 달리 무뚝뚝한 표현만 전달 됐을 거야.’라고 하나둘 부정해 보는 것으로 시작해보려 한다. 할머니의 진심을 알 수 없는 지금, 어쨌거나 내게 중요한 건 이제 할머니를 볼 수 있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현실이다.


나는 여전히 볶음밥이 끔찍이도 싫지만 나는 할머니의 마음과 상관없이 나 스스로 할머니를 용서하기로 결정했다. 할머니는 내 하나뿐인 할머니니까 그러는 편이 내 마음에 훨씬 좋겠다. 상처를 준 가족을 용서한다는 건 내 생각보다 정말 큰 용기와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세상에 내가 용서할 대상이 사라진다면 내 마음의 상처가 평생 새빨갛게 남을 것만 같다. 내 마음에 상처의 흔적이 사라진 자리에는 아픔과 미움 말고 온통 사랑만이 피어나면 좋겠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지금 생각나는 마음의 상처가 있을까. 만약 있다면 당신도 스스로 용서해 볼 기회를 가져보는 건 어떨까. 당신의 상처에도 사랑이 만개하길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