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름! 엄마가 말하는 줄 알았네!”
남편이 아이와 대화할 때 자주 내뱉는 감탄사다. 아이의 외형은 시아버지와 남편의 유전자를 그대로 이어받아 우스갯소리로 자기소개 안 해도 될 정도의 붕어빵 그 자체다. 얼굴 골격과 상체가 발달한 체형, 빵빵한 볼살과 앙증맞은 콧방울까지 다 똑같다. 하지만 그것뿐. 그 외엔 나를 더 닮은 듯하다. 성격도, 취향도 나와 닮은 부분이 많다.
아이는 사람이나 사물을 관찰하기 좋아하고, 기억력이 매우 좋다. 우리 집 식탁 위에는 아이의 사진이 무작위로 무한 재생되는 태블릿 PC가 있는데, 아이는 모든 사진을 기억하는 듯하다. “이게 어디야?” 물어본 아빠의 질문이 무색하게 “아빠도 옆에 있었잖아. 기억 안 나?” 하면서 사진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상황일 때 찍은 사진인지 정확히 설명해 낸다.
또 아이는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 나를 닮아 눈물 또한 많다. 보통의 또래 남자아이들은 대개 무뚝뚝하거나 거친 언행을 일삼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는데, 내 아이는 한없이 조심스럽고, 섬세한 감정표현을 자주 한다. 친구와 헤어질 때, 새 학년을 앞두고 담임 선생님과 헤어질 때 아이는 눈물이 나오려는 걸 간신히 꾹꾹 참았다고 말하며 또다시 울먹인다. 또 함께 TV를 볼 때 환경단체의 후원 독려 영상이 나오면 아이는 속상한 마음에 끝까지 집중해서 보지 못한다. “저 거북이 어떡해? 엄마, 나 눈물 날 거 같아. 엄마는 벌써 울지?” 라면서 괜히 시선을 돌리기 일쑤다.
남편의 판박이인 외모에 나를 닮은 내면이라니…. 둥글둥글 낙천적인 남편 성격을 닮길 임신 기간 내내 기도했건만 내 바람과 달리 정반대로 닮은 내 아이다. 뾰족뾰족 예민한 성격을 그대로 물려준 것 같아 죄책감마저 든다. 내가 아이의 외모에 큰 영향을 준 거라고는 나와 같은 위치에 생긴 검은 모반과 웃을 때 볼살 가운데가 세로로 갈라지는 ‘인디언 주름’ 뿐이다. 더 예쁘고, 아름다운 것을 물려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어쩐지 아쉬움이 크게 남는 대목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는 주변에서 “엄마 닮았구나”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아이 말에 따르면 아빠가 엄마보다 더 못생겨서 자기는 엄마 닮았다는 말이 더 마음에 든단다. 난 객관적인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가 엄마를 닮음에 기뻐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기쁘다. 나의 단점을 쏙 빼닮은 모습에 자책하고, 부정하기엔 그 존재만으로도 너무나 사랑스러운 내 아이가 아니던가.
평소 쑥스러움이 많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야구장에서는 응원 율동을 곁들여 몇 시간이고 일어서서 응원하는 아이. 언제나 친구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며 배려하지만 옳지 않은 행동은 단호하게 거절할 줄 아는 아이. 자신 없어 싫어하는 활동이라도 끝까지 노력하는 끈기 있는 아이가 내 아이다.
나는 아이가 나의 내면을 닮았다면 강점 또한 닮은 점이 많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나와 닮은 아이를 바라보며 아이에게 더 깊은 공감과 삶의 지혜를 알려줄 수 있는 건 그 모습을 물려준 나라서 가능한 영역이 아닐까? 최대한 아이의 강점에 집중하고, 나의 지난 삶에서 아쉬운 점을 반면교사 삼아 아이의 강점을 더 발휘할 수 있는 분야, 환경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앞으로 하루가 다르게 반짝반짝 더 빛날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오늘도 화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