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수술 안 하면 안 돼요?”
고층빌딩 숲 사이로 매서운 찬바람이 휘몰아치던 겨울 아침, 우리 가족은 서울 강남구에 있는 한 성형외과를 찾았다. 아이의 점 제거 수술을 위해서였다. 아이는 엉덩이 하나를 크게 뒤덮은 몽고점을 가진 채 태어났다. 보통 아이들의 몽고점이 서서히 사라져 갈 즈음, 내 아이의 몽고점은 하나의 점이 됐다. 왼쪽 엉덩이와 오른쪽 엉덩이 사이, 작고 귀여웠던 그 점은 아이가 폭풍 성장을 하면서 함께 커버렸다. 볼록 튀어나온 검푸른 색의 점. 아이를 씻길 때마다, 아이 옷을 입혀줄 때마다 내 시선은 그 점에 꽂혔다. 나는 그 점이 너무 신경 쓰였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생각날 때마다 아이의 점 사진을 찍어 소아청소년과나 피부과를 방문할 때마다 의사의 소견을 물었다. 아기일 때는 좀 더 커봐야 알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이 어느 순간, “한번 큰 병원에 가보세요.”라는 부정적인 평으로 바뀌게 됐다. 내가 봐도 아이의 점은 아기일 때보다 또렷한 색깔과 큰 사이즈로 자라난 것이 확실했다.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할수록 흑색종, 피부암과 같은 무서운 질환이 나왔고, 나로서는 최악의 경우도 배제할 수가 없었다. 아예 초등학교 입학 전에 수술할까 싶었으나 입학을 앞두고 스트레스를 더해주기 싫은 마음에 1년 더 지켜보기로 했다. 결국 초등학교 2학년을 앞둔 겨울방학, 우리는 수술 날짜를 잡았다.
아이가 받은 모반 제거 수술은 수술 연령에 따라, 모반의 사이즈에 따라 마취 방법과 입원 여부가 달라진다. 또 수술 당일에는 물도 마실 수 없고, 금식을 유지해야 해서 보호자의 노력이 필요했다. 나는 예민하고, 긴장을 잘하는 아들의 성향을 고려해, 전화와 메신저로 병원과의 사전 상담을 마치고, 당일 진료 후에 바로 수술하는 일정으로 진행하게 됐다. 그렇게 찾아온 수술 당일, 아이는 병원을 가는 내내 바들바들 떨었다. 아들에게 내색할 수는 없었지만 내 마음도 심하게 요동쳤다.
‘내 걱정 때문에 내가 아들을 고생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에게 미안함과 나에 대한 자책이 계속됐다. 하지만 그렇다고 수술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앞으로 아이의 몸이 더 성장하면서 아이의 점도 얼마나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훗날 성인이 되어 더 큰 수술을 감행하기 전에 조직 검사를 해보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병원에 도착하고 아이를 토닥이며 진료실에 들어갔다. 의사는 점의 위치와 크기, 단단함 등을 체크했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하며 의사가 내게 건넨 첫마디.
“어머님, 자책하지 마세요. 점이 있는 건 어머님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의사 시험 과목에 독심술도 있나 보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윌,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위로하는 램보 교수가 겹쳐 보였다. 의사의 차분하고 친절한 상담 덕분에 나는 마음의 짐을 한결 내려놓았다.
잠시 후, 의사가 기다란 마취 주사를 들고 입원실에 들어섰다. 아이의 모반을 중심으로 사방팔방 찔끔찔끔 마취약이 주입됐다. “흐아악” 아이의 짧은 비명을 뒤로하고, 금세 마취가 시작됐다. 아이의 수술 부위는 엉덩이 위쪽이라, 아이가 엎드린 상태로 엄마를 보고 있어도 된다는 의사의 배려 덕분에 나는 아이와 함께 수술실로 향했다. 아이 못지않게 나도 두렵고 긴장한 상태였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말장난을 하며 대수롭지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아이의 허리 아래로 하얀 수술용 커튼을 가리고, 20 여분이 지났을까. 간호사가 내게 투명한 병 하나를 건넸다. 방금 제거한 아이의 점이 담겨있는 병이었다. 생각보다 두껍고, 긴 뿌리를 가진 점이었다. 보자마자 울컥한 마음이 들었지만 애써 참으며 아이에게 농담을 건넸다.
“와, 시원하겠다! 네 코딱지보다 훨씬 큰데?”
아니, 아이에겐 시원할 리 없다. 시원한 건 내 마음뿐일 테다. 얼떨떨한 표정의 아이는 병에 담긴 모반 덩어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부분 마취를 했지만 살을 도려냈으니, 다 아물 때까지 아이는 얼마나 아프고 불편하겠는가. 수술 부위에 염증이 생기지 않도록 매일 드레싱을 교체하고, 상처가 벌어지지 않게 운동도 중단해야 했으며, 목욕하기 전후로 조치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아기 때부터 내 마음에 짐과도 같았던 모반을 뿌리까지 뽑아낸 것에 너무나 속 시원했다.
사실 나는 알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점은 엄마 잘못이 아니라고 위로해 주었지만, 내가 아이에게 모반을 물려줬다는 것을. 나는 어려서부터 점이 많았고, 성장하면서도 ‘내 몸엔 점이 참 많구나’ 느낀 적이 많았다. 얼굴, 팔, 다리 등 햇빛에 노출되는 부분에 점이 많이도 생겨났다. 피딱지가 떨어지며 착색된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언제 생겼는지도 알 수 없는 점들이다. 그리고 결혼 후엔 남편으로부터 내 등에 ‘밀크커피 반점’ 하나가 크게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기도 했다. 게다가 아이의 수술 부위와 비슷한 위치에 나도 점이 있다는 사실까지…. 이 사실을 알게 된 후로, 나는 아이에게 사무치게 미안했다. 나와 같은 위치에 생긴 아이의 점은 내 점보다 크기도 크고, 볼록 튀어나온 모양인 데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같이 무럭무럭 자라나니, 그 점을 볼 때마다 나는 걱정되는 마음에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던 거다. 아이는 이 점 외에도 손가락 사이에 있는 나의 점도 닮았다. 비단 점뿐일까. 아이는 나와 정말 많이 닮았다.